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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 | 인터뷰 [공간과 사람]
귀농귀촌 2세대, 농촌에서 여성으로 살기
한성원(2016-08-16 10:17:06)




문화기획 달
살롱 드 마고 | 전북 남원시 삼내면 삼화길 25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그리고 등 뒤를 감싸는 포근한 산세. 한 번쯤은 꿈꿔봄직한 유유자적한 삶의 모습이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훈훈한 마을 공동체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도시의 팍팍함에서 벗어나 농촌에서의 새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어느덧 귀농귀촌의 양상도 한 세대를 거쳐 2세대에 접어들고 있다. 1세대의 경우 귀농귀촌에 대한 인식이 정립되기 전부터 원주민들과의 갈등을 온 몸으로 겪으며 귀농귀촌이라는 사회현상을 정착시킨 사람들이라면, 2세대는 선배 귀농귀촌인과는 또 다른 삶을 일구고 있다. 그 중 귀농귀촌의 메카 남원시 산내면에서 2세대 여성 귀농귀촌인으로서 인생 제 2막을 꿈꾸는 "문화기획 달"을 만났다.
 굽이굽이 지리산 자락을 돌고 돌아 도착한 남원시 산내면은 그 이름처럼 산 속에 폭 안긴 듯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그 덕인지 산내는 이미 수많은 귀촌인들로 인해 집구하기조차 어려운 곳이 되었다. "문화기획 달"의 세 여성 역시 선배 귀촌인들에 이어 귀농귀촌 1번지 산내에 어렵사리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문화기획 달"은 "재미, 창조, 여성성"을 키워드로, 일상에서 문화 예술적 활동을 통해 개인의 가치를 발견해나가는 여성들의 장이다. 여성인권운동가인 대표 "달리"(예명)를 비롯하여 은행원이라는 독특한 이력의 "이리"(예명), 공공미술작가로 활약한 "자정"(예명)까지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세 여성이 모여 농촌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처음부터 "문화기획 달"이라는 이름 아래 뭉친 것은 아니었다. 책을 통해 생태적 삶에 대한 로망을 품게 된 "자정"을 시작으로 여행 도중 마주한 시골의 삶에 매료된 "이리"에 이어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우연처럼 "달리"가 산내로 들어오면서 이들은 완전체가 되었다. 귀촌인의 정착을 돕는 "사단법인 한생명"이라는 단체를 거쳐 차례로 산내에 정착하게 된 이들은 귀농귀촌 2세대 여성이 되었다.






어느 공동체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면 크고 작은 어려움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양상은 1세대 귀촌인과 조금 달랐다. 낯선 이에 대한 궁금증 어린 시선은 물론이고 "달리"를 제외한 두 멤버는 30대 미혼 혹은 비혼 여성에 대한 참견과 차별을 겪어야만 했다. 집을 계약하는 문제부터 시작하여 결혼에 대한 주위의 압박 등이었다.

