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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 | 기획 [기획]
장인의 공방 ③ 전라북도 동부권
완주, 진안, 임실
김하람, 문명수(2020-09-11 11:17:42)

장인의 공방 ③ 전라북도 동부권_완주, 임실, 진안


가구 속에서 피어나는 나무의 시간
목공예장인 서명관 <목원공예>




이곳을 봐도 나무, 저곳을 봐도 나무. 겨우 사람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을 제외하고 온통 목재로 가득한 이곳은 목공예장인 서명관 씨의 공방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고물상 같아 보이기도 하는 장인의 공방. 넓은 마당은 물론이고 작업장 안까지 온통 목재로 가득한데, 장인의 눈에는 그것들이 마치 보물과 같이 보인다. 서로 다른 무늬들과 그것들로 만들게 될 가구의 아름다움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장인의 공방에는 나무 종류가 스무 가지도 넘는다. 적절한 상황과 주인을 만날 때까지 수많은 나무들이 장인의 공방 안에서 잠들어 있다.


기본적으로 나무는 습도와 온도, 해충에 약한 만큼 가구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비를 맞히고 말리며 숨을 죽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무속의 진을 빼기 위해서인데, 숨죽이는 과정이 없다면 나무가 틀어져서 가구 수명이 짧아진다. 숨을 죽이는 과정은 나무에 따라서 다르다. 진이 나오는 참죽나무는 최소 6년 이상은 비를 맞혀야 문제가 안 생기고 색도 좋아지며, 먹감나무의 경우 진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1년 이상 비를 맞혀서는 안 된다. 소나무의 경우 물러서 잘 틀어지기 때문에 한 겨울 동절기 한두 달 사이에 나무를 베어 가구를 짜면 뒤틀림이 없다. 이미 물이 뿌리로 다 빠졌기 때문이다.


“가구에 쓰는 나무는 숨을 죽이는 것이 중요해요. 색이 예쁘다고 생나무를 쓰면 안 돼요. 어떤 나무든 바로 가구로 만들면 토라져요. 숨을 죽이면 어떤 나무든 하자가 없어요. 오히려 숨을 죽이는 과정에서 색이 더 예뻐지기도 하죠.”


우리나라 땅 면적의 70%를 산이 차지하고 있을 만큼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그 나무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으면 소나무나 느티나무 등 목가구 용으로 유명한 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나무들을 가구로 다시 탄생시킬 수 있다. 그 특성에 대해 예로부터 전해진 내용도 있으며, 현대에 와서도 밝혀진 내용도 있지만, 나무마다 각각의 특성이 다르니, 장인은 나무를 썩혀도 보고, 태워도 보고, 물에 담가도 보며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각각의 나무에 적합한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전북 완주군 고산면 양화로 181-4



조상의 혼, 가구를 통해 다시 이어지다
소목장 소병진 <소병진전주장전수교육관>



전라북도 잠업시험장에서 폐산업시설로, 그리고 새로운 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복합문화지구로 다시 태어난 완주군 용진면 완주 군청 옆에 자리한 <누에>. 국가무형문화재 소목장 소병진 장인은 그 한편에서 교육생을 양성하며 전통가구의 보존과 전승에 힘쓰고 있다.


장인의 공방은 그가 작업하는 작업실,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육실, 그의 작품과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는 자료관, 장인을 소개하는 시청각실, 재료보관실로 이뤄져있다.


