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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 | 칼럼·시평 [문화시평]
전주시립극단, 존재 이유를 말하다
김정수(2017-05-19 15:03:57)



사월이 시작되는 첫날, 전주시립극단의 <고목>을 보기 위해 덕진예술회관을 찾았다. 공연이 예고되는 순간부터 이 작품을 절대 놓치지 않고 보리라 생각했었다. <고목>이 갖는 연극사적 위치나 의의, 함세덕이라는 작가의 드라마투루기의 힘 등, 연극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가질만한 당연한 관심도 그 이유였겠지만, 무엇보다 여러 가지로 개인적인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작품 외적 요인이 작용했음을 새삼 부인할 수는 없었다.
전주시립극단은 이 작품을 1993년 11월 전북예술회관에서 공연한 바 있다. 24년 전의 일이다. 아직도 그때 한 명 한 명의 출연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긴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여전히 시립극단에 몸담고 활동하고 있는 배우들이 보고 싶었고,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그들이 변해가는 모습도 확인해보고 싶다하는 생각도 들었으며, 사반세기 이상 지속적인 활동을 해봤던 시립극단의 작품 만드는 변화된 힘을 느껴보고 싶었다. 24년 전, 당시 시립극단 상임연출이셨던 정초왕 교수님과 함께 객석에 앉아, 당시 배우로서 막 활동을 시작했던 홍석찬 현 상임연출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인연의 훈훈함은 덤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고목>은 1947년 문학가동맹의 기관지 『문학』3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해방기 한반도 사회의 미니어쳐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얼핏 당시 흔하게 볼 수 있는 보통의 동네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작은 사건 안에 전형적 인물과 다양한 갈등을 통하여 당시 정치인들과 친일세력들의 기득권 유지 다툼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는데 이 작품의 탁월한 묘미가 있다.
함세덕은 일제 식민 말기와 해방기로 이어지는 현대사 격랑기를 살다 간 작가다. 35년이란 짧은 삶을 살다 간 그는 그의 탁월한 작품들을 통해 당시 혼란했던 정치, 사회적 상황과 그 안에서 고민해야 했던 지식인의 사상적 흐름을 온전히 보여주고 있다. <고목>은 그가 월북하던 해 발표한 작품으로 현재 남아있는 그의 희곡 중 마지막 작품이다. 고리대금업자이자 대지주인 박거복의 집 마당에 대대로 수호신처럼 지켜 내려온 행자나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웃들과의 갈등, 가족들 간의 불화, 정치모리배들과의 야합과 갈등 등을 통해 당시 시대상황을 직, 간접으로 풍자해낸 이 작품은 함세덕의 좌익 활동과 월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행위와 맞물려 더 큰 의미가 있다.
한마디로 연극은 갈등의 예술이다. <고목>의 갈등은 등장인물들 간의 이념적 갈등, 성격적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을 보인다. 산만할 정도로 얽혀 있는 갈등을 하나로 묶어 세우는 가장 중심적인 사건 진행의 핵심은 상징적 형상물로 서 있는 행자나무의 운명이다.
<고목>에 등장하는 극 중 인물 대부분이 행자나무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리고 행자나무가 주는 크고 작은 이익에 따라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괄목할 만한 사실은 그 행자나무가 그대로 존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행자나무가 베어져야 한다는 점에는 등장 인물 간에 별다른 갈등의 소지가 없다. 문제는 무엇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 베어져야 할 것이냐에 합의할 수 없는 엄청난 이견이 존재할 뿐이다. 베어진 행자나무의 쓰임새에 따라 해방공간의 이념적 갈등, 경제적 갈등, 계급적 갈등, 사회적 갈등, 인간적 갈등이 함축되어 있다. 그런 점이 바로 <고목>을 탁월한 작품으로 인정하게 만든다. <고목>에서 나타나는 등장인물 간의 갈등은 이처럼 다층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갈등의 요인과 충돌의 방향에는 박거복이라는 인물이 있다.
