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될 무렵, 북스포즈는 일본 도쿄로 서점 공부를 다녀왔습니다. 우리는 책으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기존의 인식과는 조금 다른, 확장된 공간의 서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매일 이벤트가 열리는 B&B, 출판 과정을 볼 수 있는 시부야 퍼블리싱 앤 북 셀러즈, 매달 주제를 정해 테마를 바꾸는 카모메북스,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는 츠타야 등 각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10곳의 서점에서 10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질문과 답변이 끊임없이 오가고 그 안에서 즐거움이 공유되는 공간, '동네 서점'에 관한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B&B(BOOK & BEER)
하루키와 '책맥' 한 잔 어떠세요?
책과 맥주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서점이 있다. 바로 '책맥'의 원조, B&B다. 서점에서 판매하는 맥주도 훌륭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B&B를 사랑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이벤트', 흔한 낭독회나 사인회가 아닌 책의 저자들과 대화할 수 있는 북 콘서트가 매일 밤 열리고 있다. B&B는 문을 연 이래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는데 횟수로 따지면 연간 450회 정도다. 요시모토 바나나, 가쿠다 미츠요 등 유명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동네 서점 B&B는 시모키타자와 지역 주민이 매일 찾을 수 있는 서점, 동네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서점을 지향한다. 최근에는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와 함께 시모키타자와에서만 살 수 있는 책을 만들어 팔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B&B을 찾는다는 것은 서점의 수익 창출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의미한다. 방문객은 서점만 들렀다 가지 않는다. 대부분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주변 가게를 둘러보고 떠난다. 작은 동네 서점이 긍정적인 변화와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책장도 팔아요"
B&B에 있는 책장과 책상, 의자는 모두 구매 가능. 가구가 판매되고 나간 자리에 새로운 가구가 들어오면 서점은 색다른 분위기로 바뀐다.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책의 재미를 모르기 때문"
B&B의 대표 우치누마 신타로는 재밌는 기획 상품을 제작하는 편집자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인용구 한 문장만 쓰여 있는 '문고본 엽서'나 카페 메뉴에 책을 넣어 홍차와 책을 함께 판 '문고본 세트' 등이 있다. 언제나 즐거운 서점 B&B가 궁금하다면 우치누마 신타로가 쓴 <책의 역습>(하루, 2016)을 읽어보길 바란다.
모노클(MONOCLE)
잡지의 진화
모노클은 종이 매거진이다. 비행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라이프 스타일 잡지. 건축·디자인 잡지 '월페이퍼'를 창간했던 타일러 브륄레가 2007년 창간했다. 통신사가 배포하는 보도 자료를 받아쓰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나 사업적으로나 기회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원하는 비즈니스, 국제정치, 건축, 패션, 도시와 관련된 콘텐츠를 담는다. 두께와 퀄리티는 잡지보다 책에 가깝다. 기사는 홈페이지에 게재되지만 누구나 무료로 읽을 수 없다. 잡지 정기 구독자만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책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판다"
모노클은 브랜드다. 잡지를 중심으로 온라인 미디어, 라디오, 모노클샵, 콘퍼런스를 열고 있다. 모노클샵은 잡지를 홍보하고, 모노클의 생각을 공유하고, 브랜드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잡지 모노클과 함께 꼼데가르송을 비롯한 유수 디자이너 브랜드와 콜라보 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여권케이스, 가죽 파우치, 넥타이, 여행가방 등 철저하게 모노클을 '읽는' 사람이 살만한 물건을 가져다 놓는다.
"24시간 라디오가 흘러나오는 모노클"
모노클은 24시간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다. 샵 입구에는 라디오가 설치되어 있다. 영국 발음의 진행자의 목소리가 일본 특유의 깔끔하고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이곳을 가득 채운다. 도쿄와 런던의 오묘한 조화를 느낄 수 있다.
"격자 너머 모노클 재팬 사무실"
모노클 샵 안에는 모노클 재팬 사무실이 위치해있다. 나무 격자를 사이에 두고 분리되어 있는 모습. 잡지를 제작하는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잡지에 대한 신뢰도를 높인다. 사무실 안에는 런던과 도쿄의 시간이 모두 나오는 전자시계가 걸려있다.
