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5 | [교사일기]
참교육의 현장
길들이고 길들여지며
유상우 무주고등학교 교사(2003-09-23 15:11:09)
"너희들은 나에게 어울리는 최상의 아이들이었다."
마지막 종례를 하고 교실문을 나설 때 가슴이 텅 비어있음을 느꼈다. 온갖 가능성과 설레임으로 교실에 들었을 때 너무나 가뿐히 열렸던 문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운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무게만큼이나 다가오는 2학년 2반 37명의 얼굴들이 '인연'이라는 거창한 단어와 함께 떠올랐다.
대학시절 연극에 미쳐 있던 나는 교직에 대한 생각은 늘 추상적이고 먼 이야기였고, 교단에 서 있는 선배들의 어설픈 모습을 그저 무심히 지나치곤 했다. 그러나 졸업과 함께 치른 '임용고시'라는 절차가 나를 교직에 들여 놓았고 1년간의 기다림 속에서 교직은 또 하나의 나에 대한 가능성이 되었다.
그러다가 무주 고등학교에 발령을 받았고, 누구(?)눈에 잘 보였는지 2학년 2반 담임을 맡게 되었다. 아이들과의 첫 만남이 1년을 좌우하는 것을 알기에 그날 저녁은 표정연습과 대사연습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다음날 시업식을 강당에서 하고 2학년 2반 교실문을 떨리는 마음으로 열었다. 아이들이 내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의외라는 탄성과 놀람 섞인 소리들이 터져 나왔고 그 반응에 나는 어찌할 줄 모르다가 겨우 내 이름 세자와 1년간 잘 하자는 말만 간신히 꺼내고 도망치듯이 나왔다. 어제 저녁에 준비한 말들은 써먹지도 못한 채. 그렇게 어설프게 교사로서 첫 출발을 하였던 것이다.
첫 일주일간 개인상담과 가정방문을 통해서 아이들의 가장환경, 성적, 교우관계 등을 파악하고 나니 놀람을 금할 수없었다. '쿠오레'에서 나오는 아이들을 기대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기준삼아 아이들을 판단한 것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1등하는 아이의 대학수학능력평가 성적은 100점을 넘지 못하고 술, 담배, 이성관계에 일찍 눈떠버린 아이들, 그 아이들이 2학년 2반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여러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이상하게 학기 초 반편성시 무주고등학교 대대로 문제 아이들이 2학년 2반에 많이 모여서 '마의 2학년 2반'이라는 별칭이 붙고 선생님들도 담임 희망을 꺼리는 반이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오기가 생겼다. 내가 담임을 맡은 이상 '마의 2학년 2반'이라는 불명예를 씻어 보겠다는 결심으로 1년간의 학급운영 계획을 세웠다.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밥 먹듯이 지각, 결석을 하는 몇 아이들과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줄다리기 였다. 매일 지각을 하는 병호, 관절염으로 학교에 못나오겠다고 아침마다 전화하는 복학생 동성, 저녁마다 술을 먹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는 병수, 가끔씩 생각나면 지각, 결석하는 춘식, 기상, 한석, 명종......매일 아침마다 아이들의 빈 자리를 확인하고 집으로 전화하고, 아이들을 깨우러 집마다 방문하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점점 나의 노력으로 지각, 결석생들이 없어지자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여자아이 은옥이의 화려한 가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을 잡으러 학교에 나오는 것은 아닌지 하는 회의가 드는 한달이었다. 동료 선생님들께서 나를 보고 "모든 선생님들이 처음에 의욕적인 마음과 행동을 보이지만 아이들보다 항상 먼저 지쳐버리지, 자네는 아직 점잖아"하면서 격려를 해주었고 덕택에 '2학년 2반' 아이들과 줄다리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 두 달정도 지나고 나니 아이들은 난에게 길들여지기 시작하였다. 반 아이들이 스스로 아침마다 상습적으로 지각하는 아이들을 데려오고 전화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5월 중순쯤 출석부가 깨끗한 상태를 이루게 되자 나는 한 가지 욕심을 내게 되었다. 2학년 2반이 5월중 무결석 학급이 되는 것, 주위 선생님이나 아이들에게 표시는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무결석 학급의 담임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드디어 5월31일 월말 통계를 내면서 쾌재를 불렀다. 37명 전원이 한 달 동안 지각, 결석, 조퇴를 한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주위에 있는 많은 선생님들이 축하의 말을 해 주셨고 그날 저녁 자그마한 술자리가 있었다. 그날 선생님들과의 정담 속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술자리에 계신 선생님들이 전에 '마의 2학년 2반'담임 이었다는 사실이다. 유상우 선생님 대에서 '마의 2학년2반'이라는 이미지가 끊기길 바란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분들과 마음이 오가는 자리에서 가슴이 훈훈해짐을 느꼈고 나의 뒤에는 든든한 백이 있음을 알 게 되었다.
하지만, 정말로 아이들은 튀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개구리였다. 6월 중순쯤 되자 우리 반 출석부가 '피바다'가되는 수모를 겪었던 것이다. 무주 아이들의 생일이면 의례히 저녁 술파티까지 발전하는데, 하필이면 우리 반 한석이의 생일파티가 주민의 신고로 학생부 선생님에게 적발이 되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 내가 없었으면 좋으련만, 우리 반 아이들 7명은 멀거니 나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 다음날 출석부에 유기정학, 무기정학 도장을 내손으로 찍고 말았다. 아이들이 처벌당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학교의 처벌에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던 나는 신규교사로서의 나약함을 그 순간 절실히 느꼈다. 아이들을 지도할 때 변수가 작용할 경우 그것에 대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훌륭한 교사가 된다는데 나는 우리 반 출석부에 7개의 빨간 도장을 볼 때마다 화가 나고 짜증을 내곤 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사건이 터지고 나자 교시에 있는 아이들과의 틈이 벌어지고 나도 아이들에게 지쳐가면서 우리 반은 또다시 '마의 2학년 2반'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책상위에 편지 한통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선생님, 요즘 저희들 때문에 무척 힘드시죠. 하지만 선생님이 힘들어하시면 저희들은 더욱 힘들어요. 선생님 힘내세요. 선생님에겐 우리들이 있잖아요-선생님을 사랑하는 2학년2반 일동-
편지를 보면서 내가 아이들을 길들이고 있을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기들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이후 나는 나에게 있어서 동료교사나 다른 누구보다 아이들이야 말로 가장 든든한 버팀목임을 알게 되었고 우리 반은 다시 틀이 잡혀 한명의 낙오자도 없이 무사히 3학년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지난 1년 동안을 생각하면 참으로 많은 감정들이 나를 휘둘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짜증, 아쉬움, 기대감, 좌절감, 관용, 이해, 꺾인 자존심, 너그러움…….그러나 나는 뒤틀리지 않은 아이들의 환한 웃음을 보면서 나의 상처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댓가가 값지고 고귀한 것임을 확신했다. 내가 아이들을 길들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관계였다. 그래, 2학년2반 너희들은 나에게 최악의 선택이었지만 최상의 아이들이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일깨워 준 너희들을 많이 사랑한단다.
어느새 녀석들은 3학년이 되었고 새학기에 따스한 봄볕이 느껴지는 교실에서 나는 웃음 뒤에 몽둥이를 감출 줄 아는 조금은 여유 있는 선생님이 된 듯하다.
유상우 / 70년 전주출생으로 한국교원대학교를 졸업하고 93년3월 첫발령을 받았다. 1년이 갓 넘은 학교생활과 천진난만한 학생들과의 만남에 힘 있고 활기 있게 생활해 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