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4.5 | [교사일기]
다시 교단에 서서 우울한 귀환
한상선 군산 서흥중학교 교사(2003-09-23 15:04:37)
노랗게 핀 수선화가 한 달 넘게 교무실 앞 화단에 피어 있다. 82년 오송회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나와 서흥 중학교에 복직되었던 이광웅 선생이 생각난다. 복직 후 전교조에 가입하여 다시 해직을 당한 이광웅 선생은 「수선화」라는 시집을 남기셨다. 이광웅 선생의 아픈 연고가 있는 군산 서흥 중학교에 내가 부임한 것은 지난 3월10일이었다. 위암을 얻어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광웅 선생을 생각하며 교정에 들어선 나의 발걸음은 무척 무거웠다. 3월10일 직원조회에서 70명의 교사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5년 동안 현장을 떠나 있었기에 모든 것이 부족하고 학생 지도와 교과 지도에 어두우니 많은 도움을 바란다고 말하였다. 그 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5년 가까운 해직의 세월동안 물심으로 도와주신 여러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현장 교사들, 교수님, 목사님, 신부님, 학생, 제자들, 시민들 모두 고마운 분들이다. 4년 동안 원광대학교 학생회관 입구에서 좌판을 벌여 참교육 물품을 팔면서 생계를 꾸려온 아내에게 무척 미안하다. 중학교 다니는 딸 한나와 한별이도 그동안 어려웠지만 구김살 없이 학교에 잘 다녀주고 갸륵하게도 잘 참아주며 아빠를 이해해주어서 자랑스럽다. 5년 가까이 학교 밖에 있다가 1300여명의 해직교사들이 그립던 교단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가슴 아픈 일은 아직도 복직되지 못한 많은 교사들이 있는 점이다. 이들도 어서 빨리 교단으로 돌아와 사랑스런 제자들을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복직된 지 한 달 조금 지난 현재 바라보는 우리 교육의 현실은 밝은 점보다 암울한 점이 더 많다. 군산은 항구도시라는 지형적 조건으로 아버지가 없는 학생들이 많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죽었기 때문이다. 이런 결손 가정의 학생들과 따뜻한 대화마저 못 나누면서 한 반에 50명의 학생들이 들어찬 교실에서 수업만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달마다 시험을 치르고, 3학년은 고교입시에 대비하느라고 얽매여 사제간의 정을 모르고 지낸다. 구식의 컴퓨터는 굳게 문이 잠긴 교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으며 특별활동시간마저 거의 활용이 안 되고 있다. 휴게실이 없어 피워대는 담배연기가 교무실에 자욱하여 선의의 피해를 받는 교사들이 많다. 만경강과 금강과 동진강의 수질이 엉망이 되고, 마실 물과 공기마저 더러워져 위험한 상태이고, 생태계 파괴가 급속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인데도 그렇다. 우루과이 라운드의 타결로 교육시장마저 개방되어야 하는데 민족교육 강화는 시도되지 않고 있어 민족혼을 온통 빼앗길까 두렵다. 어느 정도 생활이 윤택해지자 학생들의 성장 속도는 해가 갈수록 앞당겨지는데 올바른 성교육 지고는 전무한 상태이다. 국민교육헌장에는 미래의 조국통일을 예상하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역사를 창조하자' 민족의 오랜 염원인 통일을 준비하는 내용의 말이 헌장에 나와 있지만, 학교 헌장에서는 통일 내용을 가르치는 교사가 거의 없다. 2학년 국어과목에 실렸던 이범선(李範宣)씨가 쓴 「학마을 사람들」이라는 소설이 있다.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평화스런 마을에 불행이 닥친다는 내용이 들어있는데 북쪽 사람들에 대하여 편파적인 내용으로 실었기에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갈등이 심했다. 북한에 대한 장단점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어 좋은 점은 수용 하려는 적극적 통일 의지가 교육헌장에서 있어야겠다. 교장과 교감이 지시하는 말만하고, 주임교사들이 공지사항을 전달만 하는 교직원 회의는 개선되어야 하고, 전교직원의 민주적인 의결기구로 새롭게 변모되어야 한다. 하루의 생활을 반성하며 글 쓰는 습관을 기르게 하기 위해 일기 쓰는 일을 학생들에게 국어시간을 통해 강조하였다. 그러나 효행일기장이라고 해서 담임교사가 학생들이 쓴 일기장을 검사하는데 이러한 일은 시정되어야 한다. 일기는 자기만의 고백인데 검사를 한다면 솔직한 내용이 기록될 수 없다. 그리고 어린 학생들이지만 개인의 비밀을 교사라고 해서 함부로 들춰보아선 안 된다. 어린 제자들이지만 개인의 인격을 존중해줘야 한다. 미국은 GNP의 7%를, 일본은 6%를 교육재정에 투자하는데 우리나라는 투자액이 4%미만이다. 위정자들은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라고 말로만 떠들어대지 말고 실질적인 교육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심혈을 쏟아야 한다. 대통령도 선거공약에서 약속을 했었다. 그 약속이 빨리 지켜져서 열악한 교육환경이 나아져 밝은 교단이 되어야 한다. 교육부에서 곧 실시하려고 하는 월반제, 속진제, 교사자격 유효기간제와 같은 제도는 많은 부작용이 있으므로 방향을 바꾸어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 특히 교사들의 신분 불안정을 가져오고 자격 유효기간제는 자칫하면 교직원사회를 구속하는 제도가 도기 쉽다. 한 나라가 기강이 잡히고 발전하려면 교육과 언론과 사법부가 제자리를 지키면서 존속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국가의 동량을 양성하는 교육은 올바른 교육철학을 가지고 지속적인 계획 아래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서울 상문고 사태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양심선언을 하는 교사가 더 이상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92년 일기의 한 부분을 적어본다. "전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그 직행버스 안에서 해직교사임을 알리는 연설을 하였다. 교육개혁과 해직교사 원상복직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는데 승객 여러분들의 서명협조를 부탁하는 연설을 하였다. 그리고 서명을 받았다. 20여명이 서명에 참여하였다." 뜨겁게 몸부림쳤던 지난날이 회상된다. 그때의 열정을 가지고 겸손하면서도 항상 배우는 탐구적 자세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제자들을 가르쳐야겠다. 한상선 / 48년 정읍출생으로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89년 이리남성고등학교에서 해직되었다. 해직기간 동안 많은 사람이 주위에서 도와주었고 특히 묵묵히 따라준 아내와 가족들에게 고맙기만 하다고.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