자료관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에 쭉 전시되어 있는 장인의 도구들이 눈에 띈다. 장인이 썼던 것들이지만 물려받아서 100년이 넘은 것도 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도구들은 그 시간만큼의 노력과 열정을 쏟아낸 장인의 지나온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자료관에 놓인 장인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웅장하며 고아한 멋이 있다. 특히 나무 특유의 문양을 고스란히 살려 만든 먹감나무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옆에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지만, 장인이 복원, 재현한 전주장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전주장은 조선시대 17~18세기에 유행하던 가구로 전주지역에서 생산해 전주장이라 불렸다. 보통 위의 여닫이문과 아래 반닫이가 결합되어 있으며, 위쪽에는 패물이나 족보 등을 보관했고, 밑에는 옷 등을 보관해 주로 안채에서 사용하던 가구였다. 전주장을 이루고 있는 문양은 유교사상을 나타내는 밭 전자(田), 보석이나 돈을 상징하는 칠보, 건강을 상징하는 불로초, 다산을 상징하는 박쥐와 쭈꾸미 문양으로, 다양한 문양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화려하면서 품위 있는 느낌을 자아낸다.


장인은 전주장을 복원하는 과정 중에 조선 한식가구 목가구용 적층부재를 발명해 특허를 받았다.  판에 나무를 붙일 때 사이에 한지를 넣어 수축과 팽창에 의해 나무가 틀어지거나 터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장인은 “이 부재로 인해 전주장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주장의 복원으로 장인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작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다 이룬 것 같아요. 이제는 후배 양성에 전념하려고 해요”


그는 자랑스러운 전주의 유산이 후대에도 이어지는 일에 힘쓰고 있다. 공방은 장인의 열정으로 늘 기운이 넘쳐난다.
전북 완주군 용진읍 완주로 462-9



배움과 가르침이 소통하는 공간
자수장 전경례 <금우전통자수연구소>



전경례 장인의 공방은 완주군 소양면에 들어설 공간이다. 장인을 만나기로 한 장소가 가까워졌을 때 새로 칠한 건물 몇 채가 보였다. 건물은 세련된 멋이 있었다.


장인은 그의 어머니, 자운 강소애 선생의 작품 전시장으로 먼저 안내했다. 자수는 꽃가마부터 색동저고리까지 다양한 소품에 아름다움을 더했다. 공방은 이곳 전시장 옆에 조성될 계획이다. 8월 중순에 공사를 마칠 계획이었으나 장마 여파로 완공이 늦어지고 있다.


공방을 전시장 옆에 차리는 이유가 궁금했다. 장인은 어머니의 기운을 받아 많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함이라고 답했다. 장인에게 공방은 가르치기 위한 공간이다. 자수는 사실 작업에 필요한 바늘과 실 그리고 천의 규모가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작업만을 위한 공방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3년 전, 장인은 강의를 하기 위해 집 근처에 공방을 차렸다. 아쉽게도 그의 생각과 달리 공방은 사람들에게 전시 판매장처럼 여겨지는 듯했다. 2년 만에 공방을 정리했다.


그는 작품 판매가 아닌, 강의를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그는 작품을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욕심없이 전통 방식을 고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큰 아쉬움이 있다. 전통 자수를 전업으로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자신으로부터 전통 자수가 이어지기를 소망하지만 아직은 희망을 찾지 못했다고 그는 말했다.


장인은 어머니, 자운 강소애 선생으로부터 자수를 배웠다. 2005년부터는 전통 자수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향교서원활용사업단에서 일하면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전통 자수를 강의한다. 그의 뒤를 이을 전수자를 찾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아쉬움. 아직 상황은 여의치 않지만 공방이 열리면 많은 사람이 찾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북 완주군 소양면 곰티로 29-13


