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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 | 특집 [명장의 손이 만들어낸 이 물건들]
참 신비하고 아름답다
(2016-11-17 13:58:05)

여기, 참 아름다운 물건들이 있습니다.
앞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일상에서 즐기고 사용했던 물건들입니다.
들여다보면 우리 선조들은 일상에서 쓰이는 생활용품 하나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습니다. 쓰임새 못지않게 그것의 품새를 중요하게 여겼던 옛 사람들의 미의식은 놀랍습니다.  자개를 잘라내고 오려내 꽃을 만들고 새를 만들어 붙인 찻상, 대나무 마디마다 인두로 그림과 글씨를 새겨 활짝 피어나게 한 부채, 수천 번을 두드려 비로소 얻은 방짜 유기, 나무 표피에 상처를 입혀 얻어낸 옻을 몸으로 다스려 절묘한 색채와 무늬로 옮겨낸 옻칠그릇, 나무를 조각하고 다시 사궤에 딱 들어맞게 꿰맞추어낸 꽃살문 창호, 한 땀 한 땀 침선장의 공력을 돋보이는 그림과도 같은 왕의 옷까지…….
이 물건들은 모두 우리지역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수많은 과정을 거쳐 손으로만 완성되는 물건들에는 저마다의 가치와 쓰임이 존재합니다. 거기에는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는 '다름'이 있고, 무엇보다도 만드는 사람의 물건에 대한 '순정'이 있습니다.
공예품은 쓰임이 생명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옛사람들의 일상에서 숨 쉬었던 수많은 공예품들은 기계에 의해 대량 생산되는 상품들에 그 자리를 내주고 쓰임의 영역에서 도태됐습니다.
1년에 한번, 그들 명장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올해도 열렸습니다. 
전시실 안은 예년보다도 더 풍성했습니다. 전주에서는 좀체 볼 수 없던 방짜유기와 전통붓이 더해진 덕분입니다.
어렵고 고단한 길을 기꺼이 가는 명장들의 삶은 경이롭습니다. 그 경이로움에 존경의 뜻을 담아 이 물건들을 독자들께 전합니다.

전주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작품전 2016년 10월 24일~11월 6일
전주 경기전 내 어진박물관 기획전시실



여든 번의 손길을 더하니...
윤규상의 지우산 흑색, 백색

지우산은 대나무로 만든 살에 기름먹인 한지를 발라 만듭니다. 지우산을 만드는 과정의 모든 기술을 익히는 데는 적어도 2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제작과정에서만도 여든 번의 손길이 필요한 지우산은 그만큼 과정이 복잡합니다. 이런 이유로 수작업으로 지우산을 만드는 장인은 윤규상 명장이 유일합니다.
오늘에 이르러 지우산은 실용의 목적 보다는 공예품으로 더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전통예술 공연을 비롯해 영화 소품 등에 사용되는 것이 거의 전부지만 그만큼 소장의 가치를 더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지우산은 다양한 색상의 한지를 사용하거나 그림을 넣는 등 전통방식에 예술적 가치를 더합니다. 백색 지우산과 흑색 지우산의 조화가 참 아름답습니다.



꽃살문 열린 이 자리
김재중의 연꽃살문

창호는 건축물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소재(?)입니다. 창호를 '건물의 얼굴'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거기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통건축에 있어 전통창호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연미를 보여줍니다. 전통창호는 아귀를 꿰맞추는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김재중 명장은 못이나 접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사궤가 딱 들어맞게 창호를 제작해냅니다. 전통창호 기법 중에서도 불교예술의 정수로 불리는 '꽃살문' 재현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금산사를 비롯해 용인 민속촌, 선운사, 전주향교의 꽃살문 등이 모두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섬세한 조각 무늬의 꽃살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처연한 슬픔이 묻어납니다.




섬세한 도안으로 더욱 아름다운 자개무늬
최대규의 구족반과 빗접
나전칠기는 자개를 무늬대로 잘라 목심(木心)이나 칠면(漆面)에 박아 넣거나 붙이는 칠공예입니다. 최대규 명장은 주로 함이나 상과 장을 만듭니다. 대부분의 공정이 까다로워 한 개를 제작하는데 최소 3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모든 공정이 다 중요하지만 그는 밑 도안, 다시말하자면 설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숙련이 필요한 기법과 달리 설계는 타고난 감각이 중요하지요. 그의 나전이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인데요. 브랜드가구의 등장으로 나전칠기 산업은 예전 같지 않게 된지 오래지만 지금도 그는 15평 규모의 작업장에서 전승활동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아름다운 나전칠기가 놓일 수 있는 배경입니다.





마침내 온 몸의 소리를 얻다
최동식의 정악 산조거문고
거문고는 세부적으로 1000가지가 넘는 공정을 거쳐서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제작과정이 까다롭고 오래 걸리는 그만큼 공력이 요구되지요.최동식 명장은 우리나라 처음으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가 된 김광주 선생으로부터 거문고 제작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는 스승이 만든 울림통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여다보며 연구했다고 합니다. 오랜 고투 끝에 얻은 결실. 마침내 그는 악기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울림통 전체의 소리를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가 만든 거문고 소리는 수많은 명인들이 알아보았습니다. 신쾌동 명인을 시작으로 오늘날에도 내로라하는 연주자들이 그가 만든 악기만을 찾고 있습니다.