"여기는 1세대 귀촌인들이 조직을 잘 만들어놔서 원래 주민들과 크게 부딪힐 일은 없었어요. 오히려 귀농 1세대 분들의 문화가 짜여져 있는데 거기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부담되긴 했어요. 학부모 커뮤니티가 굉장히 발달되어 있고 공동 육아에 대한 경험이 엄마들을 굉장히 끈끈하게 엮어내지만 미혼 혹은 비혼 여성이 이 문화에 섞여 들어가기 힘들고 들어가지 않으면 정보를 얻기 힘들어서 억지로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스며들지 못해요."
귀농귀촌 2세대의 마을 적응기는 원주민과의 관계보다 1세대 선배들의 사회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게다가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이라는 조건은 마을의 기존 여성 커뮤니티에 진입함에 있어서도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으로서 농촌에 발을 붙인 이들의 눈에는 여성이기에 보다 뚜렷이 볼 수 있었던 농촌의 문제들이 다가왔다. 그들이 마주한 농촌사회는 여전히 가부장적이었고 크고 작은 결정들 역시 남성들의 권한이었다. 그리고 기존 관습에 학습된 여성들 역시 이런 부당함에 익숙해져 버렸다. 더 큰 문제는 기성세대의 여성억압이 귀농귀촌 세대에 까지 세습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 도시에서 그러지 않았던 남자들까지 이곳에 오면 변하는지. 마을 행사를 가면 언니들은 밥하고 설거지하고 서빙 하는데 남자들은 공차고 일 년에 몇 번 힘쓸 때만 일하거든요. 농촌의 여성들은 바깥 일 집안 일 다 해요. 그러면서 가부장적인 권위와 권력은 남성들만 소유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어요."
"문화기획 달"은 기존 어르신들의 인식까지 바꾸는 것은 어렵다고 인정하지만 적어도 자신들의 세대와 그 이후까지 전승되어선 안 된다고 느꼈다. 또한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은 여성들과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농촌 여성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됐다. 물론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이웃 간에 좋지도 않은 일을 굳이 들추려한다는 불편한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저 좋은 이웃관계였기에 퉁치고 넘어갔던 일상을 예민하게 다시 보게 되면서 "여성주의저널 일다"에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이제 퉁 치지 말자"라는 프로젝트로 농촌 여성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더불어 지난 2014년 봄부터 발간하고 있는 계간지 "지글스"는 "지리산에서 글쓰는 여자들"으로 지리산에 터잡아 사는 여성들의 창작활동을 담고 있다. "문화기획 달"의 활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농촌 여성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그 목소리를 더욱 키우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농촌의 여성주의 학교를 꿈꾸는 페미니즘 스터디 그룹 "페미나"는 현재 내년도를 목표로 착실히 자체 교육과 자료정리 등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이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는 지리산 여성전용 창작생활공간 "살롱드마고"는 태고부터 지리산에 자리했던 여신 "마고"의 응접실이란 뜻으로, 여성창작자를 위한 레지던시 사업과 공간대여 사업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여름 휴가철에는 민박사업까지 함께 운영한다. 그밖에도 지역의 아동 청소년과 감성 충만한 일상예술생활 전략을 만들어가는 "시골낭만충전소"와 주민들과 빵을 통해 소통하는 "빵 굽는 이야기" 등과 같은 문화예술교육사업을 통해 지역민의 삶의 융성을 위해 힘쓰고 있으며, 내년도 주요사업 계획 중 하나인 청소년공간프로젝트는 지역의 청소년이 안전하고 편하게 즐기며 스스로를 찾아가는 공간을 준비하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세 명이서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일이라 생각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토록 열심인 이유는 농촌 여성의 실질적인 생활기반 확충이라는 큰 비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기획 달"의 활동을 보며 사회적 의미나 공동체 기여를 기대하지만 사실 이들에게는 결국 먹고 사는 문제이다. 이들이 경험한 농촌은 3-40대 여성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에 매우 척박한 곳이었다. 교사나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자기 일을 가지기 힘들고 아이가 있는 여성은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들이 문화예술교육사업을 하는 이유 중 하나도 강사로 참여하는 여성들에게 크진 않지만 어느 정도의 수익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이들이 수많은 업무를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 즐겁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도시에서 일할 때보다 경제적 보상은 부족하지만 이를 뛰어넘는 만족감이 있다는 것이다. 귀농귀촌도 돈 있어야 된다고 말하는 시대에서 어쩌면 이들은 농촌의 돈키호테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산내의 돈키호테들은 이 모든 일들이 결국 농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농촌을 생각할 때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는 이웃 간에 정이 살아있는 공동체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분명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더욱 "문화기획 달"의 활동이 가치 있는 이유는 여성인권활동을 통해 형성된 젠더적 감수성이 우리의 이웃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가 실현된 건강한 공동체라면 농촌은 더 살기 좋은 이상향이 되지 않을까. 귀농귀촌 1번지 산내라면, 그리고 "문화기획 달"이 지키고 있는 산내라면 충분히 기대를 걸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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