나무에 신성(神性)이 있다고 믿는 행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박거복의 행자나무 숭배는 거의 신앙에 가깝다. 거미줄 하나도 쳐 있으면 안 되리만큼 행자나무는 박거복의 재산을 지켜주는 수호신이고 그가 꿈꾸는 앞길에 행운을 가져다 줄 여신이다. 작가 함세덕은 박거복의 입을 통해 나무가 상징하는 의미를 뚜렷이 전달하고 있다. 행자나무는 ‘동리의 유서 깊은 고목’에서 ‘우리 고을의 자라온 력사’로, 나아가 ‘이조 오백 년의 산 력사’까지 점층적으로 그 상징이 확대되고 있다.
이는 행자나무가 박거복이라는 일개 대지주의 이미지를 벗고 근세 봉건주의 체제 자체로까지 의미망이 뻗어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목>에서 행자나무의 뿌리 깊은 영향력은 가난한 이웃집 구석구석은 물론 마을까지 뻗어 있다. 박거복은 한 평의 땅이 귀한 빈민에게도 행자나무를 염려해 뿌리가 존재하는 그 어느 곳도 양보하려 들지 않는다. 양보 정도가 아니라 남의 집 안으로 넘어가 있는 자신의 뿌리까지 건드리지 못하게 협박한다.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뿌리 깊고 또 얼마나 청산하기 힘든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대목이다. 박거복은 행자나무로 표상되는 기득권 지키기에 이처럼 강경한 자세를 견지한다. 일제가 물러가고 새로운 질서가 민족의 힘으로 이룩되어야 한다는 해방기의 절대적 과제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부과된눈앞의 현실이다. 그러나 같은 말을 한다고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고목>은 화해의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 화해의 결말은 대립되는 갈등의 해소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고목>의 결말은 마치 갈등이 해소된 듯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표면적인 일에 불과하다. 결국 <고목>의 갈등은 미완으로 남는다. 박거복은 주위의 설득에 어쩔 수 없이 선심은 쓰지만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는 않는다.
박거복에게서 개과천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박거복의 마지막 대사는 이제부터 치열하고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될 것이라는 암시마저 내비친다. 박거복 역을 맡은 최균은 보기 드문 열연을 보여주었다. 작품의 특성상 박거복과 행자나무에 모든 갈등들이 집중되어 있고, 박거복은 퇴장할 틈 없이 시종일관 무대를 누벼야하는 고된 배역이 되었다. 최균은 한 치오차도 없이 박거복 역을 완벽히 소화해 내었다. 어찌보면 박거복이 최균을 위해 만들어진 배역처럼 보이기 까지도 했다. 시립극단의 다른 배우가 창조해낸 다른 배역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오래전 작품이라 지루해 질 수도, 느슨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이 작품을 공연하면서, 두 시간 가까이 되는 공연시간동안 단 한순간도 한눈을 팔 수 없는 연기력과 팀워크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배우들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만들어진 <고목>은 전주시립극단의 역량과 존재의 이유를 유감
없이 드러내 보여준 공연이 되었다.
1947년 월북했던 함세덕은 1950년 6월 29일, 남으로 내려오다 신촌 부근에서 폭탄 파편을 맞고 적십자 병원에서 수술 도중 사망했다. 그가 종군의 임무를 띠고 남하했는지, 아니면 월남이 목적이었는지에 관해서 는 여전히 상반된 의견이 있다. 한 가지 확실한 증언은 그가 떠날 때의 양복 차림 그대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함세덕의 10년 남짓한 극작활동 기간은 20세기 한반도 역사의 가장 험로에 속했다. 그러기에 함세덕의 비극적 삶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며 그 비극은 아직도 끝을 맺지 못하고 있다.
70년이 지나서도 우리는 여전히 친일잔재를 말하고있다. 우리는 여전히 ‘빨갱이’ 몰이를 놀이처럼 하고 있는 사회에서 살며, 여전히 주변 강대국의 심기를 부지런히 살피는 삶을 살고 있다. 언제나 이 땅에 제대로 된 봄이 찾아올까? 극장을 나서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갑자기 화사한 봄이눈앞에 활짝 펼쳐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월의 첫 날 들었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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