마음까지 울리는 맑은 음색
고수환의 소뼈 흑단상감 산조가야금
고수환 명인은 가야금을 비롯해 거문고, 아쟁, 해금 등 전통현악기를 만드는 장인입니다.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김광진과 남갑진 명인을 사사했습니다. 그의 악기는 나무를 제재하는 과정만 제외하고 철저하게 그의 손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전통수제작 악기라 부를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는 100년이 넘는 오동나무만을 사용해 악기를 만드는데 옹이 나무가 그의 손을 거쳐 더 큰 빛을 발하는 악기로 태어나는 과정은 신기합니다. 나무의 옹이 덕분인지 그의 악기는 무늬도 아름답습니다. 그의 가야금은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맑은 음색으로 이름이 높아 3대가 물려가며 사용할 수 있다는 평을 받습니다. 지난 2003년에는 전설의 악기 ‘공후’를 복원하고 악기 뿐 아니라 연주법까지 되살려 냈습니다.



대나무 마디마다 열기로 피어난 꽃
이신입의 민화, 윤선
낙죽장은 익숙치 않습니다. 그만큼 오늘날 이 작업을 이어오는 장인이 많지 않습니다. 낙죽은 인두로 대나무 겉면을 지져서 글씨를 쓰거나 그림과 무늬를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단단한 대나무 위에 인두로 그림과 글씨를 새겨넣는 작업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가늘고 힘이 없는 부챗살에 달궈진 인두의 온도를 조절해가며 일일이 하나하나 그림을 그려야 하는 과정은 뛰어난 기량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신입 명장은 부친 고 이기동 선자장으로부터 부채 만드는 기술과 함께 낙죽의 기법을 물려 받았습니다. 그는 합죽선의 부챗살과 변죽에 넣는 낙죽기법과 함께 선면에도 낙화기법을 이용, 자신만의 독창적인 합죽선을 제작합니다. 다른 합죽선과 차별화되는 그의 합죽선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습니다.




건축물의 품격, 깊어지고 높아지더라
신우순의 연화 장구머리
단청은 오방색이 기본입니다. 오방색의 아름다움을 건축물 구석구석에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려 장식하는 단청으로 건축물의 품격은 높아지거나 깊어지지요. 단청은 기후 변화로부터 건축물을 영구보존하는 기능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신우순 명장은 단청의 모든 부문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문양을 비례감 있게 구사해내는 공력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색채 사용에 있어서도 원색적인 색채 대신 채도를 낮추는 등 조채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습니다. 그는 전통단청 기법을 구현하기 위해 검정색 안료를 만드는 데만도 큰 가마솥에 엉켜있는 그을음을 긁고, 다시 불에 조리는 과정을 반복하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의 공력 덕분에 고건축은 다시 생명을 얻습니다.






수천 번 두드려야 비로소 얻어지는 그릇
이종덕의 방짜 태극 접시와 종지

방짜유기는 손으로 두드려 만든 유기를 말합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주물유기와 달리 제작 과정이 까다롭고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지만, 변색이 잘 되지 않고 쉽게 깨지지 않는 장점이 있지요.
방짜유기는 『경국대전』에 전주와 남원에 유기장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전북을 대표하는 토산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특히 징과 꽹과리는 방짜로 만들어야 제대로 소리가 나는 악기여서 소리의 고장 전북이 방짜 제작의 중심이었습니다. 무형문화재 이봉주 선생을 사사한 이종덕 명장은 전통 방짜 유기 뿐 아니라 현대인들의 생활에 맞게 쉽게 닦이고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방짜유기 제품 개발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모양도 독특한 그의 태극 접시와 종지는 방자 유기의 특징을 그대로 담은 현대적 조형으로 눈길을 끕니다.




다시 일어서는 털의 일체된 힘
곽종찬의 전주 붓 천년지우

붓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100번의 손길이 필요할 정도로 과정이 복잡합니다. 털의 기름기를 빼내는 과정은 가장 중요하면서도 숙련된 기술을 요해 특별히 공을 들이는 과정이지요. 곽종찬 명인은 특히 털을 고르는 기술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습니다. 그는 피물상으로부터 동물 가죽을 통째로 구입해 일일이 털을 잘라 사용했던 아버지 덕분에 암놈과 수놈, 부위 등에 따른 털의 질감과 길이, 색 등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좋은 붓은 네 가지 덕을 갖춰야 한다고 말합니다. 끝이 뾰족하고 가지런해야 하며, 털의 모듬이 원형을 이루어야 하고, 한 획을 긋고 난 뒤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나의 붓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네 개의 붓으로, 제작하는 데 보름 이상이 소요되는 '사동고리'는 그의 대표작입니다




