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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 | 기획 [도시의 유산]
전주에서 만나는 ‘손’의 가치 (1)
김하람 기자(2021-11-09 15:24:39)



전주에서 만나는
가치 


전주를 대표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한옥마을, 경기전, 태조어진, 비빔밥, 한지, 부채, 판소리, 콩나물국밥, 풍년제과, 전동성당, 대사습놀이, 독립영화... 도시를 생각했을 떠오르는 것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도시가 문화적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 전주는 넓은 곡창지대와 갯벌이 펼쳐지는 서해안, 소백산맥의 줄기 끝자락을 끼고 있어 환경적 자산이 풍부하다. 역사 속에서 안정된 도시, 풍요로운 환경은 문화를 꽃피우기에 적합한 토양이 된다. 속에서 다양한 예능, 기능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전주는 가장 많은 무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이며, 그중 기능 분야인 공예에 특화되어 있다.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했던 공예품.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면면을 발견할 때마다 선조들의 지혜에 놀라게 된다. 오직 손으로 만들어낸 아름답고 쓰임 있는 것들. 오랜 시간 대를 이어 전주의 곳곳을 채웠던 장인들의 솜씨야말로 전주의 역사이자 빛나는 유산이다. 

도시의 유산 번째 도시 전주에서 손의 가치의 진수를 만난다.




한지의 도시, 한지 장인들

전주를 가장 대표하는 특산품이라 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이한지. 견오백 지천년이라는 말이 있듯 닥나무로 만드는 한지는 천년의 세월을 유지할 정도로 우수한 품질을 자랑한다. 전주는 물이 맑고 닥나무가 많이 자라 좋은 한지를 많이 생산할 있었다. 


한지를 뜨는 도구를 벗해온 한지발장 유배근

한지를 만들기 위해서는한지발이라는 도구가 필수적이다. 한지를 고르게 뜨기 위해서는 표면이 고르고 균일하게 한지발이 필요하다. 대나무를 실처럼 가는 촉으로 만들고, 촉과 촉을 수없이 엮어내는 과정이 어렵고 힘들뿐더러, 값싼 중국산 한지 수입에 밀려 전통 한지 생산을 이어가는 사람이 줄고 있다, 이에 따라 전통 한지발을 제작하는 장인 역시 유배근 장인 사람 밖에 남지 않았다. 우리나라 전통 외발을 유일하게 전승, 보존하는 한지발장 유배근은 2005년에서야 지정 문화재로 지정됐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50 넘게 한지발 외길을 걸어간 장인이 없었다면 한지발은 물론 전통 한지의 맥도 끊겼을 것이다.


지우산, 장식의 새로운 기능을 얻다, 우산장 윤규상   

전주에서만 만날 있는 한지 공예 작품도 있다. 바로 지우산이다. 지우산을 일본이나 중국의 문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도 오랫동안 우산을 만들고 사용했다. 고려시대에장량항우산이라는 양산과 우산의 기능을 겸한 ()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높은 신분의 귀족이나 관리들이 사용했으나 시간이 흐르고 일반 서민들도 대나무 위에 종이를 붙이고 기름을 먹인 지우산을 보편적으로 사용했다. 1960년대 전주는 한지우산 제작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값싼 비닐우산, 천우산에 자리를 잃은 지우산 공장들은 문을 닫게 됐다. 그렇게 지우산의 명맥이 끊어졌으나 윤규상 장인의 손에서 다시 맥이 이어졌다. 지금은 우산장 윤규상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우산을 만들며 명맥을 잇고 있다. 



한지를 오려 아름다운 세간을 만들다, 색지장 김혜미자 

좋은 품질의 한지가 생산되는 만큼, 한지를 바탕으로 공예품 역시 많이 발달했다. 한지는 부드러우면서도 질겨서 찢어지지 않고 여러 겹을 중첩하면 화살도 뚫지 못할 정도로 튼튼하다. 가볍고 튼튼한 성질을 가지다 보니 각종 세간살이에 두루 쓰였다. 한지에 색을 입혀 여러 문양과 색을 조화롭게 붙여 만드는 색지공예는 한지 공예의 대표라 있다. 색지장 김혜미자의 작품은 전통기법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색의 조화가 빛난다. 10 이상 해온 꽃꽂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한 색에 대한 조화로움을 한지로 풀어낸다. 호진 상기호 선생에게 전지공예를, 충남무형문화재 지승장 최영준 선생에게 지승공예를 사사한 그는 박물관의 자료와 내려오는 유물을 통해 지호공예까지 두루 섭렵하면서 전통한지공예의 여러 기법을 익혔다. 그중 섬세하고 고운 색지공예를 집중적으로 작업한다. 


