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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 | 기획 [소극장 고군분투기 ③]
배우의 열정과 관객의 응원이 소극장을 숨쉬게 한다
강미선(2017-06-30 15:28:03)

창작소극장과 창작극회
동문예술거리에 위치한 창작 소극장은 1990년 12월 처음 문을 열었다. 30여년 가까이 된 창작소극장은 전주에서 제일 먼저 생긴 지역 대표 소극장이기도 하다. 극장이 처음 생겼을 때까지만 해도 주변에 소극장은 전혀 없었다. 이후 필요성을 느껴 창작소극장이 생기고, 다시 그 후에 몇몇 극장이 새로 생기기는 했지만, 개ㆍ폐관 반복하며 결국엔 창작소극장만이 살아남았다. 창작소극장에서는 아직도 창작극회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따뜻한 세상 만들기'라는 모토를 가진 창작극회는 전북을 대표하는 가장 오래된 연극 단체이다. 1964년 전쟁의 비극을 담은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박동화작 연출)'을 첫 무대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들을 공연해 왔다.
하지만 50년 전통의 지역 연극 단체인 창작극회에도 어려움은 있다. 박규현 대표는 농촌과 도시 같은 상황이 연극시장에도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연극은 만만치 않은 장르 중 하나죠. 지금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연극을 할 수 있는 인원이 별로 없어요. 단체는 많이 있는데, 활동하는 인원이 없어요. 예를 들어 공연은 20개인데, 인원이 10명이에요. 말이 안되죠. 신입 단원이 공연을 하려면 3년은 지나야 하죠. 근데 요즘 누가 3년 동안 심부름 하고, 연습하고 기나긴 숙련 기간을 견뎌내겠어요. 그걸 견뎌낼 호흡 기간도 부족하고, 조금 잘한다 싶은 인원은 영화판에 가고 말이죠. 그걸 보면 연극이 농촌 상황이랑 비슷해요. 농사지을 젊은이가 없어서 농촌이 힘든 것처럼 연극도 젊은 친구들이 많이 없어 힘들죠"
시대가 변하면서 '연극'이라는 장르적 특성도 연극이 위기를 맞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됐다.
"타 장르는 복제가 가능하잖아요. 예를 들어 영화는 DVD로 음악은 음원 CD나 녹음으로, 그런데 연극은 그때 그 시간, 장소가 아니면 볼 수 없죠. 물론 연극도 영상으로 찍을 순 있지만, 그 현장감 감동은 그대로 담아내기가 힘들죠.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를 직접 보는 것이랑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모나리자를 보는 것은 다르잖아요. '현장감'이 장점이자 장르적 한계라고 생각해요. 이런 건 연극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맹점이기도 하죠"
"아이돌은 아니어도 누구나 인정욕구가 있잖아요? 왜 연극에는 그런 마니아층이 없나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는 색깔은 유지하고 형식이나, 유형을 조금 더 유연하게 제시하고 싶어요"
어려움 속에서도 창작극회는 현재도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며, 새로운 연극이 제시해야 할 모습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소극장 판과 문화영토 판
2004년에 개관한 다목적 공연장 '소극장 판'은 옥성문화센터 지하1층에 자리 잡고 있다. 100여석의 관객석을 가지고 있는 소극장 '판'에는 매년 3~4편의 연극이 지속적으로 기획ㆍ제작 되고 있다.  <만주전선>, <빛의 연인들>, <헤이브라더> 등 다양한 소재, 새로운 장르를 추구하는 공연들이 무대에 오른 바 있다. 소극장 '판'에 다채로운 연극이 오르는 이유는 극단 '문화영토 판'이 관객과 소통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새로운 장르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에서 기획을 맡고 있는 임성현씨는 '실험연극'이라는 장르에 대해 언급했다. "저희 같은 경우는 시도를 많이 해보려고 해요, 제가 연극 전공은 아니라 정통 연극을 논할 수는 없겠지만, 저희는 젊은 배우들이 많아 신선하고 기존의 연극 배우들이 도전할 수 없는, 그런 연극을 만들려고 해요. 예를 들어 실험 연극이 있죠. 작년에 실험 연극을 무대에 올려봤습니다. 연극은 대본이 꽉 짜여져 있는데, 실험 연극은 그때 그때 대거리를 통해서 만들어 나가는 연극이에요"
