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5 | [저널초점]
우리 삶, 우리 문화
우리 문화의 창조적 바탕이 여기 있다
김익두 전북대교수 국문학과(2003-09-23 12:01:34)
1.
전라북도의 여러 문화유산 중에 민요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의 민요란 '전통 토착 농어촌 공동체 사회의 민중들이 집단적으로 창조하여 구비전승으로 이어 내려온 노래'이다.
전북지역은 우리나라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소리의 문화'가 다양하고 수준 높게 꽃피고 열매 맺은 곳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성악에서의 판소리요, 기악분야의 풍물 굿이다. 특히 이 지역의 판소리는 '소리'의 예술을 도전한 경지에까지 밀고 나아간 지극히 수준 높은 공연예술을 이루어 내었다. 그러다 보니, 이에 비하면 매우 소박한 상태로 존속해 온 민요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이 지역 사람들에게 그다지 높지 않은 경향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민요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장점은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시점에서 볼 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판소리와 풍물굿은 분명 민요가 존재하고 있던 토착적 민중적인 거처로부터 훨씬 벗어나 이제는 그것들이 이루어졌던 시대 사회와는 매우 다른 현대사회까지 창조적 변이를 통해 그 계승적 전개를 계속하고 있다. 민요는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그러한 변이를 능동적으로 이룩할 수 없을 정도로, 전통 토착 농어촌 사회에 긴밀하게 고착되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토종'이 귀하고도 중요한 시대로 접어들어 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러한 변화는 아주 급격하고도 전면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러한 변화를 매우 총체적이고 도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른바 '우루과이 라운드'이다. 우르과이 라운드는 우리에게 우리의 '토종'을 가지고 남들과는 '다른'. 우리만이 가능한 문화를 제품들을 만들어보라고 위협하고 있다. 만일 그럴수 없으면, 일방적으로 그럴 수 있는 문화와 제품들을 수입해 가야만 한다고 을러대고 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늘 주장해 온 바와 같이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우리의 '토종'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토종'유전자가 없으면 유전공학의 창조가 불가능한 것처럼 문화와 예술에 있어서도 이 '토종'예술의 유전자가 없으면 독창적인 작업이 불가능하다.
판소리와 풍물굿 속에도 이 '토종'유전자는 많이 들어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미 여러 단계의 교배를 거쳐서 고도로 발달되고 숙성된 종(鍾)이기 때문에, 새 품종을 개량해 내기 위한 토종 재료로 서는 매우 부적절한 것이다. 이미 완숙 단계에까지 발전한 종을 다시 처음단계로 돌이키거나 다른 미완의 종을 발전시키는 재료로 쓸 수는 없다. 그러한 종은 그 발달한 그대로를 잘 보존하고 가다듬어 나아가는 것이 더 바람직한 길이다.(판소리는 민요에 비해 '완결된 형식'이고 민요는 판소리에 비해 '생성되는 형식'이다. 완결형식은 완결형식으로서 가야할 길이 있고 생성형식은 생성형식으로서의 마땅한 길이 있다.)
이에 비해 전북 도처의 토착 민요는 '토종'으로서의 성격을 비교적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면서 노래문화를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아갈 뛰어난 노래의 '유저공학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여기에 문화 창조 기반으로서의 전북 민요의 가치가 있다. 이제 우리의 노래문화는 '다양화'해야 하며 그 다양화는 독특한 각 지역 토착민요를 그 창조적 기반으로 해야 하며, 그러한 방향으로 바람직한 우리 노래문화의 창조적 지평을 열어나가는 데 있어서, 전북지역의 '토착민요'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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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전북민요는 현재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전북민요를 찾으려면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만 할까?
