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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 | 기획 [손의 힘, 그 가치를 만나다]
손이 주목받는 이유
김형미(2017-03-07 11:03:03)



치유의 핸드메이드

손이 왔다.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금성구(金星丘)와 월구(月丘)가 잘 발달되어 있는 손. 눈이 오고 있었고 바람은 불지 않는 평온한 날이었다. 직접 만들었다는 핸드폰 지갑을 들고서 찾아온 저 손은 인덕이 많고 예술적 재치가 풍부한, 내게는 작은 '기적'을 불러다준 설레임이었다.

암갈색 가죽에 박혀 있는 작은 큐빅에, 나비 문양이 새겨진 핸드폰 지갑. 들고 있을 때마다 맞아서 해가 되지 않는, 삶에 윤택한 멋을 가져다줄 만한 소소한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사과 상자가 들어오거나 뜻밖의 사람과 좋은 인연이 이어지거나, 그 때 그 때 긴요한 소식이 들어오는 등. 물론 핸드폰 지갑이 생겼기 때문에 일어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핸드폰 지갑을 만들어준 손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이지 않을까. 한 번 접촉한 사실이 있는 것은, 이후 접촉이 단절되더라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상호작용을 계속한다는 일종의 주술적 작용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그 손에 대한 나의 믿음에 대한 결과일지도. 일종의 '주술적 마음치유 행위' 같은 것.

갈수록 핸드메이드를 추구하는 사회에서 '손이 주목받는 이유'도 그런 게 아닐까. 지나친 물질주의와 기계문명 속에서 사람들은 기대고 싶은 것이 필요한 것이다. 춥고, 외롭고, 차갑고, 슬프고, 어둡고, 습하며 딱딱한 것처럼 배신당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어떤 '느낌'에 말이다. '엄마손'마냥 위약(僞藥), 혹은 플러시보(placebo)와 같은 심리적 효과를 얻기 위한. 지친 삶을 그렇게 위로받고 싶은 것이다.


핸드메이드는 '사람'이다 
핸드매이드는 획일화되어 있지 않으면서 독창적이다. 똑같은 게 없이 다양한 그 하나하나에 만드는 사람의 시간과 노력과 공력이 집중되어 있다. 사람들이, 그리고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핸드매이드 상품이 아니라 그 상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바로 그 시간과 노력과 공력일 것이다. 그 속에 투여된 혼신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모든 것이 전자화, 기계화된 것들 어디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핸드매이드를 요구하는 쪽이 아닌, 그것을 취용하는 손도 마찬가지다. 어느 쪽이든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기에. 다만 취용하는 손은 공간 안에서 비로소 평안을 찾을 수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휴식처 말이다.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 안에서 잠을 자거나 누군가에게 욕을 하거나, 뒹굴거나 몇날 며칠 씻지 않아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공간.

핸드매이드는 그런 자신만의 공간 안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동인 것이다. 시간 구애를 받을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크거나 작거나, 넓거나 좁거나, 둥글거나 네모지거나 공간에 대한 구애도 받을 필요 없다. 오로지 집중만 할 수 있다면 어디서나 가능한 것이다. 집중하는 속에서 파열음이 없는 순수한, 본연의 혼이 움직이게 되므로. 작아도 '다름'을 추구하는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

핸드매이드를 하는 손들은 하나같이 말을 한다. '핸드매이드는 사람'이라고. 대화와 소통을 통해 나에서 너에게로 건너가는 길. <세월호> 추모식에 노란 리본을 직접 만들어 다는 일에 동참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도 하다고. 이윤 추구가 아닌, '동행'이 목적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유형 그리고 무형의 가치가 공존하는 핸드매이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살아 숨쉬는 문화.

최근 품앗이 형태의 공동체로 발전되고 있는 '핸드매이드 홈 클래스'도 그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우려되는 것이 있다면 실력은 있으나 자격 검증이 안 된 상태로 확대되고 있기에 공동체 안에서, 혹은 공동체 간의 문제가 생겼을 경우 책임감이 적고 분쟁 해결 능력이 떨어질 수 있는 음성적 형태라는 것.

사람이 본성인 칼을 선한 마음으로 쓰면 선한 칼이 되고, 악한 마음으로 쓰면 악의 칼이 된다. 시시때때로 닥쳐오는 모든 문제들이 손에서 나왔다면, 다시 손에게 일임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것이 재입력이라서, 나온 것을 다시 입력한다면 인과성이나 유전성, 영계성, 혹은 세균성 등의 고통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근본을 축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 아닐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손을 만나왔다. 그러는 중 본의 아니게 그 많은 손을 잡아 보기도 했으며, 또 놓아보기도 했다. 어떤 손은 따스했고, 어떤 손은 고독했다. 또 어떤 손은 높고 귀했으며, 어떤 손은 낮고 미천했다. 나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손도 있었고, 어깨를 도닥여주는 손도 있었으며, 춥고 신산한 어둠 속으로 등을 떠미는 손도 있었다. 허여멀건하니 힘이 없는 손도, 지나치게 두꺼워 윤기 없는 손 또한 있었다. 각자의 운명을 손속에 넣어 다니는 손들. 그 많은 손들이 내 손안에 자신들의 체온을 남겨두고 떠나가거나 더러는 남았다.

어떤 이의 마음에 닿아도 '엄마손'의 효과를 줄 수 있는 손, 함께 하고 있으나 혼자일 수밖에 없는 지치고 외로운 삶을 어루만져주는 그런 손을 이 시대와 사회가 바라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만든 작은 브로치 하나가, 핸드폰 지갑이 또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은 바꾸어놓을 수 있는. 그렇게 작더라도 기적이라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손.

'국정농단'도 핸드매이드라 할 수 있을까. 참으로 어리석게도 '국정농단'이라는 것을 기획해놓은 최순실의 손은, 이 세상에 안전한 피난처가 없는 듯하다. 대체 누구의 손을 붙들어 화탕지옥과 같은 자신의 죄를 나누자 할 것인가? 손을 감추고 다른 이들의 손이 하는 일을, 세상을 밝혀가는 일을 지켜보아야 할 터인데 그녀의 손은 수갑을 차고도 쉴 줄을 모르는 듯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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