북스 도쿄도(Books Tokyodo)
인간예찬(人間禮讚)
추적이는 비를 맞으며 진보초(神保町)의 헌책방 거리를 걷는다. 헌책방이 주는 향기는 마치 할아버지의 오래된 서재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낯선 땅에서 전주의 홍지서림 거리나 부산 보수동 헌책방 거리를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니.
"진보초 헌책방 거리 그리고 북스 도쿄도"
헌책방을 걷다 보면 진한 청록색의 건물을 만날 수 있다. 넓은 유리창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저마 다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커피를 즐긴다. 깔끔한 건물에 생긴 지 얼마 안 된 대형서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자리에서 100여 년을 보낸 북스 도쿄도(Books Tokyodo)다.
"혼자 오는 사람들을 위한 서점"
북스 도쿄도는 주로 혼자 자리에 앉아 책을 보는 사람이 많다.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를 시킨 사람들은 유리창으로 밖이 보이는 바에서 책과 음료를 즐겼고, 2층에는 책을 구매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책 읽는 공간이 있다. 사람들은 1인용으로 배치된 편한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다.
"책이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다"
3층 규모의 북스 도쿄도가 책을 구분하는 방식은 바로 사람(Worship of mankind)이다. 북스 도쿄도의 각 층에는 인간의 미래, 인간의 행동, 인간의 생각으로 나뉘어 책들을 구분해 놓는다. 아니, 주제에 맞춰 책을 전시했다기보다 책이 인간에 대해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책의 숲을 안내하는 북스 도쿄도의 직원들"
수많은 책장과 책들 사이사이에는 직원들이 손 글씨로 적은 책 소개가 붙어있다. 작은 서점에 서만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함을 대형서점에서 볼 수 있다니 새로웠다. 반대로 대형서점에 꼭 있어야 할 도서 검색대가 없었다. 서점은 넓지만 북스 도쿄도의 직원들은 이 모든 책을 바로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시부야 퍼블리싱 앤 북셀러즈(SPBS, Shibuya Publishing & Booksellers)
책의 입구
현재 시각은 오전 11시 46분. 서점은 굳게 닫혀있다. 아쉬운 마음에 유리창에 두 손을 모아 불이 꺼진 서점 안을 들여다보자 또 다른 유리벽 너머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몇몇의 사람들이 컴퓨터 자판을 연신 두들기는 것이다. '가게는 분명 닫혀있는데…저 사람들은 뭐지?'
정오를 알리는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밤 12시는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는 야속한 시간이었지만, 낮 12시는 '시부야 퍼블리싱 앤 북셀러즈'(이하 SPBS)의 마법이 시작되는 즐거운 시간이다. 상점 오픈은 9시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12시에 문을 여는 이곳은 오전에는 출판사 업무를 보고 오후에는 서점을 함께 운영하는 일명 '출판하는 서점'이다.
"유리 구두 대신, 유리벽과 소통"
SPBS에는 유리로 시작해 유리로 연결되는 서점이다. 매장 전면의 통유리창과 문을 열고 들어서면 또 다른 유리벽이 나타난다. 벽을 사이에 두고 서점과 출판사가 공간을 나누어 사용하고 있는 구조. 자연스럽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그 어떤 고급스러운 문장보다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들이니 신뢰할 수 있겠구나.'
손님은 책을 보고,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본다. 계산을 원하는 손님이 있다면 잠시 일을 멈추고 나와 계산을 해주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대화는 더 크게,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이어진다. 이곳에서는 월에 1~2번 인디가수부터 책의 저자까지 다양한 인물을 초대해 약 2시간에 걸쳐 '토크쇼'를 진행한다.
"라이프스타일을 편집하는 편집샵"
SPBS가 대화를 하고자 하는 대상은 2030 밀레니얼 세대다. 일본의 젊은 감성과 소통하기 위해서 S자형부터 블록형, 벽에 매달린 선반형까지 독특한 책장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예술, 디자인, 인문 문학 서적들이 'Hello tokyo' 'youth' 'tech' 'comics' 'insight' 등의 특색 있는 테마에 따라 분류되어 있다.