전북민요를 찾아보는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민요를 기억 전승하고 있는 토착 농어촌 주민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직접 전승 민요와 그 주변상황을 알아보는 방법이고, 다른 한 가지는 이미 다른 사람들에 의해 조사되어 있는 자료들을 구해 보는 방법이다. 전자의 방법은 아직도 매우 유효하고 바람직한 방법이다. 지금도 토착민요를 기억으로 전승하공 있는 인포먼트(제보자)들이 상당 수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방법은 간접적인 방법인데, 현재 가장 종합적으로 조사 정리되어 있는 단행본 자료집으로는 『전북의 민요(김익두, 전북애향운동본부, 1989)』가 있고. 이 외에 노동민요들만을 모아 정리한『전북의 노동요(김익두 외, 전북대 박물관, 1990)』가 있고, 그 외에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편)』의 전라북도편-각 군별로 간행되고 있음, 현재 정읍군, 남원군, 부안군, 옥구군, 완주군, 남원군, 부안군, 옥구군, 완주군 등이 간행되어 있음-의 민요 부분과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문화재관리국, 1971)』의 '민요부분', 『한국민요집(임동권, 집문당), 1-7』에 실려 있는 전라북도 지역민요, 『조선구전민요집(김소운, 1993)』에 실려 잇는 전라북도지역민요『조선동요집(엄필진, 1924)』의 전북지역분 민요, 그리고 각 군소 지역에서 간행된 문화지, 군지 등에 실려 있는 것들이 있다. 이중에 『전북의 민요』와 『전북의 노동요』는 가사를 중심으로 하되, 몇몇 중요한 노래들의 음악적인 측면들을 서양식 오선보로 채보해 놓고 있으며, 그 외의 나머지 자료들은 모두 가사들만을 모아 기록한 자료들이다. 음악적인 자료들로는 현재 올해 말에 나올 예정인 컴팩트디스크인 『한국민요대전-전라북도편(서울문화방송 교양제작국편)』이 작업 중에 있다. 현재 '제주도편'과 '전라남도' 편이 나왔으나 비매품으로 출간되어 일반 독자들의 구입에 어려움이 있다. 보급판 녹음테이프를 계획 중이라고 하니 기대해 볼 만하다. 기타의 전북민요자료들은 대개가 임동권의 앞의 책『한국민요집, 1-7』에 두루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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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자료들을 토대로 하여 전북민요를 개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알랜 로멕스에 의하면 한국의 음악 문화는 '아시아'의 '동아시아 음악문화권'에 속하고 그 중에서도 '한국음악문화권'으로 독립 분류되어 있다. 이 한국음악문화권의 음악적 특질은 현재 국내의 연구에 의하면 '무반음 5음 음계', 농현(弄絃)적' 표현법, 3박자 계통의 리듬이 많은 점, 장단 골격이 박자와 속도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점, '선율리듬', '도섭'적인 표현법, '한배에 따른 형식', '즉흥'의 창조적 전개 등이 지적되고 있다(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민족문화대 백과사전』참조.)
(특성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로 앞의 책을 참고하기 바람). 이 각 민요권 중 남도민요권 민요의 특징으로는 '극적이고 굵은 목을 눌러 내는 소리', '계면조의 떠는 목', '평으로 꺾는 목' 장단의 다양성 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전북'이란 단위는 행정단위 명칭이므로, 문화의 지역적 특성을 구분 짓는' 문화지도 와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 민요를 통해 전북지역을 보아도 이런 면모는 매우 확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즉 전북민요가 개괄적으로 볼 때는 남도민요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만, 자세히 좀더 미시적으로 보면 매우 다양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미시적인 특성들이 우리나라 전 지역에 걸쳐서 밝혀져야 진정한 의미의 우리 '민요지도'가 작성될 것이고, '문화지도'의 작성에 실제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전북지역 민요의 구체적인 특성들을 살펴보자. 먼저 전북 민요의 구체적인 특성들을 살펴보자. 먼저, 전북민요의 '기충'을 이루고 있는 것은 노동요(농업노동요, 어업노동요)와 제의요(상여소리 등)이다. 특히 노동요는 전북민요의 토착적인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이 노동요를 근거로 해서 전북민요의 지역적 특성을 좀더 구체적으로 고찰해 볼 수가 있다.
