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로 '거룩한 어머니' 혹은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뜻의 알마마테르(Alma Mater).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를 찬양하는 성가곡의 제목이기도 하고, 영어에서는 '모교(母校)'라는 의미로 자주 쓰이기도 한다. 음악과 문학과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어머니 품처럼 편안한 문화공간이 되고 싶다는 그곳, 전주 서부신시가지에 카페 '알마마테르'가 있다.
카페 '알마 마테르', 강가현씨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구룡1길 5
알마마테르의 회색빛 건물은 겉모습부터 독특하면서도 깔끔하다. 운치 있게 녹슨 묵직한 철문을 힘들여 열고 들어가면 높직한 천장부터 눈에 들어온다. 음악이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전용공간을 따로 두기 위해 일부러 복층구조로 지어서 천장이 높다. 한쪽 벽면에는 오래된 책들로 빼곡한 서가가 있고 다른 쪽 벽에는 어느 화가의 작품들을 전시 중이다. 구석구석 소품 하나하나까지 공들여 배치하고 단장해서 그런지 작지 않은 공간인데도 썰렁하지 않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요즘 보기 힘든 LP 음반 턴테이블도 실내 분위기와 은근히 구색이 잘 맞는다. 주인 강가현씨가 향이 진한 커피를 손수 내려왔다. 50대 중반쯤의 나이에 호리호리하고 아담한 체격이고 말씨 조용조용하다. 집이 주인을 닮은 걸까, 주인이 집을 닮은 걸까?
가현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에 빠졌다. 김제 백구면의 시골에 살던 고등학생이 전주 경원동에 있는 예술회관까지 클래식 음악 연주회를 감상하러 다녔다. 작은 시골교회의 목회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유신독재에 저항하다가 여러 차례 투옥되었던 저명한 민주화운동인사이기도 했다. 한평생 강직하고 청빈한 목사로 살아온 아버지가 죄 없이 감옥살이를 하고 있던 암울한 시절의 분노와 상심을 음악으로 달랬단다. 당시에 전주에서 열린 음악회는 거의 빠뜨리지 않았다. 요즘처럼 승용차로 다니는 시절도 아니고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가면서 반나절씩 걸리는 전주 나들이를 했으니 지금 생각해봐도 보통 열정은 아니었다.
음악회 있어서 전주에 나오던 날 자주 들렀던 곳이 카페 '빈센트 반 고흐'다. 인스턴트 커피를 팔고 유행가를 틀어주는 다방 일색이었던 그 시절에, 사이폰 커피와 클래식 음악이 있는 빈센트 반 고흐는 문화예술인들과 지식인들의 명소였다. 시인이나 화가들의 대화를 귀동냥하면서 향이 깊은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음악까지 들을 수 있는 그곳이 가현씨는 너무 좋았다. 빈센트 반 고흐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음악을 듣다가 막차를 놓칠 뻔했던 적도 많았다.
십대 후반부터 여러 해 동안 단골로 드나들었던 빈센트 반 고흐와의 인연은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 뜻밖의 계기로 다시 이어졌다. 1990년대 초반 가현씨가 결혼 직후에 전주 도심에서 원목가구를 취급하는 공방을 열었는데, 마침 가게가 빈센트 반 고흐 바로 옆이었다. 그런데 몇 년 만에 찾은 그곳은 추억 속에 남아있던 그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새 주인이 여러 번 바뀌어서 자주 드나들었던 문화예술인들의 발길은 뜸해졌고, 커피도 음악도 그 시절과 달라져 있었다. 속상하고 안타까웠다. 한 동안 고민한 끝에 주인을 찾아가 뜬금없이 카페를 인수하겠다고 했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가구공방도 채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무모한 결심이었지만, 예전에 자신이 좋아했던 그곳으로 다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간절했다.
