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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5 | [교사일기]
다시 교단에 서서 해뜨는 곳을 향하여
문상붕 무주 안성중학교 교사(2003-09-23 14:36:37)
무주. 무주는 사람들의 생각에 흔히 오지로, 또는 무주리조트나 무주구천동으로 떠오른다. 복직해서 첫발령이 무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참으로 이름만큼이나 아득했다. 그 어디건 사람 사는 곳이고 학생들이 있는 곳임에 참교육을 외치는 나는 이 모든 것을 감수하리라 생각했지만 나의 안사람이 부안 하서 중학교 교사로 서쪽 끝이고 나는 동쪽 끝이라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는 셈이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얼마나 들어가고 싶었던 교문이며 만나고 싶었던 학생들인데. 어쩌다 예전에 있던 학교를 지나갈 때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머뭇거리다가는 암울해지고 하던 나나들이었던 해직기간에 우리 집에서 아이들의 음악시간 노랫소리는 참으로 참혹한 고문이었으매 이런 고민을 차라리 사치이리라. 복직, 참으로 가슴 설레는 말이다. 그 동안은 뿌리 뽑힌 사람으로 나날이 메말라가고, 이리저리 정신적으로 떠돌며 안주하지 못하고 방황했었다. 부끄럽지만 해직 5년 중 4년은 70세가 넘도록 일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무사히 기생충 노릇을 하고, 1년은 선생인 마누라 덕분에 등처가 노릇도 하고 살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고생이 심했다. 내가 이러할진대 하물며 처자식 거느린 가장이나, 부부가 해직당한 동료교사들의 고생이야 말해 무엇 하랴. 그런 의미에서 복직은 그 무엇보다도 생존권 차원에서부터 바라보아야 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두 번째는 4년 반 동안 쏟아 붓지 못한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사우다가 챙기지 못한 참교육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그동안 갖가지 연구 활동과 조직 활동, 그밖에 활동과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한층 더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실없이 허송세월을 한 것이 아니다. 우유배달이든, 연탄배달이든, 생선장수든, 노가다든 그 어떤 경험이건 간에 그것은 우리의 재산이요, 훌륭한 교재다. 그것은 살아 펄떡이는 지식이다. 그런 지식으로 무장하고 우리는 학생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복직은 시작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 학교는 젊다. 무엇보다도 교사들이 젊고 패기에 차있다. 그러나 지역적 조건과 제도적 환경은 닫혀있다. 농촌이 해체되는 마당에 교육이라고 어찌 무풍지대가 될 수 있으랴. 내년에는 한 학급씩 줄어들 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학교 1학년 2학년은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많다. 아직도 남아선호사상이 강하게 남아있는 곳이라, 남자아이들은 집안이 조금 괜찮거나 싹수가 있다하면 국민학교 때부터 도시로 유학을 보낸 결과다. 그리고 산촌이라는 닫혀진 공간은 아이들에게 '순박함', 그 이상은 주지 않는다. 목적의식이나 목표가 약하고 따라서 학업성취도가 약하다. 여기에 젊은 교사들의 고민이 있다. 올바른 교육과 입시위주의 교육, 도시와 농촌간의 차이에 5년 전과 같이 수업할 뿐이다. 여기에 조직과 교육대개혁 운동의 필요성이 있다. 한사람 한사람 교사의 발전된 의식이 학교에 체계적으로 반영되지 못하는 것은 거기에 따른 지원체계나 제도교육 안의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렇게 교사는 늙어간다. 그러다가 교사보다는 행정가인 장, 감에 눈독들이고, 벽지점수다 연구점수다 등등에 주판알 튕기기에 바쁘다. 이번에 우리 학교에서는 처음으로 예능발표회 명목으로 예술제를 추진하고 있다. 각종 전시회, 공연, 대동놀이 등을 선보일 것이다. 문화혜택이라곤 유선TV방송(여기는 난시청 지역으로 민간유선방송업자에게 월별로 요금을 내야 TV를 시청할 수 있다.)과 노래방뿐이다. 무주군내에 연극 소극장은커녕 영화관 하나 없다. 따라서 이번의 대학의 축제와 비슷한 성격을 띤 이번 행사는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문화의 충격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충격을 통해 아이들이 놀이와 건전한 문화에 눈뜨고, 스스로 발견하고 행동하는 주체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설령 어설픈 출발이라도 이것이 후배들에게 전통으로 계승되고 그 발판위에 더욱 발전하는 내일이 있을 것이다. 하숙을 하는 나는 월요일 아침 새벽이면 소형차를 몰고 해변을 바라보며 2시간가량을 다린다. 이시간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80Km 이상의 장애 없는 질주와, 산과 산 사이를 지나 계곡을 건너 불끈 솟아오르는 해와의 대화는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매일 뜨고 지는 해지만, 매년 입학하고 졸업하는 학생들이지만 그것은 분명 희망의 상징이고 밝은 세계의 상징이다. 나는 이 두 가지를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살려한다. 전교조 복직교사. 다분히 부담스러운 이름이다. 동료교사들의 기대와 교장, 교감 선생의 눈도 그렇고 일반사회의 눈도 그러하고......그것은 어쩌면 약이 될 수도 있고, 나의 행동반경을 좁히거나 나를 무사안일이나 혹은,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녔던 초기의 자세와 정신을 다시 가다듬어 교육현장에 펼친다면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강철은 단련된다 하지 않았는가. 쉽게 부러지는 무쇠가 아니라 그야말로 유연하고 강하며 탄력성이 높은 강철, 그것이 우리의 뼈와 살을 이룬다면 나의 행복한 고민은 머지않아 풀릴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아이들 눈이 무섭다'라는 사실은 우리의 자세와 의지를 다지는 들 메갱이가 될 것이다. 문상붕 / 62년 김제출신으로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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