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자들의 눈빛과 목청에 유난히 긴장이 실린 무대. 판소리는 어떤 외피를 입고 '현대적'이라는 모토를 구현해 낼지 더 궁금해지는 자리.
2016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발표회와 쇼케이스를 겸한 무대가 지난 7월 6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열렸다.
소리축제는 연초부터 '안방마님으로 예우할 판소리' 또는 '모던하고 세련된 판소리'를 올해의 슬로건으로 내놓고 있던 터였다. 그러니 그것을 어떻게 현실화하고 있는지,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이 무대는 그만큼 기대가 더해졌다.
프로그램발표회는 개별 프로그램(라인업)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로 이어졌고, 쇼케이스는 올해 소리축제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내놓고 있는 야심작 '판소리 다섯바탕' 중 세 바탕의 맛보기 공연이 펼쳐졌다.
한국 창극의 별 왕기석 명창이 심청가를, 최근 가장 물오른 기량을 뽐내며 국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임현빈과 박지윤 명창이 춘향가를, 재기발랄한 젊은 여성 소리꾼 김선미·김찬미·양은희·원진주·정수인이 흥보가 한 대목을 뽑아냈다. 3분 남짓한 짧은 시간은 확실히 본 공연(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9. 29~10. 3 )의 규모와 화려함을 상상하기엔 부족함이 있었으나 출연자들의 공력은 소리축제에 대한 기대를 한층 높여주는 통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실 올해 소리축제는 일찌감치부터 공연장의 실험적 구성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판소리를 주제로 모악당(2200석 규모)을 영상과 미디어, 무대장식을 동원해 모던하게 바꾸고 판소리 공연의 외양을 새롭게 디자인한 공연을 시도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이상의 배경지식이 제한된 마당에 상상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눈치챘을까. 박재천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은 "판소리는 연희자의 몫이기 때문에 근본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해석으로 결국은 외양에 대한 디자인이 판소리 공연의 본질을 해치지 않고 얼마나 조화롭게 부합될 것인지가를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한편으로는 기대가 또 한편으로는 우려되는 대목이 있긴 하지만 판소리에 외피(디자인 또는 장치)를 두르는 일이, 그러니까 이 같은 몸부림이 대체 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고민도 고개를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대다수 현대인들의 공연관람 형태와 경향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축제집행위로서는 나름대로 그 needs를 충족하거나 혹은 뛰어넘기 위한 시도로 비쳐진다. 그것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성패를 떠나 대한민국에서 행해진 적 없는 낯선 실험과 시도라는 점에서는 관심을 갖고 지켜볼 만한 대목이다.
체류형 축제…머물러 놀 수 있는 테마로 관객 손짓
올해 소리축제는 이 판소리 다섯바탕을 필두로 160여회에 이르는 공연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으로 집중하고 지난해 개발한 오송제 편백나무숲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한옥마을을 벗어나 소리전당으로 축제무대를 집중하고 소리전당과 그 주변으로 밀도 있는 축제를 치르겠다는 의지다. 공연 이외에도 도민들, 시민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관람객들의 오래되고도 한결같은 요구, "공연보다 부대행사를 강화해 달라"는 이야기도 전략적으로 수렴한 듯 보인다. 이른바 '체류형 축제'로서의 내실 다지기다. 그러기 위해 공연장뿐 아니라 소리전당 내에 보고 먹고 놀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테마를 개발해 머물러 있고 싶은 장소로서 축제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소리축제가 그리고 계획해 이 거대한 소리전당이 닷새간 어떤 모습으로 생명력을 얻을지, 얼마나 이 공간이 다채롭게 변주될지 지켜볼 부분이다.
소리축제의 꽃 주목할 만한 공연들
소리축제의 꽃은 역시 국내외에서 엄선된 다채롭고도 이색적인 공연들이다. 올해 축제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공연으로는 개막공연과 더블빌(동시공연), '월드뮤직 빅 파티'를 들 수 있다.
개막공연은 'Sori from the World'를 주제로 판소리를 중심으로 한 한국전통음악과 세계의 다양한 민족음악을 글로벌 연합오케스트라로 구성한 무대다. 그 규모와 화려함에서 관객들을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폴란드, 중국, 티벳, 프랑스, 일본, 인도, 미국, 뉴질랜드 등 15개국 전통음악이 참여하는 초대형 다국적 공연으로, 모든 연주팀이 동시에 한 무대에 올라 각 나라의 개별음악과 컬래버레이션을 넘나들며 마치 하나의 거대한 변주곡을 연주하듯 완성된다. 출연진들만해도 약 70여 명으로 새야새야, 아리랑 등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는 곡들을 해외 연주자들과 함께 공연할 예정이다.
소리축제의 대표 기획공연 '더블빌(동시공연)'도 눈길을 끈다. 올해에는 한국의 가곡과 아제르바이잔의 무감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귀한 기회가 주어진다. 한국의 가곡은 대표적인 전통 성악이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정가'의 명인 조순자 선생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아제르바이잔의 성악 무감의 신예 어르주 알리예바의 신비로운 음성을 감상할 수 있다.
두 번 째 더블빌 무대는 전북작곡가협회와 터키 얀스말러 앙상블이 준비한다. 전북작곡가협회는 현대음악으로 전통 시나위를 새롭게 해석해 선보일 예정인데, 소리축제에서 첫 선을 보이는 초연작으로 주목된다. 얀스말러 앙상블은 서양음악의 흐름과 터키 민속음악의 경계에서 양측의 특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어법을 찾는데 고심해 온 연주팀이다. 그만큼 관객들에게 폭넓은 공감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는 30개국 6개 분야 160여회 공연과 소리문화의전당 곳곳에 테마가 있는 공간들이 운영될 예정이다.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축제를 예고하고 있다.
2016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오는 9월 29일(목)~10월 3일(월)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라북도 14개 시군에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