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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 | 기획 [손의 힘, 그 가치를 만나다]
솜리의 공방, 손을 모으다
한성원(2017-03-07 11:26:42)



기술이 발전하고 온갖 기계가 사람을 대신해도 우리는 여전히 손으로 만드는 무언가를 즐기고 사랑한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예쁜 캐릭터 인형들도 좋지만 서툰 바느질에 조금은 삐뚤빼뚤해도 손때 묻은 인형에 더 마음이 가는 것은 그만큼의 눈과 손이 닿았기 때문이리라. 익산의 구도심 중앙동에는 지난 2012년부터 익산문화예술의거리로 조성되어 작고 소소한 공방들이 자리잡아가는 거리가 있다. 그리고 새해를 맞아 특별히 이곳의 공방들을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동안 각자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공방들이 "솜리예촌"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 손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익산의 옛 지명인 "솜리"의 유례에는 몇 가지 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우거진 갈대 숲 속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뜻을 좋아한다. 무언가 아늑한 운치마저 준다. 익산의 여러 동네 중에서도 중앙동은 과거 익산의 명동이라 불리며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붐비던 거리였지만 지금은 주변 상권에 밀려 그 명성이 엣 추억 속에 살짝 감추어진 듯해 솜리의 이미지와 더욱 들어맞아 보인다. 구도심활성화사업의 일환으로 익산문화예술의거리가 조성되면서 익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손재주 깨나 있다는 작가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자수부터 퀼트, 천연염색 등 여러 분야의 공방들이 생겨났고 수공예 공방을 비롯해 다른 예술 분야 작가들의 작업실까지 포함하여 현재 30여 곳에 다다르고 있다. 다양한 작가들의 유입과 익산문화재단의 거리사업이 더해지며 거리는 과거보다 활기를 띄기 시작했지만 한계에 봉착한다. 세입자임과 동시에 원주민이 아닌 입주 작가의 입장 상 건물주와 주민자치회에 비해 거리의 한 주체로서 개개인의 목소리를 내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솜리예촌"은 거리의 일원으로서 보다 당당하게 그리고 원주민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싶었던 작가들의 바람으로부터 출발했다.

"건물주나 주민자치회랑 이야기가 맞지 않았어요. 예전보다 거리가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거리의 주체 중에서 입주 작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모임은 없었어요. 그리고 공방들이 개별적으로 활동하다보니 서로 소통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도 있었는데 솜리예촌이 생기면서 이런 것들을 조정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솜리예촌"의 초대 촌장으로 뽑힌 송기대 작가는 거리에서 입주 작가들의 위치와 함께 조직 내에서 개개인의 관계에도 예촌이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인근 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프로그램에 있어서도 예촌 차원에서 각 공방 간의 상생을 위해 중재자적 입장을 자처했다. 익산문화예술의거리에 작가들이 입주하기 시작한 지도 4년차를 맞이했지만 그동안 이렇다 할 모임 하나 없어 각 공방들은 개별적으로 활동을 진행해왔다. 서로 간에 교류가 없다보니 소통의 부재로 이어졌고 그래서 더욱 입주 작가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지난 11월 말이 되어서야 거리의 작가들은 한 공간에 모여 서로를 소개하고 그간 묵혀두었던 속이야기를 나누었다. 오고가는 대화 속에 연대의 필요성을 느꼈고 마침내 "솜리예촌"이라는 모임이 탄생했다.

익산문화예술의거리의 공방들은 매년 꾸준히 그 수를 늘려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지난 15년도부터 지붕을 맞댄 채 자수와 퀼트로 거리를 지키는 두 공방을 만나보았다. 회원들도 많고 어느덧 3년차에 접어든 노하우도 있기에 앞으로 솜리예촌에서의 역할도 기대되는 "마리의 니들스토리"와 "원공방"이 그 주인공이다.




오색실로 수놓은 바늘의 이야기
마리의 니들스토리, 나현정 작가

따스해 보이는 입구에 하늘거리는 천 사이로 색색의 실이 수놓아져 있다. 처음 들른 이에게도 구수한 숭늉차 한잔 내어주며 행여나 모자랄까 미소까지 듬뿍 얹어주는 자수공방 "마리의 니들스토리"를 만났다. 고창 새댁이었던 나현정 작가는 무료한 시골 생활에서 활력을 찾고자 자수를 시작했다. 전통자수는 가르치는 곳도 흔치 않았고 배우는 데 드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던 터라 학창시절 배운 스티치를 기억해내 아이들 소품을 만들거나 이니셜을 새겨주며 처음 실과 바늘을 들었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우고 나서는 보다 제대로 자수를 배워보고자 이름난 스승을 찾기도 했다. 취미로 시작한 자수가 어느덧 출강을 할 만큼의 실력이 되었을 때 스승의 조언에 따라 공방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지인의 소개로 처음에는 작업실 정도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익산문화예술의거리를 찾았다가 마침 익산문화재단에서 제공하는 지원사업을 통해 거리에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 마리의 니들스토리는 자수 스티치 기법을 수강생들에게 가르치면서 패브릭 소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작업을 겸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공예 공방을 운영하는 작가가 바라보는 공산품과 수공예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녀는 가치의 의미에서 수공예품이 깊이를 더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기계적인 공산품에 비해 수공예품은 만들 때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그래서 더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고.
 햇수로 3년차, 이 거리에 첫 발을 디딘 입주자라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가 있다. 바로 원주민들의 시선이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는 주민이 다수지만 몇몇 경계의 시선을 쉬이 거두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때로는 부담이 될 수 있을 법도 한데 나현정 작가는 힘들지 않았다고 말한다.