한지를 꼬아 생활용품을 만드는 지승장 김선애 

질긴 한지의 성질을 이용한 공예도 있다. 바로 지승공예다. 지승공예는 한지를 가늘고 길게 잘라 엄지와 검지로 비벼 노끈을 만들고 이를 겹줄과 홑줄로 엮어 여러 기물을 만드는 한지공예의 방식으로 아무런 기구 없이 손의 힘만으로 만든다. 망태기, 소반, 신발, 주전자, 대야, 요강 활용이 무궁무진하다. 한지를 엮어 생활용품을 만들어 썼던 선조의 지혜가 놀랍다. 지승장 김선애는 각종 자료와 유물을 통해 연구, 옻칠이나 미투리 제작 부족한 부분은 전문가를 찾아가 배우며 독학으로 기법을 터득했다.



전주의 이름을 알리는 부채 장인들


전통합죽선의 방식을 온전히 잇고 빛내는 선자장 김동식, 엄재수, 박계호

조선시대에는 좋은 전주한지를 바탕으로 부채를 만들어 임금에게 진상했다. 조선왕조 500 동안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던 호남 최고의 통치기관 전라감영에는 여러 일을 맡은 부속건물들이 있었는데, 진상품인 부채를 만드는 선자청도 있었다. 전주 부채는 대나무 껍질을 얇게 이루어 서로 합쳐 만들어합죽선이라 부른다. 


선자장 김동식은 기술이 현대화되고 기계화 되는 가운데 전통 기술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지금도 여전히 전통 합죽선 제작 방식을 그대로 고집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2015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그는 외가로부터 4대째 가업을 대물림 받고 있으며, 그의 아들 김대성 씨가 후계자로서 5대째 이어나가고 있다. 


선자장 엄재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진 칠접선을 복원했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검정 다양한 색으로 옻칠한 칠접선에서 우리 부채의 다른 멋을 느낄 있다. 아버지인 엄주원 장인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어깨 너머로 부채일을 배운 그는 선자장들의 유품,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부채들을 연구해 대륜선, 칠접선, 백접선, 대모선, 우각선, 금반죽선 수많은 우리 부채를 복원했다.


선자장 박계호는 전라감영길에 공방선자청 열어 부채를 알리고 있다. 우리 부채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아버지 박인권 장인때부터 이어온 드라마, 영화 등에 부채를 협찬하고 있다. 부채를 복원하기 위해 다른 선자장들이 만들지 않는 피선, 채화선 등의 부채를 만드는 작업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선자장 방화선

접었다 펴는 접선 형태의 부채 외에도 단선 부채의 맥을 잇는 장인이 있다. 선자장 방화선이다. 단선은 부챗살에 비단이나 종이를 붙여 만든 둥근 모양의 부채다. 어려서부터 놓기의 고수였던 장인의 부채는 고르게 살을 놓아 낭창낭창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분다. 그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재해석한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전통을 잇는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부채면에 현대적인 그림과 글씨를 넣어보기도 하고, 손잡이 부분을 전체적인 디자인에 맞춰 새롭게 디자인하기도 하며, 부채 면을 다양한 형태로 만들기도 한다. 그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국제회의장에 마련된 공방에서 전통 부채 아카데미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전주 부채의 대중화와 재도약을 위해 힘쓰고 있다.


부채에 멋을 더하는 불의 흔적, 낙죽장 이신입 

전주의 멋은 부채 속에도 숨어있다. 대나무 표면에 여러 의미를 가진 문양을 인두로 지져 그려내는 기법인 낙죽이다. 이전에는 낙죽장와 선자장이 따로 있어 부채가 만들어지면 낙죽 장인에게 보내 완성하게 했다. 전주낙죽장 이신입은 매운 연기와 씨름하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 비로소 자신만의 기법을 탄생시켰다. 그는 부챗살과 변죽에 그림을 새기는 그치지 않고 부채 선면에까지 이를 적용하여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확립했다. 전기 인두를 사용해 낙죽을 넣는 곳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화로에 숯을 피워 인두를 달구는 전통 기법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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