단순히 책만 놓여있지 않는다. SPBS에는 옷, 주얼리, 문구류 등을 함께 배치해 판매한다. 물론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맥락을 함께하는 물건들이다. 예를 들어 방문 당시(7월 초)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옷의 순환을 꿈꾸는 'RAW TOKYO'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SPBS의 점장 스즈키는 말한다. "소량이라도 매일매일 새로운 책을 들여오고 있어요. 그게 아니라면 책의 위치를 바꿔주면서 손님들이 새로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죠. 책은 어렵고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깨고 쉽고 친근한 친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평소 책과는 거리가 있던 사람이라도 부담없이 들릴 수 있는 이곳. SPBS는 한마디로 책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책의 입구다.
츠타야(T-SITE)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다
초록색 넝쿨로 둘러싸인 공간, 마치 수목원을 연상시키는 푸릇함과 따뜻한 햇살. 유리문을 열고 서점에 들어가자마자 "서점 맞아?" 어리둥절함이 섞인 감탄사가 터졌다. 분명 스타벅스인데 책 선반이 있질 않나, 책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 심지어 편의점까지 들어와 있다. 책을 읽다 음악을 듣고 싶다면? CD를 꺼내 들으면 된다. 좋아하는 영화? 드라마도 물론 준비되어 있다. 그렇다. 이곳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서점'이다.
"카테고리로 분류하지 않는 서점"
'A경제경영 B인문 C사회과학 D참고서…'와 같은 카테고리는 이곳에 없다. 대신 세분화된 주제로 관련 상품이 배치되어있다. 예를 들자면 미소된장국 레시피 책옆에는, 미소된장국 소스와 앞치마 그리고 양은냄비가 있다. 인스턴트 된장 컵라면도 있고, 바로 아래에는 된장에 관한 역사책, 라멘집(된장을 이용한 라멘)에서 벌이지는 일상에 관한 소설책도 있다. 세상에 이런 된장 코너를 본 적이 있던가.
"오직 나를 위한 상담가가 있는 서점"
츠타야에는 책을 안내해주는 컨시어지가 있다. 컨시어지에게 찾아가면 책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이들은 단순한 판매 사원이 아니라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로 마치 호텔 데스크에서 상담을 해주듯이 취향에 맞게 책을 선정해주고, 자신이 인상 깊었던 구절을 알려준다. 심지어 같이 읽으면 좋은 책과 미리 읽어두면 좋은 책을 추천해주기까지 한다. 마치 상담을 받고 나온듯한 기분, 지금 당장 책을 읽고 싶어진다.
책거리(CHEKCCORI)
도쿄에서 만난 한국 책방
진보초 고서점 거리를 걷다 보면 간판을 마주치게 된다. 익숙한 영어 배열. 왠지 읽어보고 싶다. "췍.코리." 멈칫. 내가 아는 책거리가 맞나 싶어 2층으로 올라간다. 문을 열자 경복궁과 새색시가 반겨준다. <밥이 최고야>. 고개를 끄덕인다. 맨부커상 수상으로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보인다. 책을 꺼내 펼쳐본다. 한글이다. 반갑다.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난 기분. 숙인 허리를 펴고 통로를 지나 매장 전체를 둘러본다. 한지 벽면, 골무, 김연수, 신경숙, 임경선, 미생, 무한도전…. 여기 코리아타운인가?
"낯선 도시에서 만나는 교집합"
직원이 다가온다. 나에게. 시선을 피해 앞에 놓인 책을 뒤적거린다. 결국 왔다. 일어를 못하는 나는 '다이죠부(괜찮습니다)'를 외치기 위해 미리 입모양으로 '다' 만들고 있는데 뜻밖의 말이 들린다. "안녕하세요. 한국인이세요? 뭐 찾아요? 그거 도와드릴까요?"
책거리는 도쿄 유일의 한국 서적 전문 서점이다.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인 <쿠온> 대표 김승복 씨가 차린 동네서점이다. 유창한 한국말을 자랑하는 와타나베 나오코 씨는 서점과 출판사의 직원이자 동화책 번역가였다. 서점에 대한 애착이 느껴지는 그녀의 설명을 들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한국어를 전공하는 대학생부터 한류의 매력에 빠진 아주머니, 재일동포, 한국 여행객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모두 하나의 교집합으로 이어져있다. '한국'이라는 교집합.
