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5 | [문화저널]
저널여정
갑오년 농민군의 함성과 채석장
백산
강영례 문화저널 간사(2003-09-23 12:09:57)
오후 3시, 전주를 떠나 백산으로 가기 위해 부안행 직행버스에 올랐다. 재작년 여름, 내가 본 백산은 당장 곧 사라질 것만 같은 위기에 처해있었다. 화강암을 캐내기 위해 시끄럽게 들려오는 포크레인과 트럭소리에 그 작고 작은 산은 난도질당하고 있었고 잡초만 무성한 채 내려 초라한 백산정상은 이제 곧 무너져 내려 다시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어 어쩌다 세인들의 지나간 추억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으로 기억되어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김제 만경평야를 지나 전주를 출발한지 1시간 20여분 만에 차는 부안에 닿았다. 부안터미널에서 백산가는 길을 물으면 누구나 길 건너 백산삼거리를 지나는 버스정류장을 가르쳐준다. 시외 요금인 360원을 내야하는 버스는 백산삼거리까지 20분 거리로 그리 멀지 않은 길이다.
버스를 타고 시원스레 뻗은 길을 달리다 보니 지난번 여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백산성지 뒤쪽이 보였다. 현재 공사는 중지된 상태인 듯 포크레인 서너 대가 산의 절반을 하얗게 도려낸 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산은 거의 절반이 깍인채 흉측하게 주저앉아 있었다. 지난번 백산에서 만난 아저씨 한 분이 산의 훼손을 막기 위해 아무리 탄원서를 내고 진정서를 내도 소용이 없다는 얘기가 현실로 나타나 보이는 듯 했다. 문화재 보호구역임을 알고서도 공사를 진행한 이들도 어이없지만, 아무리 개인소유지라고 하나 주민들의 탄원서를 받고도 허가를 내준 군청의 무책임함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백산삼거리는 김제로 가는 버스와 부안으로 가는 버스가 교차하는 곳이다. 별로 손님이 없는 시간이여서 인지 버스는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달려가고 있다. 백산 삼거리에서 백산으로 향하는 길은 버스가 내린 자리인 전북슈퍼마켓 바로 옆 골목길이다. 한번 와본 길이라 좁은 샛길로 이어지 그 길이 마치 동네 뒷산처럼 느껴져 정감이 갔다.
백산은 해발 47미터인 낮은 야산이다. 아마 수백 미터의 산을 기대하고 가파른 산행을 꿈꾼 답사자들이 있다면 얕고 작은 백산의 모습에 맥이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비록 해발50미터도 안되는 낮은 산이지만 부안, 김제, 고부, 태인 등지와 접하는 교통의 요지로, 백산은 산중턱의 옛토성 자리에 돌과 흙을 쌓아 성지를 구축한 농민군들의 당당한 모습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는 성지이다.
백산성지는 비록 들어오는 길이 좁고 돌이 박힌 가파른 길이긴 해도 그 곳에서 몇발자욱만 올라서 보면 환히 트인 고부들판이 한눈에 내다보여 마치 넓은 바다에 우뚝 솟은 섬처럼 보인다.
당시 농민군들의 함성소리로 온 산이 하얀 옷의 물결을 이루었을 백산은 지금도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라는 전설이 남을 만큼 생생한 역사의 현장으로 남아 있다. 백 년 전 수많은 농민군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혁명의 열정을 불태우고 억압 없는 세상을, 더는 차별받지 않는 새세상을 이루리라 맹세했을 것이다.
현재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사정상부근은 전봉준 장군이 횃불을 높이 들어 농민군들의 호응을 촉구했음직한 곳에 동학전적지를 찾아오는 답사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산 뒤쪽 채석작업과는 대조적으로 보존사업에 많이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이곳은 89년 동학혁명 백산기념사업회가 세운 그날의 함성을 전하고 있다.
삼거리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거의 찢겨져 문맥조차 찾아보기 힘든 벽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쌀 수입 반대, 국회비준 결사지지, UR재협상" 부안 농민회에서 부친 이 벽보는 듬성듬성 내용의 일부를 드러낸 채 역사상 최대의 농민운동 성지 옆에서 누렇게 퇴색되어 있다.
백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갑오년 "척양척왜. 보국안민"을 가슴깊이 새기며 분연히 떨치고 일어선 농민군들. 그들이 이룩한 역사의 상흔이 이 나라 산천구석에 남아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얼마만큼 실천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당당히 역사의 한 복판에 섰던 그들. 넓은 들녘 가득 그들의 모습이 겹쳐오는 걸 느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