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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 | 연재 [이휘현의 책이야기]
대단하다, 스티븐 킹!
스티븐 킹 『파인더스 키퍼스』
이휘현(2017-08-28 15:17:07)



반짝반짝 빛나는 창작의 열매에 작자(作者)의 타고난 재능은 주요한 밑거름이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애초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얻어걸린 창작의 재능이 백이면 백 다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들의 빛나는 재능은, 혹은 빛이 났을 재능은, 아름다운 결실을 맺지 못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물론 피치 못할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좋은 시절과 환경을 만났다면 알차게 맺었을 수많은 열매들. 불시착한 시공간 속에서 스러져버린 재능들은 아무 의미도 품지 못한 채 한 줌의 먼지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천부적 재능의 발휘가 반드시 시대와 환경과의 궁합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시공간에 놓인 재능도 '게으름'이라는 벽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결국 천재의 탄생은 근면성실함에 발 딛고 선다. 다양한 고유명사들이 예시로 쓰일 수 있을 텐데, 이 지면에서 다루고자 하는 스티븐 킹(Stephen King) 또한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며칠 전 내 서재에 꽂혀있는 스티븐 킹의 책 숫자를 세어보았다. 쉰일곱 권. 나쁘지 않은 스코어다. 지금은 쉰여덟 권 째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고 있다. 내일 시작될 고된 하루를 생각하면 이미 깊어버린 밤을 잠으로 채워야 할 텐데, 나는 책장을 덮기가 못내 아쉽다. 스티븐 킹의 소설은 이전에도 대부분 그랬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이 대목에서 끊기가 서글프지만 내일을 위해 결단해야 한다. 불을 끄고 똑바로 누웠는데,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압도한다.
'스티븐 킹은 역시 천재야!!'
1947년생이니까 우리 나이 셈으로 하면 올해 일흔 하나가 되는 스티븐 킹은, 우리에게도 비교적 이름이 익숙한 미국의 소설가다. 다들 아시다시피 그의 전문 분야는 '공포소설'이다. 1974년에 그의 이름을 최초로 알린 데뷔작 <캐리>는 명불허전의 공포 클래식이라 할 수 있다. 이후 1980년대까지 이어진 <샤이닝> <살렘스 롯> <잇(It)> <쿠조> <미저리> 등 셀 수 없는 호러 장르의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의 책들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상당수의 작품들이 영화나 드라마 장르로 재탄생했다. 非 공포 분야에서도 스티븐 킹은 족적을 남겼다. <스탠 바이 미> <돌로레스 클레이본>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그린 마일> 등이 대표적이다.
누적 판매부수가 '억'단위로 계산되어야 하는 작가이니, 스티븐 킹은 20세기 미국 출판계에 한 획을 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명성은 세기가 바뀌고 그의 나이 일흔이 넘었어도 여전하다. 무엇보다도 그가 대단한 점은, 첫 작품 <캐리> 이후 지난 40여 년 동안 기복 없이 진행된 그의 글쓰기 작업에 있을 것이다. 스티븐 킹 애독자로서 종종 서점에 들러 그의 신간 소식을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는 적어도 일 년에 두세 권 이상의 책을 펴낸다. 대단한 성실함이다. 더군다나 다작임에도 불구하고 졸작을 골라내기가 쉽지 않다. 천재가 게으름과 무관한 삶을 살았을 때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의 최대치라고 할 수 있을게다.
물론, '시시껄렁한 장르소설 나부랭이로 독자들 주머니 좀 털어먹었기로서니 그가 무슨 대단한 작가라도 된다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도 장르문학에 익숙해지기 전에는 스티븐 킹을 '그저 그런 이류 대중작가' 정도로 치부해 왔다. 그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지레짐작이 작동했다.
내 편견이 깨진 건 그의 소설에 본격 입문한 십년 전 부터다. 한 번 빠져드니 헤어 나오기 쉽지 않았다. 잘 읽히는 글을 쓰는 게 재능이라면(물론, 나는 그것이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스티븐 킹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작가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꾼으로서 재능과 능수능란하게 문장을 구사해내는 그의 능력은, 적어도 내 독서의 궤적 안에서 탑클래스로 분류될 수 있을 게다.
그렇다고 그를 재기 넘치는 테크니션 정도로 치부할 것인가? 아니!! 그가 펼쳐내는 속도감 넘치는 이야기들의 바닥에는 현대 미국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짙은 음영으로 드리워져 있다. 낙관보다는 비극이, 희망보다는 절망이 그의 손가락 끝을 통해 오늘 날 미국의 초상으로 완성된다. 섣불리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스티븐 킹 문학의 가장 큰 미덕 아닐까?
그가 일흔 가까운 나이에 접어들어 처음 선보인 하드보일드 장르에서도 그의 장기는 빛을 발한다. 빌 호지스라는 늙은 탐정과 그를 돕는 조력자들이 등장해 일명 '빌 호지스 삼부작'이라 명명되는 이 탐정 소설에서, 스티븐 킹이 바라보는 미국은 여전히 비관적이다. 그 배경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휘청거리는 미국 사회의 상처와 후유증이 깊이 새겨있다.
이 시리즈는 현재 두 권이 선을 보였다. <미스터 메르세데스(MR MERCEDES)>와 <파인더스 키퍼스(FINDERS KEEPERS)>가 그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두 권 다 번역본이 나와 있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은 두 번째 시리즈인 <파인더스 키퍼스>다. 재밌냐고? 두말 하면 잔소리다.
첫 번째 이야기 <미스터 메르세데스>에서는 고급 승용차로 '묻지마 학살'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가 악당으로 등장한다. 이 소설의 결말은 모든 하드보일드 장르가 그러하듯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악의 응징 여부가 아니다. 대신 범인이 묻지마 학살을 벌이는 현장이 어디냐는 것에 방점을 찍어보자.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경제난에 허덕이는 미국의 하층민들은 이른 새벽부터 도시 컨벤션센터의 취업박람회 앞에 줄을 선다. 악당은 그와 아무 상관없는, 그것도 미국의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 그늘 아래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향해 차를 들이민다. 그 학살에는 이유도 명분도 없다. 미국 하층민들의 살고자 하는 몸부림은, 상류 계급의 상징과도 같은 고급 승용차의 바퀴 아래서 무참히 짓밟힌다.
제2부 격인 <파인더스 키퍼스>에서는 그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불행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의 한 서민 가정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스티븐 킹은 왜 그 끔찍한 학살의 현장을 독자들에게 계속 복기시키는 것일까?
미국(혹은 전 세계) 자본주의의 변방에서 연명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불안 심리.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황의 늪. 그래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는 경제난 그 자체가 공포다. 그것도 꽤나 끔찍한 공포다. 하드보일드라는 외피이지만, 이 시리즈가 공포소설 못지않게 독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로테스탄트에 의해 세워진 미국이 수백 년 후 맞이하게 되는 극단적 도덕불감증. 풍요와 기회로 상징되던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 그것이 바로 스티븐 킹이 목도 중인 미국사회의 리얼리티인 셈이다.
쏙 빠져서 읽다보니 <파인더스 키퍼스>의 분량이 자꾸 줄어간다. 슬프다. 또 스티븐 킹의 신간을 손에 쥐려면 몇 개월의 기다림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그나마 그가 몇 년에 한 권, 혹은 평생에 걸쳐 한 두 권의 책만 선보인 짠돌이(?) 작가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스티븐 킹, 그의 성실함에 다시 한 번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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