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등등하던 폭염이 슬그머니 물러선 8월 하순의 토요일 해거름 무렵, 전주 중노송동에 있는 오래된 주택가 '문화촌'의 한 골목길이 부산해졌다. 집집마다 대문 앞에 꽃나무 화분들을 즐비하게 내놓았고 담벼락에는 동네사람들이 직접 그린 꽃그림 액자들이 걸려 있다. '밤에 피는 꽃장'이라는 글귀의 행사포스터에 있는 알록달록 그림도 동네 통장님의 작품이다. 여남은 개의 좌판에는 역시 동네사람들이 직접 만든 도자기와 올망졸망한 수공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명색이 '판매용'이지만 굳이 팔겠다는 의지보다는 기웃거리는 손님들과 이웃들에게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골목 한가운데 펴놓은 돗자리에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부터 할머니를 따라 나온 코흘리개 꼬마까지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날이 어두워지자 골목 끝 막다른 담벼락에 흰색 천을 드리우고 빔프로젝터로 영화도 상영한다. 작년과 올봄에 이어 세 번째로 열린 이 동네 골목축제 '꽃장'의 풍경이다.
이 동네 일대가 '문화촌'이라 불리게 된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1970년대에 전주시 구도심 인접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당시의 주거수준에 비해 '문화적인' 신식 양옥집들이 들어서서 그렇다는 이들도 있고, 지역의 언론계, 학계, 문화계 인사들이 많이 모여 살아서 그렇다는 이들도 있다. 어쨌든 네모반듯하게 구획된 골목들에 들어선 단정한 이층 양옥집들과 집집마다 밑동 굵직한 정원수들이, 왕년에는 이 동네가 제법 잘나가던 중산층들의 신흥주택가였음을 짐작케 해준다. 그러나 사람이든 집이든 세월을 비켜갈 수는 없다. 낡고 빛바랜 집들과 녹슨 철대문들에서 은근한 쇠락이 느껴져서 쓸쓸하다. 젊은 사람들이 새로 지은 아파트들을 따라 이리저리 이사 다니는 동안 문화촌의 주민들은 이곳에 남아 낡아가는 집과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다.
3년쯤 전 한 젊은이가 이 동네에 집을 사서 이사왔다. 사진작가 장근범이다.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격 느긋하기로 소문난 그는 여러 달 동안 꼼지락꼼지락 낡은 집을 손수 고쳤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레 이웃들과 친해졌다. 예상했던 대로 동네 주민들은 대부분 고령의 어르신들이었다. 삼십 년 넘게 이 동네에 살면서 자식들을 길러내 시집장가 보내고 별다른 걱정거리 없이 사는 분들이다. 자식처럼 대해주시는 동네 어르신들과 도란도란 정이 들다보니 아파트단지와 '마을'의 차이를 저절로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활동가 네트워크 '맹그러브'의 김명규 대표와 함께 어르신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문화프로그램을 고민했다. 어르신들의 경륜과 지혜, 젊은 문화예술가들의 재능을 서로 나누는 활동을 조심스럽게 제안했을 때 주민들로부터 예상 밖의 호응을 얻었다. 경제활동 일선에서 물러난 은퇴자들이다 보니 새로운 활력과 다양한 여가활동의 기회가 절실했던 것이다. 그렇게 '꽃장'이 시작되었다.
꽃장은 촌스럽고 올망졸망하다. '축제'라면 으레 돈 많이 들인 화려한 행사장과 북적거리는 인파를 떠올리는 이들은 어쩌면 "애걔, 이게 무슨 축제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함께 어울려 즐거우면 축제가 아닌가. 준비하는 이들의 정성과 참여하는 이들의 설렘으로 따지면 이만한 축제가 없다. 꽃장을 둘러보고 있노라면 '검이불루(儉而不陋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다)'라는 옛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몇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장터가 꽃장의 전부가 아니다. 언제부턴가 꽃장은 상설 동아리가 되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 되면 장근범 작가의 집으로 동네 어르신들과 청년작가들이 모인다. 각자 음식을 준비해 와서 함께 나눠먹는 포트락 파티도 가끔 열린다. 사생활의 자유를 몹시 중요하게 여기는 장 작가이지만, 꽃장을 위해서 자신의 집을 기꺼이 동네 사랑방으로 내놓았다. 온 동네 사람들이 대문의 비밀번호를 알아서 누르고 들락거린다. 그렇게들 모여서 다양한 문화체험활동을 한다. 각 분야의 청년예술가들이 재능을 기부하여 어르신들에게 위빙(직조), 도예, 압화, 그림 등을 가르쳐드린다. 어르신들은 젊은 작가들을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열심히 따라 하신다. 그리고 청년들이 삶에서 고민하는 주제들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얘기해주며 조언해준다. 이번 꽃장의 주제는 '결혼과 출산'이었다.
취재가 끝나갈 무렵 장 작가가 간곡하게 당부했다. "우리 꽃장을 '성공사례'로 포장하지는 말아주세요. 어느 한 곳에서 잘 된 사례가 있으면 그것을 인위적으로 복제해서 확산하려는 시도들이 오히려 문화예술사업이나 마을사업을 망치게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