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7.4 | 기획 [전주 대사습놀이, 위기에서 길을 찾다]
전주 대사습놀이,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는 이유
한지영(2017-04-28 10:01:54)



한국전통음악 애호가들 중에는 수십여년전 전주대사습놀이(이하 대사습)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진지한 대회 분위기, 하얀 두루마기를 멋지게 차려입고 구성진 추임새를 넣는 귀명창들, 탁주 한 병을 준비해 마치 잔치에 온 듯 풍류를 즐기는 관객, 누가 장원이 될지 삼삼오오 의견을 나누던 국악인들과 평론가들, 그리고 수상자의 화려한 카퍼레이드 등 당시를 그리워하는 단골 레퍼토리가 있다. 어쩌면 그 당시 시민들에게 대사습은 국악인들의 경연 대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귀동냥으로 그런 추억을 들을 때 마다, 그 경험이 내 것인 마냥 자랑스러웠고, 그런 배경 덕에 지금 이 도시에서 다양한 전통예술 활동들이 풍성하게 이루어진다고 믿어왔다.
 흔히들 전라북도를 소리의 고장이라고 한다. 고창 신재효 선생이라던지, 전라도 출생의 여러 소리꾼 등 소리의 고장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이유는 여럿이지만, 전국의 소리가 모여서 소비되는 곳이 바로 전라북도의 중심 전주였다고 한다. 풍류를 사랑하는 선비들이 많아 소리꾼들이 몇 달씩 전주에 머물러 소리를 하거나, 귀명창이 많아 어설픈 소리꾼은 이곳에서는 함부로 소리자랑 못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바로 대사습과 같은 대회가 개최될 수 있었다는 논리이다. 요즘도 전주시민들의 추임새와 소리 관람 태도는 다른 도시와 매우 차이가 있어, 같은 소리도 전주에서 듣는 재미가 더 높다고 한다.

 근래 대사습 내외의 좋지 않은 소식이 들린다. 심사 비리 의혹이 불거지더니, 고발고소가 이어지고, 누가 누구에게 막말을 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급기야 대통령상이 취소되어 오랜 역사에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사실, 언론보도가 시작되면서 뒷이야기로 들리던 소문들이 결국 이렇게 터지는구나 싶었다. 이런 사단이 났으니, 이제 젊은 국악인들이 나서서 대사습의 자발적인 변화를 이끌어 갈 것 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젊은 국악인들은 조용했다. 왜일까? 늘 존재했던 문제가 터진 것뿐이어서? 아니면 지금 언론에 거론된 관계자들 말고는 다른 국악인들은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혹 섣불리 상관하면 국악계 어르신들 눈 밖에 날까 눈치를 보는 것일까? 이런 저런 궁금증이 높아지던 중, 결국 전주시가 올해 개최 시기를 변경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에 대해서도 단편적인 해결방안이다, 아니다 행정기관이 나서야 해결될 것이다 등 의견이 분분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행정기관인 전주시이건, 당사자인 대사습 관계자이건 각각 대사습 문제를 바라보는 입장은 다르다. 각 입장마다 대사습의 새로운 변화와 발전에 도움이 되는 대안을 모색하겠지만, 사실 당사자 이익을 중심으로 만들어 낸 대안이기 쉽다. 나는 약간 모호한 입장 -대사습의 명예회복을 절실히 바라는 시민이면서 국악 관련 일을 업으로 하는-에서 이번 사태의 해결 방안을 투명하고 객관적인 경연대회 운영에만 맞출 것이 아니라, 현재 전통음악이 마주한 위기도 함께 고려해 좀 더 넒은 시각으로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혹 '왜'라는 질문은 여러번 하면, 문제가 단순해질 때가 많은데. 질문해보다. '왜 대사습을 개최하는가'. 나는 그 '왜'를 따라가다 결국 '관객'에게 도달한다. 질문의 중심에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려는 국악인이 아니라, '관객' 그리고 '시민'들이 기대하고, 찾아오는 대사습이다. 
