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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 | 문화이슈 [전북 문화예술 미투 1년]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성폭력예방치료센터와 함께하는 전주시 인권위원회 2차 포럼
이동혁(2019-04-16 13:21:29)



전북 지역에서 첫 미투가 터져 나온 것은 지난해 2월 26일, 한 연극 배우가 언론을 통해 자신의 이름과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부터다. 그 사건 이후 용기 있는 피해자들의 고백이 잇따르면서 일부 힘 있는 연극인들이 자행해 온 추악한 성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됐다. 전북 연극계는 큰 충격에 빠졌고, 침묵했던 피해자의 동료들은 깊은 죄의식 속에서 ‘방관자 스트레스(bystander stress)’를 겪으며 2018년을 보냈다.


1년이 지난 지금 무언가 바뀌었을까? 지난해 11월 22일, 전북 지역 첫 미투 운동 가해자로 지목된 전 극단 대표 최 모 씨가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되기는 했지만, 두 번째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전 전주대학교 박 모 교수의 1심 공판은 6개월째 개시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 밖에도 다른 가해자가 공식, 비공식 절차를 통해 알려졌지만, 지목된 가해자는 합의하에 이뤄진 연애였다며 발뺌을 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성범죄 근절을 위한 길, 잠깐 끓고 마는 냄비 운동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는 피해자들의 용기에 우리가 답할 차례다.


지난 3월 14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전주시 인권위원회 위원과 문화예술 관련 단체, 공무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북 문화예술 미투 1년,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주제로 인권 포럼이 개최됐다.


이번 포럼은 전북 문화예술계 미투 기자 회견 이후 1년이 되는 시점에서 미투 운동 피해자들의 2차 피해 실태와 쟁점을 짚어 보고, 미투 운동의 동력을 이어가기 위한 대응책을 논의하고자 성폭력예방치료센터와 전주시 인권위원회가 마련한 자리였다.


이날 포럼에서 첫 발제를 맡은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김보은 씨는 연극계 내 성폭력 말하기의 어려움에 대해 발표했다. 김 씨는 “작업 경력이 있는 연극인이라면 당연히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의 범주에 속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고, 사실 정말로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며, “이런 협소한 공동체 안에서 평판이란 것은 작업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위계질서에 순응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일부 공공극장 오디션을 제외하면 작업의 태반이 소개로 이뤄지는 연극계 환경에서 꾸준히 작업을 이어 가려면 무엇보다 이 평판이 중요하기 때문에 불편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 김 씨는 “작업 기회를 제공하는 자와 제공받는 자 간에 권력 차가 생기면 이를 악용하는 사례들이 발생한다”며, “이것이 젠더 권력과 만났을 때 ‘말할 수 없는 성폭력’을 만들어 낸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토론에선 성폭력예방치료센터 권지현 씨가 피해자들이 겪는 2차 피해에 대해서 발표했다. “용기를 내 준 피해자들에게 지지와 격려를 보내 준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난하는 목소리도, 무언의 압박도 거셌다”고 밝힌 권 씨는, “2차 피해는 피해자의 노동권까지 위협한다. 동료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은 물론 도리어 피해자를 음해하거나 가해자를 옹호하며 도저히 일할 수 없는 고통 속으로 피해자를 내몬다”고 말했다.


권 씨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 처리 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피해자들에게 해결 방안까지 요구했던 점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조직의 전문성 부족 ▲가해자들을 은폐하는 관행 등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잘 해결된 사례를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 것을 강조하며, 공동체의 인권 감수성과 원활한 갈등 해결을 위한 훈련을 제안했다.

안전한 환경 조성을 위한 제도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발제한 여성문화예술연합 이성미 씨는 “예술가들의 70% 이상이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어 공공기관 위주의 성폭력 방지 정책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법제도 개선이 매우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대표에게 권력을 실어 주는 단체 위주의 창작 지원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며, “예술가들의 지위를 보장하고, 그들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공공 예술 정책의 중요한 역할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송원 씨는 앞선 발제들을 정리하며 다섯 가지 문제점을 꼬집었다. ▲문제를 공론화시켰을 때 자신의 신변이 전부 노출되는 좁은 공동체 ▲한정된 지원금을 두고 서로 경쟁해야 하는 구도 탓에 서로 연대하지 못하는 문화예술인들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상담 창구의 부재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 부재 ▲극소수 기득권만을 위한 지원 사업 등이다.


송 씨는 “지난해 3월 전국 문화예술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 조사에서 여성 예술인들의 50% 이상이 성희롱, 성폭력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며,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고발로 시작된 미투는 단순히 한 개인의 부도덕함으로 치부될 문제가 아니라 안전하고 평등한 작업 환경을 주장하는 여성 예술가들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주시 인권센터 김병용 센터장은 “미투 운동 이후 많은 제도 개선이 있었으나 아직도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왜곡된 인식과 뿌리 깊은 성차별적 사회 구조의 한계가 여전하다”며, “앞으로도 인권 약자의 권리 보호와 인권 행정의 정착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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