어렵게 주인을 설득해서 빈센트 반 고흐를 인수한 후 문화공간으로 가꿔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카페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실내에서의 흡연이 금기시되지 않던 시절이었고 특히 카페에서의 흡연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애연가 단골들을 잃는 부담을 감수하고 깔끔한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새로운 주인의 느닷없는 금연조치로 발길을 끊은 이들도 없지 않았지만, 쾌적한 분위기에 호응하는 새로운 손님들이 점점 늘어갔다. 매주 요일을 정해 음악과 영화를 감상하고 시낭송회도 열었다. 어느새 하나 둘씩 동아리모임들도 생겨났다. 음악이나 영화, 문학을 함께 즐기는 동아리는 물론이고 봉사활동 동아리까지 만들어졌다. 단골손님들과 아르바이트 종업원들이 함께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지역의 장애인복지시설에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서 나르고 궂은일을 대신 해주는 일을 봉사활동을 여러 해 동안 했다.
몇 년 후 가현씨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본래 아기자기한 성격이라서 실내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던 터에 아예 본격적으로 실내건축업에 뛰어든 것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마련인 사업 초창기에 두 가지 사업을 함께 하는 것이 갈수록 버거워졌다. 마침 오랜 단골손님이었던 한 청년이 자신이 카페를 이어받아서 운영해보고 싶다고 나섰다. 만 18년 동안 손때 묻힌 빈센트 반 고흐를 후배에게 물려주고 떠나오던 던 날, 언젠가는 꼭 더 좋은 문화공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얼마 동안 사업에 전념하다가 부지를 마련하고 건물을 지었다. 지금 알마마테르가 있는 건물이다. 다양한 동아리 활동도 할 수 있고 음악과 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이 따로 확보되도록 직접 설계했다. 그런데 어렵사리 건물을 완공하고 나니 막상 카페를 만들 여력이 없었다. 가현씨가 구상했던 수준의 문화공간을 제대로 만들기에는 운영하는 회사의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몇 년 동안 카페 설립을 미루고 있다 보니 건물을 임대해달라고 찾아오는 이들도 많았다. 건물 신축에 따른 자금압박이 만만치 않았던 터에 당장 받을 수 있는 임대료수입의 유혹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냈다. 건물을 지은 지 4년 만인 올해 2월에 드디어 알마마테르를 열었다. 책장 하나 탁자 하나도 직접 나무를 깎아 정성들여서 만든 것은 물론이고, 음향과 영상시설에도 적잖게 공을 들였다.
커피만 마시고 가는 곳이 아니라 문화와 담론이 있는 카페를 만들겠다는 가현씨의 외고집이 입소문을 타다 보니 몇 달 만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제와 대상별로 세 종류나 되는 영화감상모임, 관현악감상모임, 오페라음악을 해설과 함께 듣는 모임, 시를 감상하고 토론하는 모임 등 온갖 장르의 동아리 모임들로 알마마테르 2층의 일정표는 늘 빼곡하다. "그렇게 공간과 시설을 빌려주면 대관료 수입도 쏠쏠하겠네요?" 물었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좋은 음악 듣고 좋은 영화 보는 편안한 공간으로 만든 건데, 무슨 돈을 받아요! 그냥 음료값만 받는 거죠"하고 씩 웃는다.
문화는 삶과 가까이 있어야 하고 인문학은 삶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가현씨의 소신이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우리 삶과 동떨어져서 홀로 고급스러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부담 없이 향유할 수 있는 편안한 문화, 삶에 맞닿아 있는 문화를 위한 작은 거점을 만드는 것이 알마마테르를 연 이유이다. 그래서 가현씨는 욕심이 많다. 알마마테르를 지금의 동아리활동 공간에서 더 나아간 본격적인 문화공간으로 발돋움시키고 싶단다. 음악 전공자가 아닌 아마추어 연주자들도 언제든지 자신의 실력을 선보이고 끼를 발산할 수 있는 곳, 전문작가가 아닌 이들도 자신의 시를 낭송하고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