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여성들은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여성문제는 이미 우리사회에서 오랫동안 문제로 자리잡았지만,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SNS와 미디어에서는 여성 혐오와 극단적인 페미니즘으로 양분화되는 모습이 논란의 소재로 떠오르고, 성차별에서 비롯되는 사건들은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여성문제는 모두가 알지만 그에 대한 기준이 애매모호해졌다.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는 이런 기준을 명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래선지 종종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책과 모임을 찾아 볼 수 있다.
우리지역에는 오랜 시간동안 활동하고 있는 여성주의 독서동아리가 있다.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여성문제를 공부하고 있는 여성다시읽기. 이들의 과거, 그리고 현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여성다시읽기'모임은 1989년 활동을 시작해, 1991년부터 알려진 3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학술모임이다. 많았을 때는 13명까지 있었지만 각자의 환경에 따라 엄마가 되고 직장인이 되며 현재는 5명의 멤버, 김은혜 씨, 도인정 씨, 유수연 씨, 이영진 씨, 진양명숙 씨가 주로 활동하고 있다.
모임이 긴 시간동안 지속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이들은 한 목소리로 "게을렀기 때문"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상근자가 있는 단체가 아니고, 모임이지만 조금 끈끈한 독서모임인거죠. 더 나아가자면 하나의 결과물이 있는 독서모임, 학습공동체라고 할 수 있죠."
여성다시읽기는 정기적으로 모임을 진행하고 매거진을 발행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다른 기관과 공동으로 지역사회의 현안을 주제로 한 강연기획사업을 진행하고, 이주여성조사를 통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여러 대외활동을 했었다. 왕성하게 활동했던 과거에 비해 활동이 줄게 된 지금의 상황에 대해 도인정 씨는 멤버들의 생애주기적 활동의 근거지가 달라진 것 같다며 "우리는 함께 나이를 먹으며 공부를 해오고 있는 모임이에요. 각자 자신들의 위치나 전문분야에서의 활동이 주가 될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여성다시읽기 모임으로만 움직인 것 보단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며 여성주의를 가미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여성다시읽기의 가장 중요한 활동은 2001년부터 시작한 소식지 발행이다. 4페이지로 시작한 이들의 소식지는 8페이지, 12페이지로 늘어나며 작년에는 54페이지의 매거진으로 성장했다. 1년에 2번, 상반기와 하반기에 발행되는 여성다시읽기 매거진은 하나의 주제를 정해 이야기하는 'Zoom-in', 멤버들이 돌아가며 쓰는 '소설 릴레이', 일상 혹은 지역에서의 여성주의에 대한 글들을 담고 있다. 2017년 상반기 매거진은 지역 청년들의 여성주의 독서모임인 '리-본'과 함께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에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저희는 20대, 30대, 40대를 거치며 미혼이었다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역할과 함께 사회에서의 역할을 맡게 되는 시기들을 쭉 겪어왔잖아요. 그러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고, 현 시대의 다른 세대와의 소통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됐어요. 동시대를 사는 여성이지만 다른 경험을 하니까요. 앞으로 매거진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의제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오랫동안 발행된 소식지의 많은 글들은 대학교재로 이용하기 위해 두 권의 책으로 엮어지기도 했다. 이런 노력들을 통해 지난 2009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 주관 평생학습대상 학습동아리 부문에서 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현재 이들이 모임장소로 이용하고 있는 일명 '여다기홀'은 원래 이영진 씨의 사무실 공간이다. "저희는 항상 모임장소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이 모임만의 사무실이 있었고, 그러다 다른 호남사회연구회와 함께 사무실을 썼어요. 그러다 제가 사무실을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제 사무실에서 모임을 했죠. 저희의 모임장소는 항상 멤버들의 공부방으로 이용된 것 같아요. 멤버들 중에 대다수가 석·박사 출신인데, 다들 갈 곳이 없어서 사무실에서 졸업논문을 썼어요. 불쌍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유용한 공간이었던 거죠."
20세기에 시작해 21세기를 지낸 이 멤버들에게 여성의 삶이 나아졌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하자 모두 이구동성으로 "똑같아요. 하나도 변한게 없어요."라는 단호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오히려 왜 이렇게 변하지 않았을까 의문스럽다는 유수연 씨는 현상적으로는 변한 것 같지만 질적으로는 더 나빠졌다고 이야기한다. "최소한 저희가 처음에 페미니즘을 공부할 때는 여성에 대한 혐오는 없었어요. 여성이 억압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 대부분 인정하는 분위기였으니까요. 제가 대학 강의를 하면서 젊은 친구들에게 남녀평등에 대해 물어보면 많이 이뤄졌다고 이야기해요. 사회 진출이 쉬워졌으니까요. 하지만 직장에 나가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아직 남녀평등이 이뤄지지 않았단 걸 깨닫게 되는 거죠."
김은혜 씨는 20대에 시작해 30대를 거쳐 40대가 되는 동안 책으로 읽었던 생애주기별 차별과 억압을 온 몸으로 체험하며 몇 십 년 전의 책에 쓰여진 문구가 지금도 유용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논리들은 많아지고, 여성의 삶이 나아질거란 희망이 사라졌다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남성들도 알아야 하지만 여성들이 더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공부하지 않으면 몰라요. 눈을 뜨고 있어야 해요. 내가 겪은 부당함에 대해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지 않으면 이용당하게 돼요. 결국 자기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걸로 귀결될 수 있죠. 그러며 우리 스스로는 현실에 대해 환상을 만들어 일종의 위안과 자기합리화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거에요. '이정도면 괜찮다'라고. 하지만 모임에서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현장에서 당한 부당함이 무엇이었는지, 그 당시의 나의 위치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될 때가 많아요."
앞으로 여성다시읽기 모임은 이대로 계속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면 그만 뒀겠지만 그런 부담이 없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라고.
"저희가 계속 공부하는 이유는 하나의 선, 기준을 갖고 살기 위해서 인 것 같아요. 나이를 먹으며 내 존재의 기반이 바뀌는데, 순간마다 타협을 해야 하나 고민이 들 때가 많아요. 여성다시읽기는 그럴 때 어느 정도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선 역할을 해주는 모임이에요."
덧붙여 이러한 독서 모임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최근 책 구매 통계를 보면 여성들이 많아요. 그래서 도서 마케팅이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늘고 있죠. 여성들이 책을 산다는 것이 이런 선에 대한 열망이자 갈증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책은 사실 혼자 보기 힘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같이 읽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라는 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