전통 속에서 가장 현대적인 답을 찾다
옹기장 이현배 <손내옹기>



‘생산방식은 최대한 전통적으로, 쓰임은 가장 현대적으로’. 진안의 옹기장이 이현배 씨가 옹기를 만드는 모토다. 골동화 되어 버린 옹기를 현대인의 삶에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장인은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장인은 전통방식대로 장작 가마와 천연유약인 오짓물을 사용한다. 옹기는 발효를 위한 그릇이어서 통풍되는 기능을 위해 맑은 불에 산소를 계속 공급하며 지나가는 불에 굽게 되는데, 그때 가마 안에 그릇이 많아야 축열성이 있어서 그릇이 골고루 익게 된다. 그 정해진 공간을 채우기 위해 그릇을 포개는데, 무너지지 않고 위의 무게를 잘 지탱하도록 쌓는 기획력과, 유약을 골고루 녹이는 정확한 지점의 불을 다루는 기술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그런 어려움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작 가마나 천연유약을 사용하지 않지만, 장인은 전통 방식을 고집한다. 이유가 있다. 방치하듯 조건만 갖춰놓고 발효시키는 우리 식 발효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그것을 담는 그릇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릇이 숨을 쉰다기보다는 그릇에 담긴 음식이 숨을 쉴 수 있게 하는데, 그 기능은 장작 가마에서 구웠을 때 얻을 수 있어요. 장작 가마에 옹기를 굽는 과정은 음식을 발효시키는 과정과 유사한데, 그렇게 구워진 그릇이 그런 맛을 내는 거죠.”


실제로 장인의 옹기를 사용한 손님들은 다른 장독과 비교했을 때 차를 발효시켜도 더 맛있고, 장이나 김치를 보관해두면 맛의 깊이가 달라진다고 한다.


장인은 도시 아파트 생활에 맞는 그릇을 시도했으며, IMF 이후로는 양식이 일반화되면서 한식과 양식을 겸할 수 있는 식기류도 도전했다. 옹기 에스프레소 잔은 서양의 식문화까지도 옹기가 담아낼 수 있음을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이제 장인은 다시 장독에서 옹기의 돌파구를 발견하고자 한다.


 “장독의 라이벌은 냉장고예요. 예전에는 냉장고 값에 맞췄는데, 옹기 값은 안 오르고 냉장고 값만 올라서 격차가 커졌어요. 아주 얄미운 물건이죠. 냉장고 광고에서 ‘가전, 작품이 되다’라는 카피를 사용하는데, 저는 ‘작품, 가전이 되다’를 해보려고 해요(웃음).”


그의 공방은 진안 마령읍에서 정천으로 이어지는 고갯길에 있다. 그가 직접 복원해낸 큰 가마와 작은 가마, 오랜 세월 그의 실험정신(?)을 온전히 담고 있는 작업 공간, 그리고 온갖 쓰임으로 주인을 맞고 있는 샵까지 갖추고 있는 공방이다. 옹기를 빚고, 가마에 불을 때는 장인은 이곳에서 손님을 맞는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임진로 1724



4대를 거쳐 내려온 한지 공방
지장 김일수 <한지공장>



지장 김일수 장인의 공방은 임실군 덕치면에 있다. 오랜 세월, 장인의 일상이 놓여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공방을 찾았을 때는 아쉽게도 잠시 공방을 쉬고 있는 때였다.

 

“한지는 만들 때 손이 많이 가고, 불 앞에서 하는 작업이 많아서 여름철에는 거의 작업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여름철에는 공방을 쉬게 되지요.” 장인은 닫힌 공방을 열고 한지 만드는 과정을 소개해주었다.


장인은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만든다. 한지의 주재료는 닥나무 껍질인 피닥이다. 장인은 한지 제작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직접 길러서 채취해 사용하는데, 닥나무밭의 크기만 2,000평이 넘는다. 닥나무를 삶아 벗긴 껍질을 말리고, 물에 불려 잿물에 삶는다. 삶은 피닥은 물을 짜내고 방망이로 두드려 물에 잘 풀어질 수 있게 만든다. 섬유질 덩어리가 된 피닥을 닥풀과 함께 물에 풀고, 발로 뜨면 한지가 완성된다. 닥풀은 황촉규로 만드는데, 닥의 섬유질이 서로 잘 엉겨 붙도록 돕는다. 장인은 한지를 뜰 때 외발뜨기 기법을 사용한다. 외발뜨기는 발에 물을 뜨고 흘리는 작업을 반복하며 종이를 뜨는 전통 기법이다. 외발뜨기는 다른 기법보다 손이 많이 가고 힘들지만, 한지를 더 질기고 강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장인이 외발뜨기를 고집하는 이유다.


