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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 | 기획 [소극장 고군분투기 ④]
소극장 끈기있게 자리지킴 하기를
김형미(2017-06-30 15:29:21)

오금이 저리다. 청개구리가 울고 지렁이가 나오는 걸 보면서다. 씀바귀가 뻗어 오르기도 하고, 냉이는 죽고 보리가 익기 시작하는 무렵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주 한옥마을에서 창작스릴러 「해독」을 보고 나왔을 때다.

'the cat', '아주 치명적인 두 여자'에 앞선 김영오 대표의 스릴러 연작의 첫 번째 작품으로, 지난 2006년에 창작 초연된 작품이다. '인간의 본성과 내면에 집중하면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 김영오 특유의 작품세계를 확립한' 작품이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오금이 저렸을까. 등이 아픈 것도 아니고, 허리나 어깨가 아픈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쪼그려 앉아 있었던 것도 아닌데 다리를 펼 수 없어 주춤거려야 했다.

오금. 인체에서 무릎 뒷부분의 오목한 안쪽을 '오금'이라고 한다. 대체로 다리 전체를 지칭하는 의미로 많이들 얘기되어지는 부위이기도 하다. '오금을 걸다', '오금을 박다', '오금을 꺾다', '오금아 나 살려라', '오금을 떼다' 등. 가장 혈기 왕성한 혈자리와 연결되는 부위이기도 하거니와 우리 몸의 뒷부분 전체에 걸쳐 신경이 분포될 수 있게끔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중요한 부위이면서 우리 몸의 중심이 된다고 할 수도 있는 곳.

잠시 등나무 우거진 쇠기둥에 몸을 기대어본다. 울룩불룩 서로를 꽉 깍지 끼고 올라가는 등나무 둥치가 손바닥에 만져졌다. 어쩌면 우리는 근 10년 동안 '오금을 펴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위로부터 아래로 젖어드는 문화예술 말살 정책 속에서 그 비참함을, 어이없음을, 분노를 뿜어낼 기회조차 없이 너나없이 저린 발을 오므린 채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모든 예술인들이 그 동안 문화예술계에 일었던 피부 각질 현상을 도드라지게 느꼈겠지만, 극장가는 더 큰 어려움을 안고 왔을 것이 분명하다. 타 장르처럼 복제가 불가능하면서 시간과 장소의 한정성을 갖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블랙리스트'다 뭐다 해서 한번 바닥을 경험한 문화예술 현실을 다시 원래의 높이로 끌어 올려야 하는 부담감까지 등짐으로 진 셈이니 오죽할까. 찢어진 청바지만큼이나 민감하게 피부에 닿는 장르를 다루는 곳이 바로 소극장 아니던가.

시대의 흐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리라. 젊은 청년들의 '도전'이 능력 면에서나 경제적인 면에서 시간이 더디 걸리는 작업에 있지 않다는 점도 무시 못 할 현 시대의 흐름임에는 분명하다. 공연하는 단체는 많은데, 단체 내에서 활동할 인원이 부족하다는 기획자들의 하소연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다행히 잠깐 만남을 가진 바 있는 한 소극장의 대표는 무척이나 긍정적인 인물이었다. '소극장은 어렵다'라고 하는 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괴짜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소극장의 불황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쉬지 않고, 끊임없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 인물이기도 하다. 2016년에는 무려 329회까지 내달릴 수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되려 "작품이 없어서 못할" 정도란다.

그녀를 이처럼 극장계의 괴짜로 만든 것은 난황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지원금이 없는 극장이기에", 기획자 입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계형 작가가 있기에" 더 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므로. 즉 "무식해서 용감한" 젊은 연극들을 무대에 많이 올리고 싶다는 그녀의 말 속에서 보릿대처럼 까슬하면서도 보다 단단해진 신록의 계절이 눅어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대와 배우, 관객, 희곡이 연극의 4대 요소라고 볼 때, 관객들은 왜 갈수록 줄어드는 것일까. 그들의 관심사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인터넷과 스마트폰, sns나 해외여행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그리고 정보를 얻는 데 걸리는 시간의 간격 또한 눈 한 번 깜빡이는 것보다 짧은 시대. 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문화란 그리 쉽지 않다.

문화예술 말살 정책 탓으로 다시 한 번 돌려보자면, 사람들의 생활사가 일차원으로 하락된 것도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온몸의 감각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일이 즐김이나 배움이 아닌 하나의 노동이 되어버렸는지도. 볼 것도 많고, 할 일도 많고, 갈 곳도 많은 이 시대에 굳이 그러한 노동의 여건에 자신들의 몸을 맡기기 싫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구촌 세상이 되면서 페이스북만 통해도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게 된 데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직업과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의 형태나 여건도 다르다. 하지만 그 다양한 이들의 삶을 갖은 정보를 통해 알게 된 현대인들에게는 그들에 대한 더 이상의 호기심이나 궁금증이 없다. 정치를 하든, 예술을 하든, 음식장사나 찻집을 하든 간에 그들의 생활사일 뿐인 것이다. 예술 공연 관람까지도 크게 이슈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아닌 이상 다른 이의 생활사를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일지도.

이런 저런 많은 장애와 난점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안 되는 지역의 소극장들이 끈기 있게 자리지킴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걱정거리 없이 편안함을 찾아 오금을 펼 수 있기를. '오금을 편다'는 것은, 심신이 안정되면 여유를 찾게 되어 다리를 쭉 펴게 되는 것이므로. 하여 우리 몸처럼 다시금 중심을 잡아 미래를 향한 발돋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보리가 익기 시작하면서 하늘에는 천시원 별자리가 참 잘 보인다. 서양 별자리로는 땅꾼자리와 물뱀자리, 헤라클레스자리가 하늘나라 시장을 둘러싼 담이라 볼 수 있는 천시원에 속한다. 그 안에 있는 별자리는 대개 일반 백성의 삶에 관련된 별점을 나타내 보이곤 한다. 사는 모양은 하늘이나 땅이나 다 매한가지. 하늘을 보며 때를 거스르지 않고 땅을 일구었던 옛날 사람들에 비해, 요즘 사람들은 땅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선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끌어가는 사람을 첫 번째 자리에 두고 있다. 그 사람이 이제는 '오금을 펼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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