대나무에 담아내는 절묘한 소리
최종순의 대금

대금은 대나무 중에서도 쌍골죽이라 하여 내경에 살이 꽉 차 있는 기형 대나무로 만든 악기입니다. 대나무의 굵기와 단단한 정도에 따라 음정이 결정되는데, 최종순 명장은 타고난 음정 간격을 잘 구사해내는 기술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가 만드는 악기는 대금 말고도 중금, 소금, 단소 등 모든 죽관악기가 그의 손에서 태어납니다. 대금을 만드는 악기장 중에서도 그를 찾아오는 연주자들이 많습니다. 그의 공력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대금산조의 명인 이생강도 그의 악기를 즐겨 찾는데, 그는 이생강으로부터 직접 연주를 배우기도 한 대금연주자이기도 합니다. 그 덕분에 그가 만든 악기는 그만이 지닌 음감에 숙련된 기법이 더해져 깊은 소리를 만들어냅니다. 그의 대금에서 금세라도 소리가 울려나올 것 같습니다.



화려하고 격조있는 꽃무늬의 조화
이의식의 채화칠 각개수리

옻나무의 옻으로 공예품에 칠을 하는 옻칠은 14개 단계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옻은 나무 표피에 상처를 입혀 얻어내는 재료입니다. 옻칠을 하는 사람 또한 온 몸에 오르는 옻독의 고통을 이겨내야 비로소 작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의식 명장은 가구 제작을 시작으로 옻칠을 본격적으로 배웠습니다. 옻칠은 흙먼지 하나만 들어가도 작품의 훼손이 있어 매우 까다로운 데다 수년의 작업시간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는 국내에서 보다 옻칠공예의 최대시장인 일본에서 더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옻칠 작품은 아름답습니다. 여기 선보이는 채화칠 각개수리는 그 색채와 꽃무늬의 조화가 화려하면서도 격조있습니다. 멋과 품격을 알았던 옛사람들의 미의식이 그의 옻칠 작품으로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전통부채에 들인 현대적 디자인의 조화
방화선의 목단단선과 모란꽃 태극선

'방구 부채'란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다른 이름으로는 단선이라고도 하지요. 부챗살에 비단이나 종이를 붙여 만든 둥근 모양의 부채를 이릅니다. 부친이자 스승인 고 방춘근 선자장으로부터 기능을 전수받은 방화선 명장은 이 방구 부채를 주로 만드는 장인입니다. 그는 온전히 전통의 형태만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부채에 현대적인 그림과 글씨를 넣거나 부채 자루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등 전통과 현대의 다양한 접목을 시도하고 있지요. 특히 공간의 면 분할과 선면의 폭을 조절해낸 그의 부채는 미적인 감흥을 더해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전통의 새바람이 그이의 부채로부터 불어옵니다.



결코 낯설지 않은 정통부채의 원형
박인권의 어피합죽홍선

조선시대 합죽선은 생활도구가 아닌 의관의 하나였습니다. 때문에 합죽선의 주인이 세상을 뜨면 부장품으로 함께 묻혔지요. 유물로 남아 있는 합죽선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이유입니다. 박인권 명장은 이름만 남은 합죽선의 원형을 되살리는 일에 매달려온 명장입니다. 이름을 살려낸 합죽선 중에서도 뱀가죽을 변죽에 감아 만든 '룡피칠선'은 오직 그만이 유일하게 재현해낸 작품입니다. 그는 부채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다시 친근하게 만든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영화 '혈의 누', '스캔들', '관상',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는 역사적 배경과 주제에 맞춰 제작된 합죽선을 등장시켰습니다. 그의 부채가 낯설지 않다면 그 덕분일겁니다.




대를 이어'한국'이 된 합죽선
엄재수의 합죽황칠선과 칠접선

부채살이 훤히 비치는 합죽선. 제법 익숙한 옛 물건이지만 엄재수 명장의 합죽선은 좀더 특별합니다. 근대 부채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고 엄주원 명장의 아들인 그는 사실 다른 일을 하다 뒤늦게 부채 만드는 일에 입문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아버지로부터 그대로 물려받은 재질에 노력을 더해 일찌감치 명장에 올랐습니다. 오래전부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합죽선을 만들어내면서 그가 몰두해온 또다른 작업이 있습니다. 옛 부채의 복원을 위한 연구입니다. 옛 선자장들의 유품과 문헌을 연구해 그는 대륜선, 칠부채, 백접선 등 고문서에 갇힌 부채를 세상 밖으로 꺼냈습니다. 그의 열정으로 만든 부채, 참 가치 있습니다.



한국을 세계에 알린 정교한 태극
조충익의 알태극선

태극선은 부채의 선면에 태극무늬를 그려 넣은 부채를 말합니다. 태극선은 마흔여덟 번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조충익명장은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삼태극 작도법을 고안해 낸 장인입니다. 그의 도안은 비공식 표준이 되었지요. 제각각이던 태극의 모양과 비율도 하나로 통일시켰습니다.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은 그의 태극선을 들고 입장했습니다. 그가 만든 태극선은 금선, 대금선, 파초선, 민화선 등 20여 종에 이릅니다. 그 중에서도 일반 부채보다 부챗살이 세배나 많은 250개 살을 가진 세미선은 태극선 제작기법의 극치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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