전북민요는 이 노동요를 근거로, 대체로 '동부 산간지역(무주군, 진안군, 장수군 및 남원군의 동부산간지역인 산내면 동면 아양면 운봉면)서부 평야지역(이리시, 익산군, 군산시, 옥구군, 전주시, 완주군, 임실군, 남원군의 평야지역, 순창군, 김제군, 정읍군, 부안군, 고창군)', '서해도서지역(고군산열도, 위도, 식도 및 기타 섬지역)'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동부 산간지역의 민요는 가창방식 면에서 후렴 없이 주고받는 '교환창'방식을 쓰며 일의 기능에 따른 곡조의 분화가 비교적 적고, 그 대신 가사가 매우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으며, 토리(음악적 사투리)면에서는 '동부민요'와 같은 계통인 '메나리(강원도, 경상도, 충청도 일부지방에 전승되는 민요의 하나, 매우 구슬프고 처량한 느낌을 줌)토리'를 구사하여, 동부민요권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노동요 곡조의 분화가 매우 미약한 점-특히 도작노동요의 경우에-은, 이 지역이 산간지방이라서 일조량이 비교적 적어 논매기 작업이 평야지역보다 발달하지 못한 데에도 그 한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노동요는 '모노래' 및 밭매는 노래'이다.
이제 비해, 서부평야의 토착 민요는 가창방식면에서 대표적인 소리꾼이 소리를 메기고 그 일패의 나머지 구성원들이 그에 비해 '후렴'으로 응하는 '선후창'이 지배적이고, 노동의 기능(예컨대, 모심기, 논매기, 벼베기, 등짐하기 등등)에 따를 곡조의 분화가 매우 다양하고, 이에 비해 가사는 동부산간지역의 민요보다 비교적 덜 다양하며, 토리면에서는 대체로 '남도민요'의 중요한 토리인 이른바 '육자백이토리'로 부른다(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평야지역도 이리, 익산, 군산, 옥구, 김제에 이르는 지역에서도 '메나토리'의 노래가 전파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산야' '산유화' '산양가'등으로 불려지는 만두레소리-마지막 논매는 소리-가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 노래는 충청도 남주 전역에 두루 퍼져 있는 도작노동요인 '산유화' 경상도의 신세타령인 '어사용' 혹은 '얼사영', 강원도 강릉의 '오독때기'와 같은 계통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문화권'에 대한 고찰의 좋은 근거를 민요에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육자백이토리'는 오히려 전남지역으로 갈수록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노동요는 이 평야지역에서 불려지고 있는 '논매는 소리들'이다.
서해도서지역의 토착노동요는 가창방식은 평야지역과 같이 '선후창'이 지배적이고, 기능에 따른 곡조의 분화도 다양하지만, 노래를 부르는 토리면에서는 서부평야지역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강렬하며, 매우 남성적인 액스타시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특성들을 우리는 우선 '섬토리'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 점은 좀 더 종합적인 고찰, 특히 음악적인 고찰을 통해서만 명확한 논의에 도달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노동요는 부안군 위도지역에서 불려져 오는 '가래질소리', '슬비소리', '배치기소리'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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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전북민요의 현실적 가치와 관심의 필요성, 그리고 전북민요를 개략적인 특성 등에 관해서 간략히 살펴보았다.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이 지역인들이 많은 관심, 그리고 그를 통한 전북지역 노래문화, 전북지역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독특하고 바람직한 노래문화의 진전을 기대해 본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전북대학 박물관에서 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민요자료의 조사 정리, 그리고 전북도립 국악원에서 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민요의 현장조사, 채보, 편곡 및 공연 등)에 찬사와 격려를 보내며, 이제 노래문화의 '우르과이 라운드'에 대비할 수 있는 진정한 '지역노래운동'이 이 민요를 바탕으로 하여 들불처럼 점점 거세게 일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우선 그런 작업의 초석이 될 수 있는 단체의 결성을 빌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