 안타깝게도 전통음악은 누구나 즐기는 보편적인 음악이 아닌 특정 애호가들의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는 대사습 사태와 국악의 현재모습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 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국 대학에서 한국음악학과가 하나둘 사라지고, 넘쳐나는 무료 국악공연의 유료화는 국악인 스스로 꺼리고 있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공연장을 찾는 관객 대다수가 연주자의 일가친척 지인들이고, 결국 공연의 예술적 혹은 대중적 실력을 판단할 줄 아는 관객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대사습도 같은 위기에 봉착했다. 사실 지금의 관객 중 장원이 왜 차하, 차상보다 더 좋은 소리를 했는지 구분할 수 있는 이들은 매우 적다. 국악인들 사이에서도 수상자에 대해 이구동성 실력을 인정하는 경우도 드물다. 지극히 사견일 수 있지만, 결국 옥석을 가릴 줄 아는 관객의 부재는 점점 국악의 실력 하향을 야기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운영되는 경연대회의 의미가 크길 바라는 것은 욕심과 같다. 대사습을 국악인들만의 잔치로 만들어서는 다시 그 영화를 돌릴 수 없다. 박수의 힘은 크다.
 감히 장담하건데, 그 어떤 문외한도 진정한 실력자의 내공은 알아본다. 나는 운이 좋게 오정숙 명창의 무대를 생애 첫 판소리 관람으로 만났는데, 그 때의 감동과 오정숙 명창의 엄청난 에너지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실력있는 국악인들의 연주를 통해 전통음악을 듣거나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람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물론 대사습은 경연대회이다. 그 본질을 부인하고, 대중이 좋아하는 것만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누가 들어도 인정할 만한 실력자들이 대사습을 통해 배출되어야한다는 말이다. 경연을 운영하는 방식과 장르의 변화, 참가 국악인들의 변화 그리고 대사습은 소중한 지역 문화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시민들의 참여가 동시에 필요하다. 국악을 과거에 멈춘 음악이 아닌, 지금 시대의 이야기도 담아내는 작업이 대사습을 통해 진행되어야, 귀를 기울이는 시민들이 늘어날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라 하겠지만, 대사습의 대통령상이 취소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대통령 상 없이도 국악인들과 시민들이 대사습을 지켜낸다면, 이전보다 더 감동적인 역사를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저력을 믿는 나를 보고 허망하다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자존심을 더 부릴 수 없을까? 심사비리를 예초에 발생할 수 없게 만들고, 장원을 할 만한 인재가 없을 때는 수년간 당당히 '장원 없음'을 표명할 수도 있고, 창작음악 부분을 신설해 국악의 미래지향적인 모습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주에서 소리자랑 함부로 못한다는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는 것은 대사습 현장이었으면 한다.
 십대, 이십대 젊은 연예인 지망생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자. 전문 심사단 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신랄하게 평가한다. 듣는 사람의 취향은 있지만, 결국 시청자와 관객의 마음을  붙잡는 것은 실력이다. 소비자의 귀가 높아지니, 적당한 실력으로 감동을 주지 못한다. 결국 노래든 춤이든 미모든 대중음악은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게 성장하고 있다.     
 나는 예인 광대를 믿는다. 4시간 완창을 순간으로 느끼게 하는 소리꾼, 산조 한바탕으로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연주자, 신명난 굿판으로 시름을 잊게 하는 쟁이들은 존재한다. 다만,  시민들의 눈높이나 경연대회의 의미, 현재 국악의 지향점을 고려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 번의 변화로는 힘들다. 대사습이 경연장소를 경기전으로 변경하고, 다양한 공연과 연계하여 축제 방식으로 치른 것은 좋은 변화의 시초로 생각한다. 어쩌면 그 해부터, 조금의 변화에 만족하지 않고 현대적인 대회운영과 심사방식을 지속적으로 고민했다면 이미 대사습은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자리 매김했을 수 있다. 우리가 추억하는 대사습의 모습은 시민과 관객이 즐거웠던 대사습이었음을 기억하자. 새로운 대사습의 시작을 기대한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