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내가 낯선 전주 땅에 뿌리를 내린 지 20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2000년 시작된 전주국제영화제는 18회째가 되었다. 전주를 기준으로 하면, 전주국제영화제는 내겐 두 살 터울의 동생이 되는 셈이라면 억지일까. 한 살 어린 동생은 좀 부담스러운 면이 있지만, 두 살 정도의 차이가 나면 사랑스러운 법이다. 그러나 이런 인생의 비밀도 성숙의 시간이 되기 전에는 그저 비밀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마련.
처음 몇 년 간은 영화제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서너 편의 작품들을 관람하는 정도에 머물렀었다. 그리고 영화를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사와 영화이론을 공부하면서부터 영화보기는 내 의무이자 직업의 한 부분이 돼 버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전주국제영화제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한예종의 어린 친구들이 전주에 몰려와서 밥값깨나 써야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빛바랜 추억이다.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앞두고 나름 각오를 단단히 했었다. 올해는 좋은 영화를 골라서 아주 많이 보리라는 시네필의 소박한 다짐이었다. 10일간의 행사기간 동안 총 229편의 영화를 상영하니 총 상영편수의 십분의 일 정도를 보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연휴로 인해 가장으로서의 현생에도 면피는 해야 했으니. 가족의 눈치를 보면서 영화의 거리를 기웃거렸다. 거리에서 만나는 지인들과 영화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외지에서 온 손님도 맞이해야 했다. 축제라는 것이 원래 일상에서의 탈피 또는 탈선이 아니더냐. 아무튼...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짧은 동선 또는 선택과 집중의 효과였다. 17회에 이어 '영화의 거리' 안에 자리 잡은 전주 돔과 전주 라운지는 명실상부한 전주국제영화제의 헤드쿼터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 영화제 행사 공간인 CGV전주고사와 메가박스 전주(객사), 전주시네마타운,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로니관광호텔 등이 모두 반경 200미터 정도 안에 포진해 있다는 것은 전주국제영화제의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초기부터 대안영화 또는 독립영화를 지향해 왔다. 그간 때로 예술성의 정도가 지나쳐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작품들도 있었지만, 18회에 이르러서는 관객과 작품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집행위의 노력이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고 본다. 물론 시각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분화된 취향을 수용하겠다는 태도와 도전적인 작품들이 던지는 질문들을 수용하겠다는 본래의 자세도 견지되었으니, 감히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촛불혁명과 탄핵, 대통령의 구속으로 이어진 정국(政局)도 '영화표현의 해방구'를 지향하는 전주국제영화제에 호재로 작용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대중 신화를 파헤친 <미스 프레지던트> (김재환, 2017)는 영화제가 끝난 뒤 치러진 대선에서 30%가 넘는 득표를 보여준 자칭 '보수'의 힘과 뿌리를 보여주었고, <N 프로젝트>로 시작해 제목을 바꾼 <노무현입니다>(이창재, 2017)는 개인적으로 전주국제영화제의 절정에 오른 작품이었다. <노무현입니다>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2%의 지지율로 시작한 노무현 후보의 성공과 패배, 좌절과 죽음을 다룬 작품이다. 지역감정 철폐라는 노무현의 대의를 지지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희생, 그리고 대의와 이상 앞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전 대통령의 패기와 인간미는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노무현 변호사를 감시했던 형사, 그와 함께 30년을 함께 했던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그리고 그의 운전기사의 기억들이 안희정이나 유시민, 이광재 등 유명인사들의 언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도 꿀리지 않았다.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그리고 앞뒤 좌우에서 들리는 사내들의 훌쩍거림 속에 영화가 끝나고 나면 스크럼이라도 짜고 영화의 거리를 한바탕 돌고 싶은 심정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비서실장을 지냈던 허태열이나 이인제 같은 정객들이 우리들이 잘 볼 수 없는 자리에서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를 볼 수 있는 것은 일종의 덤이었다. 영상이 담아내는 진실의 순간! 더욱이 <노무현입니다>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제작을 지원하는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선정작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선구안에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가 선정한 다른 두 작품, <시인의 사랑>(김양희, 2017)과 <초행>(김대환, 2017) 역시 도전적이고 의미 있는 작품들임에 틀림없었다.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최고 수확 중의 하나가 개막작인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몸과 영혼>(일디코 엔예디, 2017)이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발 빠르게 섭외한 이후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하게 된 작품이니, 이 영화를 통해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의 실력이 객관적으로 증명된 것이리라. 전혀 다른 두 남녀가 같은 꿈을 꾼다는 판타지적 스토리가 인간의 소통과 사랑, 무의식 또는 집단 무의식의 영역을 횡단하였다. 아마 이 작품은 이후에도 많은 영화평론들을 생산해 낼 것이다. 폐막작인 <서바이벌 패밀리>(야구치 시노부, 2017) 역시 인터넷과 스마트폰, 유비쿼터스와 3D 프린터 등이 화두가 되는 세상에서 인간의 기본과 가족에 대해 질문하는 수작이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벨기에 감독이라고 생각하는 다르덴 형제(장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의 <언노운 걸>(2016)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 다르덴 형제를 보면 홍상수 감독이 떠오른다. 일상적인 것에의 천착, 그리고 인간의 양심과 본질에 대한 질문 등이 이들의 교집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다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가장 두드러진 변별점은 소외되고 연약한 이들에 대해 다르덴 형제는 언제나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를 보며 존 던(John Donne: 1572-1831)의 싯구절이 떠올랐다. "모르는 이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네마톨로지 클래스에서 본 <켄 로치의 삶과 영화>(루이즈 오스먼드, 2016)와 <시네마 노보>(에릭 로샤, 2016)는 그 형식에 있어 대단히 다른 작품들이었다. 전자가 켄 로치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면, 후자는 60년대 브라질의 영화운동인 시네마 노보의 형식을 차용하여 영화를 또 하나의 시네마 노보로 승화시켰다고나할까. 거장 켄 로치를 조명하는 작품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고, 아버지인 글라우버 로샤가 속한 시네마 노보를 추억하는 에릭 로샤의 작품은 시네마 노보에 대한 오마쥬 그 이상이었다.
영화의 거리에서 오다가다 마주친 이들로부터 <우리를 침범하는 것들>(애덤 스미스, 2016)이나 <라이플>(다비 르레투, 2016), <튼튼이의 모험>(고봉수, 2017), <인비저블>(오리올 파울로, 2016), <혁명을 하려던 삶의 절반은 무덤에 묻혀버렸네>(마티유 드니 & 시몬 라부아, 2016) 등의 작품들에 대한 호평을 들었으나 끝내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괜찮다. 어느 흐린 날 나는 전주국제영화제 아카이브에서 지나간 봄에 보지 못했던 이 작품들을 외롭게 보며 이 봄을 추억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 그 고독과 소통의 시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