"숨겨둔 곶감"
책거리는 섬세하다. 한지를 붙인 책장에 새끼를 꼬아 책을 꽂아 넣는다. 2016년의 한국에 있는 서점이라기보다는 한옥마을에 위치한 전통 서점 같다. 테이블 의자는 장구모양, 회원카드 작성하는 볼펜에는 KBS마크가 찍혀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감성과 취향을 고려한 마음이 서점 곳곳에 녹아있다. 배려심이 묻어난다. 책거리의 주인은 이곳을 찾는 이들이구나.
카페를 겸하는 이곳에서 수정과를 주문했다. 판매하는 메뉴도 한국 전통음료들이다. 내 생의 첫여름 수정과를 음미한다. 그것도 도쿄에서. 달달한 게 맛있다. 차를 다 마시면 잔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하이라이트 곶감을 기대했지만 없었다. 사실 곶감은 있었다. 고서점 거리 어느 건물 2층에 꼭꼭 숨어있어 발견하기 쉽지 않지만 한 번 찾아오면 또 생각나는 '책거리'라는 곶감. 웅얼거린다, '여름이면 생각나겠구나.'
카우북스(COW BOOKS)
과거에서 온 편지
나카메구로(中目黒)의 작은 강변에는 작고 예쁜 다리와 숲이 있다. 녹음이 짙은 이곳이 도쿄가 맞나 의아했는데, 강변을 따라 걷다보니 개성 있는 작은 숍들을 만나게 된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길가에는 테이블과 벤치까지 나와 있어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눈다. 그렇게 걸어가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젖소 모양의 조형물이 시선을 끈다. 바로 카우북스(Cow Books)다.
"카우북스가 헌 책을 파는 이유"
카우북스는 1960-70년대에 발행된 에세이, 미술, 요리 등의 책을 판매한다. 지금은 찾기 힘든 예쁘고 빈티지한 책들도 많아 애서가들의 사랑을 받고있는데 특히 서점 입구에 적힌 "Everything for the freedom."에 맞춰 그 시대의 문화예술, 히피, 진보적인 사회운동을 다룬 책들을 판매하고 있다.
카우북스는 헌책을 팔고 있지만 전혀 헌책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카우북스에서는 오래된 책들을 '지금 읽어야 할 책'이라고 소개하는데, 책 속에 담긴 메시지가 현재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책장을 들여다보면 카우북스에서 오늘 읽어야 할 책을 선정하여 표시를 해두고 있었다.
"작지만 포근하고 여유로운 공간의 힘"
카우북스는 정방형의 조그만 공간에 3면이 책장으로 된 동네서점이다. 하지만 빈티지한 책이 주는 분위기 때문에 넓고 포근한 공간에 온 것 같다. 벽 위에는 책장과 천장 사이에 전광판이 매장을 빙 둘러쌉니다. 전광판의 화면 안에는 오늘 선정된 책의 인용구가 어항 속 물고기처럼 떠다닌다.
카우북스 한복판의 넓은 책상에서는 앉아서 책을 읽거나, 카우북스에서 판매하는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다. 책상에 앉아보았다. 책상 위 스탠드 아래에는 카우북스에서 만든 책갈피와 엽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노란 불빛 아래 있는 모습이 예뻐서 엽서 한 장을 사서 편지를 썼다.
"소의 걸음은 느려도 천리를 간다"
카우북스의 설립자 마츠우라 야타로(松浦弥太郎)씨는 많은 사람들의 메시지가 담긴 책을 통해 카우북스가 새로운 무언가를 탄생시키는 장소가 되길 원한다고 말한다. 카우북스에 전시된 2,000여 권의 책들이 만들 세상은 무엇일까? 궁금증을 뒤로하고 나오며 젖소 조형물을 본다. '소의 걸음은 느려도 천리를 간다(牛步千里)'는 일본의 격언처럼 세상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는 카우북스의 발걸음은 계속될 것 같다.
