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은 잘 몰라도 된다. 하지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알아야 한다. 전주대사습의 역사가 곧 국악의 역사다. 지난해 불거진 '심사위원 비리'로 전주대사습이 벼랑 끝에 내몰렸다. '최고', '대표', '등용문'이라는 수식어에 안주하지 않고, '비리', '파문'이라는 수식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전주대사습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이 글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시작됐다.
국악인들도 등 돌렸다
국내 최고 권위의 국악 등용문이었던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이하 전주대사습)가 국악인들마저 외면하는 대회로 전락했다.
2015년 제41회 전주대사습을 앞두고 한 심사위원이 참가자로부터 '예선 통과 대가'로 금품을 받았던 것. 하지만 참가자가 예선 탈락을 해 논란이 불거졌고, 심사위원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주대사습을 정상화시켜야 책임이 있는 대사습보존회의 내홍도 이어졌다. 이사진들은 이사장 권한대행의 직무정지 가처분소송까지 불사하며 집안싸움을 시작했다. 결국 전주대사습 정상화를 위해 나선 것은 전주시였다. 전주시가 대회 주관 조직을 재편하고 5월에서 9월로 연기해 치르겠다고 선언한 상태지만, 전주대사습의 실추된 위상과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이 파문으로 전주대사습은 판소리 명창 부분의 대통령상을 박탈당했다. 1975년 전주대사습이 태동한 이래(정권 혼란기 제외) 대통령상의 박탈은 사상 초유의 사태다. 이로 인해 실력 있는 소리꾼들이 대사습에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주대사습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권위 있는 국악 등용문이었다. 19세기 말에 중단됐던 전주대사습은 1975년 '판'의 정신을 되살린 판소리 경연대회로 부활하면서 각 부문별 명인·명창 450여 명을 배출했다. 하지만 전주대사습보존회가 30년 넘게 방송용 경연대회를 개최하는 데 그쳐 '판'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계속됐다. 2011년부터 시작된 전주대사습의 변화의 움직임은 이런 여론을 감안한 노력이었다. 하지만 전주대사습의 축제화는 여전히 역부족이었고, 심사의 공정성 논란 또한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통령상과 인간문화재는 영원하다?
소리꾼들이 대통령상에 목을 매는 이유가 뭘까. 대통령상을 수여되는 전국 전통예술경연대회는 30여 곳이 넘는다. 전북에서는 전주대사습, 춘향국악대전, 전주고수대회 등이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지만, 대회 위상은 전주대사습이 단연 앞선다.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명창 중 전주대사습 장원이 아닌 경우는 드물었다.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은 대개 도제식 교육으로 이수된다. "전주대사습보존회는 소리꾼들의 이익을 위해 심사위원회를 구성해왔습니다. 참가자 중 자신에게 배운 사람이 아니라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는 한 국악연구가의 쓴소리는 국악경연대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이 같은 경연대회가 국악인들의 '입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하면 그의 소리는 곧 대학 입시의 커리큘럼이 된다. 군 면제를 결정하는 각종 콩쿠르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한다. 뒤이어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전통예술경연대회 심사 요청이 쇄도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관심사는 인간문화재로 옮겨진다. 인간문화재는 정년도 없는 종신제다. 인간문화재가 되려면 '보유자-전수조교-이수자-전수자'를 거쳐야 한다. 이수 기간은 5년 안팎. 물론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 한 국악 평론가는 "이수자 자격증을 따는 데 통상 몇 천 만원이 든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결국 판소리 장원은 인간문화재라는 또 다른 피라미드로 연결되고, 소리꾼들은 이를 통해 점점 권력화 되어 간다. 이것이 바로 전문가들이 "이원화되고 권력화 된 판소리 장원, 인간문화재를 더 이상 국가가 나서서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외치는 이유다.
국악이 가진 음악적 힘을 재조명해야
국악은 여전히 멀리 있다. 어떻게 보면 한국 사람이 가장 모르는 음악이 국악일 수도 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슬로건은 국악에 취하고 즐기는 이들이 내뱉는 감탄사가 되어야 하지만, 사실상 즐기는 이들이 줄어드는 현실을 향해 국악인이 던지는 강요의 슬로건이 된 지 오래다.
전주대사습이 보여준 일련의 변화는 이전과 비교해 진일보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관객들과 거리감을 좁히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보이는 '창작국악열전', '밤샘콘서트', '국악의 수도 전주! 대동놀이' 등은 대중의 감성과 취향을 저격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전통음악에 내재된 흥을 끄집어내며 국악이 오늘날 박제된 노래가 아니라 여전히 즐길 수 있는 우리음악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젊은 국악인들의 컬래버레이션만이 '국악의 대중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로 여겨지는 점은 아쉽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의 말을 빌리자면 "국악이 국악에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곳에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국악의 대중화'를 하려면 '대중음악의 국악화'는 왜 시도하지 않는가에 관한 궁금증이기도 하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해를 거듭할수록 전주대사습을 포함한 내로라하는 전국의 국악경연대회는 제도와 정책, 자본의 합작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악을 '오늘의 음악'으로 보존하고 전파해야 하는 필요성과 당위성이 짙어지면서 국악이 가진 음악적 힘을 재조명하려는 고민의 깊이는 얕아지고 있다.
실제로 전주대사습만 하더라도 소리꾼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량을 펼치는 일회성 무대에 그칠 뿐 무대를 통해 관객들이 우리음악의 호흡과 문법에 매료되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이에 대해 양승수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문화사업부장은 "경연을 위한 경연, 장원을 선발하기 위한 경연이 아니라 그 과정이 축제가 되는 프로그래밍이 필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예선을 되살려야 하며, 창작국악의 저변이 넓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인큐베이팅 방식의 창작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도 있다"고 제안했다.
국악의 대중화를 위한 판이 많이 마련됐지만, 명인·명창만으로는 그 판을 다 채울 수가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젊은 국악인들이 새로운 국악을 기꺼이 들고 나올 수 있도록 '판'을 열어주는 것도 필요하고, 그들과 호흡하며 새로운 감성의 결을 추가할 작곡가와 지휘자, 평론가도 필요하다.
전주대사습은 곧 국악의 역사다. 동시대 국악이란 어떠해야 하며,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를 묻는 소리꾼들의 실험은 그래서 이곳 전주대사습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전주대사습이 "저래도 되나?"라는 '물음표'와 "저래도 되는구나!"라는 '느낌표'를 제공할 수 있는 '판'으로 거듭났으면 한다. 국악이 '쇠퇴기'가 아니라 긍정의 '과도기'로 전환될 수 있도록 범상치 않은 '전통'을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데 전주대사습이 일정정도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