장인은 자신이 만든 한지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그의 집에는 그가 그동안 만들어온 한지가 가지런히 쌓여 있다. 벽면에는 장인의 삶과 작업이 소개된 신문 기사를 넣은 액자가 걸려 있다. 자신이 걸어온 고단했던 시간을 담아낸 신문 기사는 그에게 큰 위안이 되는 듯했다.


한지 만들기로 평생을 걸어온 장인은 자신의 삶에 자부심이 강하다. 장인이 오랜 세월 함께 해온 공방은 의미가 각별하다. 60년이 넘는 세월을 오로지 이곳 공방에서만 작업해왔기 때문이다.


장인은 아버지로부터 한지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여덟 살때부터 아버지를 도와드리며 익힌 어깨너머 공부가 그 바탕이 됐다. 아버지는 그의 조부로부터 기술을 이어받았으니 장인의 아들까지 이어지는 한지 기술의 맥은 4대를 거치며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오랜 세월, 전통기법을 고집하며 제작해내는 그의 한지는 이미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알려져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한지를 보러 찾아온다. 자신이 지켜온 전통한지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공방에서 장인은 그들을 맞는다.
전북 임실군 덕치면 인덕로 1090-14



아이들 웃음소리 가득한 숲속의 아트센터
도예가 이병로 <도화지 아트센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오래된 폐교에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병로 씨는 도자기 파편을 주우러 왔다가 폐교된 구 상월 초등학교를 발견했다. 도자기 체험교육 공간이나 도예가들의 창작활동 공간으로 조성해보고 싶은 의욕으로 임대를 했다.


개인 작업 공간으로 시작됐지만 지금은 본관 1층은 작업실과 전시실에 교육장 기능을 더했고,  2층은 모두 교육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 상월 초등학교가 자리 잡은 임실군 신전리는 과거 17~18세기 천주교 박해 때 천주교인들이 숨어살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들어왔다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도자기를 만들던 마을. 그중에서도 백자를 만들었다. 장인은 이 마을의 역사를 이어 다시 백자의 꽃을 피워보고 싶었다. 백자 작업을 하게 된 계기다. 백자는 순수, 깨끗, 맑음, 시작을 의미한다. 장인은 백색이 가지는 미의 철학은 화려하고 많은 것을 취하려 하는 욕심이 가득한 현대사회에서 지켜가야 하는 가치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백자 중에서도 여러 형태가 있지만 그는 가장 한국적이고 한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정신적 철학이 담겨있는 백자 달 항아리를 빚고 있다. 장인은 달 항아리에 만남, 소통, 화합, 탄생 4개의 메시지를 담아 세상에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한다.


최근에는 원래는 급식소였던 공간을 장인이 도자기 교육장으로 바꾸어 사용하던 공간을 ‘문화마실 1호’라는 갤러리 카페로 변신시켰다. 도자기도 전시하지만, 일반 회화나 조각, 한국화 등 지역 작가를 초대해서 전시하고, 작가와의 만남, 설명회, 시 낭송, 공연 등이 복합적으로 이뤄지는 공간이다. 임실에 전시 공간이 거의 없어서인지 지역 주민들의 호응과 관심이 높다.


도자기만이 아니라 예술을 폭넓게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장인의 의지에 따라 <도화지도예문화원>은 이제 <도화지 아트센터>로 변모했다. 이제는 지역민들이 쉽게 들어오고 쉽게 활용하고 찾아와서 체험도 하고 교육도 받고, 작가들의 창작 활동도 이뤄진다. 장인의 작업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부터 새롭게 변화한 이곳은 이제 자연과 어우러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전북 임실군 관촌면 신전4길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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