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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 | 칼럼·시평 [문화칼럼]
전주, 세계 한국학을 품다!
이종민(2016-11-17 13:49:13)

올해는 셰익스피어 서거 5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공연이 기획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것만 해도 수십 가지에 이른다. 세계적 문호에 걸맞은 대접이다. 이 대문호 덕에 영국문학 전체가 세계적인 것으로 발돋움했다.
이를 위한 영국의 전략은 치밀하고 끈질겼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기는 영국의 르네상스기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친 시기와 겹친다. 해군력으로 대서양을 지배하면서 세계  열강으로 발돋움하게 되지만 문학예술은 이제 습작기를 겨우 벗어났을 뿐이다. 200여년 전 초서라는 걸출한 시인이 있었지만 그 성취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다. 언어가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태리 프랑스 등 대륙에서 수입한 소네트 등의 시형을 빌어 근대 문학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대륙에 대한 문화적 열등의식이 심하던 시기에 거목이 돌연 나타난 것이다.
이 열등의식을 극복하기 위하여 셰익스피어를 앞세운다. 그리스 비극작가와 비교하기도 하고 조금 늦게 태어난 프랑스 몰리에르 등과 견주기도 한다. 판정은 항상 셰익스피어의 승이다. 새로운 문학이론이 나타나도 그의 위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스러지고 만다. 그 끝에 "셰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말까지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포장한 영문학을 식민정책을 통해 전 세계에 확산시킨다. 하여 동방의 자그마한 반도국의 4년제 대학에도 영문학과 없는 곳이 없다. [셰익스피어]라는 단독 교과목을 운영하는  대학도 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 전략을 그대로 계승 추진한다. 처음 대학교수가 된 1983년에 이미 미국학연구소가 전북대학교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다른 연구소는 없거나 유명무실할 때 많은 지원을 받아 홀로 번창하고 있었다. 지금은? 별 지원이 없다. 불필요하다. 이미 한국인 스스로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발적으로 영문학과 미국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많다. 영문학회와 미국학회는 인문분야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모임이다. 한해 초대받아 무료로 한국에 다녀가는 영미학자만 해도 수십 명에 달한다.
미 대륙 '발견'은 한글창제와 [용비어천가] 150년 후의 일이다. 셰익스피어가 미처 초기 소네트도 발표하기 전에 도산 12곡을 발표한 퇴계 선생은 이미 돌아가셨다. [사미인곡], [속미인곡], [관동별곡]의 송강 선생도 셰익스피어보다 30여년이나 탄생이 빠르다. 그런데 이 분들의 글을 가르치는 곳이 전 세계 대학에 몇 군데나 있을까?
'세계 한국학 전주 비엔날레'는 이런 물음에 기대어 출발했다. 가장 한국적인 글로벌 명문을 추구하는 전북대학교와 가장 한국적인 도시를 내세우면 세계적인 품격의 문화도시를 꿈꾸는 전주시가 힘을 모았다. 전 세계 한국학 학자들을 격려하고 한국학의 확산에도 기여하자는 취지에서이다. 한류에 머물지 않고 그 기저의 철학과 사상, 문화와 예술도 제대로 향유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좀 더 잘 한국을 이해하고 찾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가자는 것이다. 전북대학교에 와서 퇴계의 시와 사상, 정철의 가사를 공부하고 전주한옥마을에 들러 한국의 전통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데 그 목표와 의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작년 예비대회를 치른바 있다. 외국 학자들의 반응은 예상한 것 이상이었다. 모두 행사취지에 공감했을 뿐만 아니라 그 중 2명은 조직위원으로 합류하여 올해 본 대회를 함께 준비하기까지 했다.
올해 11월 1일부터 5일까지 4박5일로 펼쳐지는 비엔날레는 크게 학술행사와 문화체험으로 대별된다. 첫날 저녁 환영만찬에서는 친교의 시간과 한국음악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함께 제공한다. 이틀 동안 진행될 학술대회는 크게 4 세션으로 나뉘어 총 20개국 35명의 외국인학자와 1명의 내국인 학자가 발표를 맡는다. 특히 4번째 세션은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대학원생들의 발표와 토론으로 구성했다.
다음 날은 한옥마을, 전통문화전당, 전통문화연수원, 국립무형유산원 등에서 다양한 전통문화체험과 전주가 자랑하는 장인들과의 토크쇼도 함께 치러지며 완주송광사와 김제 금산사에서의 템플스테이도 이어서 진행된다.  
그런데 두 기관이 공동주최를 하다 보니 우여곡절이 하나둘이 아니다.  인문학 교수님들의 무관심, 혹은 시샘 비난도 예상보다 심했다. 개인 이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 우선 작용했을 것이다. 분과학문에 갇혀 학제간 연구에 무관심한 탓도 있을 것이고. 모두 넓고 길게 보지 못하고 당장의 자기와 관련된 성과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학문세계든 문화의 영역이든 단기적 효과에 연연하면 오히려 피폐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
바람이 있다면 어렵게 터를 잡은 이 행사가 지속적으로 일정한 규모를 유지하며 추진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한 번의 이벤트로는 아무런 성과도 기대할 수 없다. 한때 한국학 지원 펀드에 기대를 했던 해외 한국학 학자들을 다시 실망시키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지역의 대학과 지자체가, 중앙정부나 국가가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일, 준비가 잘 된 곳에서 먼저 이끌어나가겠다는 소명의식으로 임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또한 이를 계기로 정부도 세계 각 대학에 한국학과 및 한국학연구소 설립사업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한다. 이는 결국 대한민국의 격을 높이는 일이며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 각 대학에 한국학과가 생기면 우리가 원어민 교수가 된다. 정원감축으로 위기에 몰린 대학에 많은 해외 유학생들을 유치하는 효과도 있으며 국내 신진학자들의 해외진출 기회도 더 늘어날 것이다. 
제발 영미의 자국학 확산 정책 좀 눈여겨보시라. 그 뒤를 이어 일본과 중국이 현재 펼치고 있는 일본학 지원 프로그램이나 중국의 공자아카데미, 동북공정에도 주목 좀 하시라. 우선은 베풀어야 한다. 발표기회도 주고 문화체험도 하게 하여 스스로 보람과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이 없었다면 영국의 정책이나 그 효과도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속적인 눈속임은 불가능하며 오히려 혐오감만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퇴계, 송강을 넘어 최치원, 설총 등 기라성 같은 시인 사상가들이 있다. 다산, 추사 등도 그 뒤를 든든하게 바치고 있다. 많은 세계인들을 감동으로 이끌 수 있는 품격의 문화예술도 즐비하다.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때가 무르익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그 때는 그냥 기다린다고 찾아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치밀한 전략과 지속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전주, 세계 한국학을 품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이런 다짐의 구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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