카모메 북스(Kamome Books)
1공간이 주는 3가지의 즐거움
카쿠라자카에는 오래된 동네서점이 있었다. 그리고 단골손님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자 서점은 폐업을 하게 됐다. 단골손님은 동네의 문화생활 공간이 없어지는 것이 아쉬워 직접 서점 주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야나기 시타 코헤이의 카모메 북스(Kamome Books)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 방문객에게 불친절한 서점이다. 간판 어디에도 '카모메 북스'라고 적혀 있지 않다. 건물의 하늘색 어닝에는 BOOK + COFFEE + GALLERY라는 문구가 박혀있을 뿐이다. 하지만 카모메 북스의 매력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전면에서 보았을 때는 테라스가 있는 멋진 카페다. 커피와 여유를 즐기러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새로운 공간이 나타난다. 표지가 예쁜 잡지를 전면으로 배치한 매대를 시작으로 오른쪽으로 길게 책이 담긴 책장이 있다. 서점이다.
서점의 컨셉은 잡지다. 매달 테마를 정해 '프리미엄 선반'에 책을 진열한다. 봄에는 'GREEN UP!, 건강 특집 때는 '온 우주를 몸으로 느끼기 위한 방법' 등으로 이름 붙인다. 시의성과 센스를 겸비한 코너 제목이 손님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서점 중앙에 여러 책장이 놓여있는데 '일요일을 좋아하는 여자가 읽는 책'처럼 읽는 대상을 지정해주는 등 색다른 큐레이션 방식이 눈길을 끈다.
서점이 뒷편으로 갤러리가 펼쳐진다. 영상이 나오는 스크린 주변에는 주제와 연관된 잡화들이 판매되고 있다. 마치 팝업스토어에 들어온 느낌, 갤러리를 끝으로 3가지 즐거움을 얻었다면 카모메 북스를 제대로 즐겼다고 말할 수 있다.
마루노우치 리딩 스타일
특별한 생일을 만들다
특별히 의미 있는 생일을 보내고 싶다면? 서점 방문을 추천한다. 종합쇼핑몰 깃테(KITTE)에 위치한 마루노우치 리딩 스타일에는 특별한 서재가 있다. 종이 랩핑지에 쌓여있는 책들은 모두 366권, 표지에는 제목 대신 월(月) 일(日)이 쓰여 있다. 눈치가 빠른 분들이라면 쉽게 알아챘으리라 생각한다. 366은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2월 29일을 포함한 1년, 서재의 이름은 '생일 문고'다.
생일문고 코너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가 붙어있다. "당신의 생일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꺼내보세요. 두근두근. 짜잔, 당신과 같은 날 태어난 작가의 책입니다. 탄생을 같이한 그러니까 당신과 연결되어 있는 특별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책은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연결되는 은밀한 통로입니다. 책이 보내는 접선의 신호를 받을 준비되셨다면, 첫 장을 펼쳐주세요."
책을 사랑하는 방법은 독자와의 작은 연결고리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귀여운 컨셉의 책장이었다. 나와 생일이 똑같은 작가는 어떤 책을 썼을까?
무지북스(MUI MOOKS)
책이 있는 일상
무인양품(無印良品)의 제품에는 로고가 없다. 공(空)의 철학, 즉 최소한의 디자인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유라쿠초에 있는 무인양품 본점에는 의식주 전반에 걸친 7,000여 개의 제품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제품들 사이에 무인양품의 서점. 무지북스(MUJI BOOKS)가 존재한다. 무지북스의 책장은 크고, 독특하다. 책장은 곡선을 그리거나, 에스컬레이터의 옆을 따라 올라가면서 매장 곳곳을 뱀처럼 휘감는다. 책장 안에는 책이 올라타 있어 쇼핑을 하는 손님들은 상품을 보다가도 관련된 책을 읽을 수 있다.
무지북스가 책을 바라보는 방법은 독특하다. 간접경험이나 지식을 전달하는 매체로 책을 보는 것이 아닌 '책이 있는 일상(くらし)'이라는 시선으로 1만 권의 책을 큐레이션 했다. 무지북스의 책들은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된 책들을 주로 판매하는데, 무인양품의 제품들과 한 자리에 배치되어 책과 일상용품의 경계를 지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