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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8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오월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이휘현(2016-08-16 10:25:56)




첫 수학여행에 들떠 여수로 향했던 큰 누나가 그 날 오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왜?"라는 물음에 큰 누나 또한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여수로 가는 길이 막혀 1박2일의 일정이 급하게 취소되었고 대신 전주동물원에 반나절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실망한 표정의 큰 누나 만큼이나 일곱 살의 나 또한 낭패감에 젖어들었다. 수학여행 가면 사온다고 약속한 장난감 선물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기대가 수포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1980년 5월로 향하는 내 첫 기억은 그렇게 '아쉬움'으로 얼룩져 있다. 슬픔과 공포, 분노로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이 '오월'이라는 시공간과 엮이게 된 건 그로부터 십 수 년 후의 일이다.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게 된 건 오월의 기억과 상관이 없다. 유독 상(賞)의 권위에 약한 한국 사람들의 심성에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이라는 좋은 먹잇감이 노출되었고, 역시나 한국 사람인 나 또한 그 권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어 서점에서 한강의 소설을 들추어 보았던 게 이번 독서의 첫 번째 이유다. 그나마 알량한 자존심은 있어서 남들 다 주목하는 <채식주의자>를 우선 피한 것이 <소년이 온다>를 읽게 된 두 번째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이유 하나 더! 서울의 친한 후배가 작년에 이 책을 추천한 적이 있다. 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그 후배에게 '1980년 5월 광주'는 그저 역사책에 남겨진 지문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연히 읽게 된 소설 <소년이 온다>가 그 후배에게는 제법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너무 슬퍼서 눈물까지 흘렸다는 그 후배는 이참에 오월 광주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일종의 의무감마저 품게 되었다고 나에게 넌지시 말했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를 근거로 서점에서 <소년이 온다>를 집어든 나는, 그날 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대단한 몰입감이었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어서도 나는 쉬이 잠에 빠져들지 못하고 뒤채였다. 그건 단순히 몰입감 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대목이었다. 5·18이 더 이상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부채의식으로 남아있지 않은 이 시대에, 케케묵었다고 생각했던 그 해 오월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나를 흔든 것일까?

유방을 칼로 갈랐다요. / 시상에…… / 뱃속에서 애기를 끄집어냈다는 말도 있어라. / 시상에 뭔 일이단가……
- 한강 <소년이 온다> '에필로그 – 눈 덮인 램프', 197쪽 -

열 살 무렵의 한강이 들었다던 그 무서운 풍문은 어린 시절의 내 귓가에도 혹은 다른 누군가들의 귓가에도 스쳐갔던 것들이다. 우리는 모두 1980년대의 어두운 터널을 그 풍문과 함께 흘러왔다. 문제는, 그 풍문들이 그 해 오월로부터 36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용산에서, 평택에서, 팽목항에서, 혹은 우리 일상 곳곳에서….
오월 광주는 현재진행형이다. 끊임없이 다른 장소에서 변주되어 풍문처럼 떠도는 우리 시대의 우화인 셈이다. 그러므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오늘의 우리가 처해있는 여전한 슬픔과 비극을 마주하는 하나의 거대한 거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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