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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9 | 문화현장 [문화현장]
달빛아래 바로 보는 한옥마을, 전주야행 천년벗담
전주야행 천년벗담 - 전주 한옥마을 일대
한성원(2016-09-19 09:42:07)




서울에 살던 코흘리개 시절, 경복궁은 그저 집 근처에 있는 오래되고 큰 건물이었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리 큰 관심도 없었다. 아주 먼 옛날 임금님이 살았다는 정도? 익산으로 내려와 초등학교 현장학습으로 다시 찾은 그곳은 공부할 것으로 가득 찬 커다란 학습장이었다. 사실 좀 지루했던 기억이 없지 않다. 그리고 어느덧 성인이 되어 마주한 경복궁은 제법 즐겁고 화사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여자친구와의 첫 고궁 데이트였음이 큰 이유일 것이다. 관광산업의 경제적 가치가 높아지고 문화재를 바라보는 인식 또한 변하면서 우리의 문화유산을 소비하는 방식 역시 꽤 바뀐 듯하다. 몇 해 전부터 경복궁에 이어 여러 고궁이 야간 개장을 한다는 소식과 함께 연일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으며 기간을 연장한다는 뉴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은은한 달빛 아래 향유하고픈 대중들의 요구가 많이 늘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문화재 야간 관람이라는 흐름 때문인지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문화도시 전주 역시 무더운 여름밤을 밝힐 준비를 했다. 전주 한옥마을을 즐기는 새로운 방법, 전주의 유·무형문화재가 어우러지는 밤, "전주야행 천년벗담"이 문을 열었다.
1년 365일 축제가 없는 날이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은 축제로 가득 차있다. 지역의 문화적 자원들과 결합한 축제는 사람들의 주말을 특별한 추억으로 채우고 있다. 그중 전주 한옥마을은 연간 1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오가며 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전주 한옥마을의 관광지화가 진행되면서 한옥을 비롯한 문화재는 뒷전으로 밀리고 국적불명의 음식들이 거리를 가득 메워 한옥마을로서의 본질을 흐린다는 지적 또한 끊임없이 재기되어 왔다. 전주 한옥마을 관광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에서 문화재청과 전라북도, 전주시가 주최한 "전주야행 천년벗담"은 문윤걸 추진단장의 지휘 아래 문화재가 주인공이 되는 야간형 문화향유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다. 문윤걸 추진단장은 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의 유형을 먹거리를 찾아오는 유형과 문화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유형으로 보고 그동안 사람들의 사진 배경에 머물러있던 문화재를 무대 가운데로 끌어올리기 위한 기획을 준비했다. 따라서 행사의 각 프로그램들은 쉽게 소비하고 마는 흥미 위주의 대중성보단 문화재 그 자체로 깊이 남을 수 있도록 품격 있는 콘텐츠가 되어야 했다. 사실 각각의 문화유산이 가지는 가치는 이미 책을 통해 많이 공부해왔지만 문제는 그 품격을 어떻게 대중들에게 전달하느냐였다.
"전주야행"의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다도, 다례, 다식을 테마로 경기전에서 펼쳐진 "달빛산책"과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지 전동성당에서의 "천상지음" 성음악연주회, 큰 인기를 끌었던 그림자 오케스트라 공연과 더불어 전통연희를 선보인 "무형유산한마당" 외에도 전주향교 "묵향청음", 오목대 "월하낭송", 남부시장 "탈출게임", 전주천 "쪽배살풀이", "국악버스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한옥마을과 인근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그밖에도 한옥마을에 자리한 여러 문화기관들과 연계한 프로그램들도 전주야행의 밤을 한껏 달궈주었다. 말 그대로 한옥마을 어디를 가도 볼거리가 있고 즐길거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더불어 조명을 활용한 밤 풍경 조성과 "방 탈출 게임", "플레시몹" 등을 접목한 프로그램은 젊은 세대의 취향에 맞아떨어지며 방문객의 이목을 끌 수 있었다. 전주야행이라는 하나의 행사에 이토록 많은 프로그램들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추진단과 협업한 공동연출단이 있기에 가능했다. 전주야행 추진단은 행사의 기획의도에 공감하고 이를 가장 잘 연출해 줄 수 있는 지역의 단체를 찾아 그들에게 한 꼭지씩을 일임했다. 전통문화를 전승해나가는 지역의 주체로서 전주 한옥마을이라는 맥락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고 또 연출할 수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공동연출단과 함께 한 이유는 단지 그들의 전문성뿐만이 아니었다. 지자체의 예산으로 진행되는 특성상 공동연출단의 각 연출단이 행사의 개념과 목적을 이해하고 공감했다면 예산지원이 없어져도 지속성을 가지고 자체적으로 각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전주야행의 풍경은 얼핏 한옥마을에서 이전부터 진행되어오던 콘텐츠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엄선된 콘텐츠들로 구성된 전주야행의 프로그램은 질적 측면에서 보다 짜임새 있었다. 거리는고운 빛깔 한복을 입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어딘가에서 우리 음악의 향이 풍겨왔다. 공연팀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기 시작한 청중은 어느새 큰 무리를 이루어 한옥마을 곳곳을 무대로 만들었다. 이는 전주야행이라는 이름 아래 지역의 연출단이 함께 만들어낸 어울림이었다.
다만 메인이라고 볼 수 있는 다수의 프로그램이 한옥마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다보니 프로그램 관람에 대한 시공간적 제약이 있어 보고 싶은 한 두 개의 프로그램을 선별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일부 프로그램은 "전주야행"이기에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전주 한옥마을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었던 프로그램과 크게 다르지 않아 차별성 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다행인 점은 문윤걸 단장을 비롯한 행사 주체가 이를 느끼고 있었고 벌써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에 있을 9월 30일 행사와 더 나아가 1년 후 다시 마주할 전주의 밤에 더 큰 기대감을 가지게 되는 이유이다.
대학시절 유·무형문화유산을 공부하며 박제화 된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에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해법에 대한 깊은 고민에 다다르지 못했던 미숙한 전공자의 눈에 이번 "전주야행 천년벗담"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대중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그리고 한 움큼 더 깊이 다가가게 만드는 의미 있는 시도라고 느껴진다. 처음이기에 부족함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문화유산을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서 바라보고자 하는 의미 있는 시선은 그 시작부터 이미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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