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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 | 칼럼·시평 [문화시평]
'더러운 잠', 억압받은 이는 누구인가
한성원(2017-03-15 09:40:58)



요즈음 보이는 많은 글들의 서두에는 어지러운 시국에 대한 걱정이 자주 등장한다. 지난해부터 대한민국을 꽤나 들끓게 만들고 있는 대통령 박근혜와 관련한 일련의 이슈들 때문이다.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문화예술계에서도 블랙리스트라는 어처구니없는 차별과 억압이 자행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에 예술인들은 작품으로서 풍자와 패러디로 권력자에게 저항하고자 했고 지난 1월 20일, '표현의 자유를 위한 예술가들의 풍자 연대'는 국회의원회관 1층 로비에서 '곧, 바이!展' 기획했다. 그리고 전시 작품 중 대통령 박근혜를 풍자한 누드화 '더러운 잠'이 여성비하 의혹에 휩싸이며 논란이 붉어졌다. 현 시국과 관련하여 표현의 자유냐, 여성혐오냐의 설왕설래를 불러일으킨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은 1863년 만들어진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작품이다. 예술의 영역에 있어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논란은 과거부터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예술가의 작품 세계가 대중의 인식과의 괴리감으로 논란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작품에 담긴 사회비판 메시지가 기득권을 불편하게 만들어 지탄받기도 했다. 사회가 변화하고 대중의 인식이 확장하면서 표현의 영역 역시 달라졌고 과거에는 외설이며 조잡한 그림이었던 것이 시대가 변하며 세기의 걸작이 되기도 한다. 반면 동시대를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어느 사회에서는 용인되는 표현의 영역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뭇매 맞을 대상이 된다. 각 사회가 가지는 문화의 차이 때문이다. 다음에 이어질 대화는 양측으로 갈라선 두 명의 가상인물이 나누는 대화이다.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에 대한 필자의 의견은 감추기로 한다. 판단을 내릴 만큼 충분한 식견도 없거니와 원치 않는 비난에 휩쓸리기 싫은 비겁함도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두 친구는 늘 그러했듯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에 여념이 없다. 자연스레 대화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는 그 주제에 봉착했고 의견이 다른 두 사람은 천천히 자신의 의견을 뱉어내었다.


A : 이번에 국회의원회관에 걸린 '더러운 잠'이라는 그림 봤어? 그건 좀 심하지 않나?


B : 그게 왜? 비선실세와 함께 국정을 농락한 현 시국을 잘 표현한 작품 같던데.


A : 아무리 뜻이 좋아도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은 폭력이지. 목적이 옳다 할지라도 여성을 희화화 하는 건 안 돼.


B : 사회적 약자를 대상화시키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말에는 동의해. 하지만 이 경우는 좀 다른 것 같아. 대통령이라는 국가 최고 권력자가 블랙리스트라는 억압의 도구를 휘둘러서 상대적 약자인 예술가들의 밥줄을 끊어놓은 상황이잖아. 이에 대해 예술가들이 반발하여 자신들 만의 무기인 예술로서 풍자와 패러디로 저항한 것이고. '더러운 잠'에 대한 여성비하 논란은 정치적으로 야당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된 것에 불과해. 미국과 독일에서는 힐러리와 메르켈 총리를 대상으로 한 더 심한 풍자와 패러디도 있었지만 그걸 문제 삼는 정치인은 없었지.


A : 하지만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라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헌법기관으로서 맡은 바 일을 해야지. 정치인은 제도를 바꾸는 사람이지 문화를 바꾸는 사람은 아니잖아. 성에 억압적인 한국인의 문화가 문제라면, 그리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문제라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국회의원의 일 아닐까? 그리고 그림을 본 여성들이 불편함을 느꼈다면 큰 의미로 봤을 때 여성 비하이고 대중에게 공개되기에 시기적으로 이른 감이 있었다고 생각해. 모든 폭력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을 기준으로 바라봐야 하니까


B : 작품의 모티브가 된 '올랭피아'라는 그림은 이미 150년 전에 만들어졌고 작품에 대한 해설과 평가가 내려졌어. 미술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교과서에도 실리고 있는 작품이지. 작품이 가지는 시대적 의미가 있고 이를 모티브로 현 권력자에 대해 풍자한 패러디 작품인데 외설로 폄하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봐. 언론에서 이 작품을 '박근혜 누드화'라고 소개하지만 사실은 '박근혜 풍자 누드화'가 맞지.


우리가 일상에서 서로 다른 대화를 하는 것처럼 위 지면에 소개되지 않은 다양한 층위의 입장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곧, 바이!展'을 기획한 고경일 작가와 논란의 대상인 '더러운 잠'의 작가 이구영은 이 국면이 끝나고 나서 예술가와 활동가, 여성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길 희망했다. 다음은 팟캐스트 방송 '파파이스' 130화에 출연한 작가와 기획자의 작품 설명과 논란에 대한 의견이다. 그들의 변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작가 이구영

이 그림 속에는 세 개의 그림이 등장을 하는데요. 하나는 조르주네의 '잠자는 비너스'고요. 중간에 있는 게 티치아노가 스승 조르주네를 존경해서 그린 똑같은 자세의 '오르비노의 비너스'라는 작품이에요. 그리고 '오르비노의 비너스'에서 모티브를 얻어 154년 후에 마네가 '올랭피아'라는 작품을 만들어요. 눈을 똑바로 관객을 쳐다보는 아주 도도한 여성을 그려요. 제가 이 패러디 작품을 만들면서 우려했던 부분은 그거에요. '올랭피아'에 등장하는 여성은 아주 자주적인 여성이지만 거리의 여성이거든요. 그렇게 봤을 때 여성 대통령을 폄하하는 부분이 논쟁거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올랭피아'라는 작품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와요. 이게 외설적이라면 교과서에도 모자이크를 해야죠. '올랭피아'라는 작품은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고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인류사적으로 굉장한 작품이에요. 거기에 저는 얼굴만 바꿔 그렸을 뿐인데 갑자기 올랭피아라는 작품이 조잡하고 품격 없는 작품이 되어버렸어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부분도 하나 있어요. 여성이 누드로 등장하면 금기시하고 항상 여성혐오라고 공격하거든요. 하지만 이 그림을 한 번만 더 뜯어서 보고 어떤 연유이며 어떤 내용인지만 보면 여성혐오가 없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어요. 이게 계기가 돼서 이런 이야기가 공론의 장으로 나오고 더 재미나게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고 서로 논쟁적으로 대화하면서 풀어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건 아닌가 싶어요.


기획자 고경일

저희가 싸움을 하려고 했던 이유도 그들이 만든 블랙리스트 때문입니다. 시장경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 작품은 창작 노동자들의 먹고 살 거리인데 이걸 권력이 관리하고 시장경제를 어지럽혔어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우리가 분노했고 작품을 걸었는데 이걸 여성폄하의 잣대로만 들이댈 수 있나요. 우리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약자들입니다. 약자로서 권력자에 대해서 그것도 살아있는 권력에게 비판할 때 그게 풍자거든요. 죽어있는 권력 그려서 뭐합니까. 살아있는 권력을 두고 앞에서 조롱하고 삿대질 하고 거기에 대해서 웃음을 줄 수 있어야 풍자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저희는 그런 작업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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