문화영토 판 역시 10년이 넘은 극단이지만, 다른 단체들처럼 힘든 점은 있다. 다른 연극 단체의 배우들도 겪고 있는 '활동 환경' 문제이다. "배우들이 순수하게 공연 개런티로만 생활할 수 없어, 몇 명은 시립 극단에서 활동하고, 예술강사를 나가는 분들도 있어요. 배우가 아니라 기획자의 입장에서 어려운 점을 말하자면, 저희는 주로 지원사업을 많이 받아서 하는데 지원사업의 금액에 따라서 배우들의 개런티가 줄었다, 많아졌다 하죠. 티켓 수입으로도 개런티가 변동되는데, 그것도 힘든 점이죠. 배우 모집하는 부분에서도 옛날에 연극을 하던 사람들은 연극이 좋아서, 개런티 없이도 연극을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연극시장이 어렵다 보니 기술적인 지원이 필요한 부분도 배우들이 맡게 된다. 이는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 연극 단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저희는 무대 세팅, 음향 등 연극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들이 맡아서 해요. 대공연장처럼 무대 감독이면 감독만, 음향이면 음향만, 배우면 연기만, 자기 파트를 갖고 배우들은 순수하게 연극을 하는 게 꿈이죠. 또 배우들이 적다 보니 다른 곳에서 배우가 필요하면 그쪽으로 갔다가 다시 오기도 해요. 품앗이 한다고 할까요"


아하아트홀과 극단 명태
2007년도에 개관한 아하아트홀은 전주 영화의 거리 메가박스 건물 앞에 자리 잡고 있다. 본래 아트홀 자리는 아하미용실의 헤어쇼장으로 이용되던 곳이었다. 아트홀 앞의 '아하'도 미용실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반 년 정도 헤어쇼 공간으로 운영되다 극단 명태에서 위탁운영을 하게 됐다. "2007년도에 좋은 자리가 있어서 건물 주인에게 소극장을 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어요. 그 곳이 바로 지금의 아하아트홀 자리죠. 1년에 한 번 씩 헤어쇼를 했는데, 제가 그 연출을 담당했어요. 어느 정도 운영해봤는데, 무대에 서려는 팀도 없고, 그렇다고 상근 직원을 둘 수 도 없고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죠. 헤어쇼장 보다는 소극장으로 운영하는 것이 잘 될 것 같았고, 마침 명태에서 소극장이 하나쯤 필요하기도 해서 주인 분께 위탁 운영을 제안해 명태가 관리하게 됐죠"
작년에 20주년을 맞은 전주 지역의 전통 있는 연극 단체 중 하나인 극단 명태는 최근에 열린 전북연극제에서 작품 '정순'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80~90년대에는 극단이 창작극회와 황토밖에 없었어요. 두 극단 모두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하기 보다는 극단 색깔이 짙은 공연을 했죠. 장르에 다양성을 추구해 보고자 마음 맞는 이들이 나와서 극단 명태가 됐어요. 그 시기에 많은 극단들이 생겼죠. 저희 극단은 '이 시대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 가자'가 지향하는 방향이에요. 지역성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올리죠. 논개 이야기, 지역 항공사 이야기, 한옥마을 이야기, 김제 벽골제 설화 이야기 작품들이 전부 지역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얼마 전 무대에 올린 '정순'도 정순황후의 고향이 전북 정읍 신태인이었다는 데에서 시작하게 됐죠"
극단 명태는 아하아트홀 뿐만 아니라 전주역 근방에 있는 우아문화의집도 함께 위탁운영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공연문화발전소 명태라는 이름 아래 우아문화의 집, 극단 명태, 아하아트홀이 연계해 직장인 연극 워크숍, 청소년 연극 워크숍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어려운 연극 시장에 '대한민국 소극장 열전', '라면 연극제', '10분 연극제' 등 창의적인 아이템을 내놓으며, 극단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다.
 "대한민국 소극장 열전은 다른 지역 연극 단체는 어떤 공연을 할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 이런 고민들을 공유하고, 전주 시민들이나 다른 지역 주민들에게 여러 공연을 선보이고 싶어서 기획하게 됐어요. 부산, 전주, 춘천, 대구 등 8개 지역 연극팀이 함께 교류했죠. 라면 연극제는 본래 무료로 진행되던 공연에서 입장료를 라면으로 받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주변에 소외된 이웃들을 돕자는 취지로 했는데, 신선하다는 평을 받았죠. 10분 연극제는 전주에 '국제' 연극제가 없다는 고민에서 시작됐어요. 전주도 나름대로 전통 있는 연극 단체들이 많은데, 다른 지역과 달리 국제연극제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해외 연극 단체를 초청해 10분 내외의 공연을 교류하는 식으로 연극제를 진행했죠. 연극제 특성상 진행이 어려워도 내년에 최소 한 개 나라의 연극 단체를 초청하더라도 명맥을 이어갈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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