"지금도 되게 재밌어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왜 힘들겠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에 간다는 게 좋고 퇴근할 때가 되면 왜 이렇게 하루가 짧은지 모르겠어요. 하루가 30시간이었으면 좋겠고 일주일이 열흘이었으면 좋겠고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아요."

그도 그럴 것이 원하는 일을 하다 보니 항상 웃게 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성격 덕에 주민들과의 관계도 금세 가까워졌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합니다'라는 그녀의 명함에 새겨진 문구처럼 밝은 미소가 만든 행복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현정 작가는 '거북이 느리게 걷듯이 점점 나아지는' 거리의 모습이 좋다고 말한다. 그래서 솜리예촌도 쫓기면서 하는 공방활동이 아니라 조급해하지 않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길 희망했다.




퀼트인형과 함께하는 수다방
원공방, 이현순 작가

앞서 만난 "마리의 니들스토리"의 바로 옆에는 조금 더 넓은 규모의 "원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슬쩍 들여다보면 공방 내부는 항상 빈자리가 몇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였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원공방은 서양화를 전공한 이현순 작가의 퀼트공방이다. 퀼트란, 조각 천을 이용한 예술작품으로 이현순 작가는 퀼트인형과 더불어 작은 소품부터 가방이나 파우치 등 실생활에서 사용가능한 퀼트작품을 만들고 있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아동미술 지도자 생활을 해오던 이현순 작가는 막내아이를 종이접기 수업에 보내다 그 옆에 자리한 퀼트샵에 다니게 되며 처음 퀼트를 접했다. 주변의 권유로 자격증까지 따게 됐고 도서관에 출강을 다니며 만난 수강생들과의 인연이 지금까지 원공방의 손님으로 이어졌다. 처음 거리에 들어올 때에는 같은 거리에 자리한 우드버닝 공방 "쟁이들의 노리터"와 같은 공간을 썼으나 손님이 많아지면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게 됐고 금속공예를 하던 원공방이 사정 상 활동을 접게 되자 이름은 그대로 둔 채 공간을 이어 받아 퀼트공방을 차리게 됐다. 퀼트는 큰 천을 자르고 이어 붙여 작품을 만드는 특성 상 개인이 여러 재료를 소비하기도 힘들고 가격 면에서도 부담이 있어 공동으로 작업하기 좋다고 한다. 여러 명이 둘러앉아 소소하게 수다 떨면서 작업을 하다보면 하루가 언제 가는지도 모르게 저문다고 입을 모은다.

"바느질 하다보면 잡념도 없어지고 몰두하게 되잖아요. 그래야 바늘에 손 안 찔리니까. 그거 하는 동안에는 다른 잡생각이 없어진다고 해요. 그래서 그러더라고. 이건 취미가 아니고 중독이라고. 취미는 일주일에 두 번 세 번 왔다가는 게 취미인데 일주일에 5~6일을 왔다가니까 중독 같다고."

원공방의 회원들은 그렇게 만든 작품들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한다. 선물 받은 사람들이 잘 쓰는 모습을 보며 보다 큰 만족감을 느낀다. 이현순 작가는 그래서 공산품과 비교할 때 손으로 만든 인형이 더 큰 의미를 두게 된다고 말한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인형이 더 정교하고 예쁠 수 있지만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은 그 안에 정성이 깃들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고 그만큼 의미를 가진다. 원공방의 회원들에게 인형은 단순히 아이들의 장난감이 아니라 정성 가득 담은 하나의 작품인 것이다.

주변의 다른 공방과 비교해도 유독 북적거리는 원공방은 3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인다. 공방의 회원들은 서양화를 전공한 덕에 색깔에 대한 감이 남달라 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얘기하지만 그보다 이현순 작가가 내뿜는 에너지와 리더십이 전주, 팔봉, 임피, 서수 등 멀리서 까지 손님들이 찾게 하는 매력으로 보였다. 한 회원은 자기가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현순 작가를 언니 같다고 까지 말한다. 회원들 간에 관계가 워낙 좋다보니 하루 종일 얘기만 하다가 '나 오늘 뭐했지?' 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원공방은 퀼트 작업을 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에 더해 모여서 수다 떨며 스트레스도 풀고 서로의 소식을 나누는 사랑방의 이미지도 짙게 느껴졌다. 이현순 작가는 원공방의 회원들이 그렇듯 솜리예촌 역시 입주 작가들 간의 단합이 잘 되길 희망했다. 내부 회원들 간에 소통이 우선되어야 스스로를 대변하기 위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마을, 솜리예촌이 되길

다가오는 2월부터 정례회를 비롯한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 중인 솜리예촌은 연 내에 상하반기에 걸쳐 2회 정도의 전시회를 구상하고 있으며 "전주 서학동 예술마을"과 연계해 서로 교류하며 행사 및 전시를 할 예정이다. 문화재단에서도 매주 거리행사를 한다고 하니 이에 발 맞춰 작품 전시 및 판매 활동을 계획 중에 있다. 또한 현재 체험활동을 진행 중인 학교들에 더해서 주변 학교 학생들로 점차 범위를 넓히고자 한다.

솜리예촌은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모인 화려한 도심 속 마을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곳의 작가들은 누군가에게 언니이고 동생이며 친구인 그리고 그들이 모여 마음 터놓고 손을 모으는 사랑방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서툰 손짓이어도 이야기가 담기고 정성이 더해져 보다 사람 냄새 은은하게 퍼지는 고향 마을의 향취를 닮아있다. 우리에게 수공예의 매력 역시 이와 같은 지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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