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첫눈'에 많은 것을 판단하고 결정한다. 첫인상이 모든 걸 결정한 다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디 사람뿐이겠는가. 우리가 대하는 모든 사물의 첫인상은 좋고 나쁨, 호기심과 무관심, 감동과 실망, 기대와 포기 등의 수많은 감정을 부추긴다. 책도 예외가 아니다. 책의 표지 디자인은 그 책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언어다. 책의 표지는 첫인상, 사람으로 치자면 얼굴 표정인 셈이다.
문화저널 30년의 역사를 표지로 돌아보는 일은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문화저널은 오랜 세월, 몇 차례 통합호를 제외하고는 다달이 서로 다른 얼굴의 표지로 독자들과 만났다. 문화저널 식구들의 고민과 결정이 만들어낸 '그 때'의 표정이 거기 있었다.
문화저널의 서른 번째 생일. 이제 막 편집디자인으로 합류한 새내기가 선배들이 내놓았던 표지를 들여다보려고 한다. 가슴 설레는 일이다.
따뜻한 색, 주황으로 시작을 칠하다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우면서도 또한 가장 어려운 것이 '처음'이다. 형식은 자유롭지만,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변화를 줄 수 있지만, 처음에 틀을 잘 잡아놓아야 작은 변화라도 담아낼 수 있다.
문화저널은 1987년 11월호로 창간호를 낸 이후, 표지의 레이아웃은 1991년까지 4년 동안 비슷하게 유지되었다. 당시의 제본방식은 지금과 달라서 가운데를 철심으로 박는 중철제본이었다. 지금보다 두께도 얇고 종이의 질도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창간호 표지는 이미지가 강하다. 아마도 직선의 분할을 활용한 디자인과 잘 어우러지는 색채 덕분인 것 같다. 당시 디자이너는 문화저널이 시작된 11월과 잘 어울리는 색으로 주황색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이 색깔은 길을 걷다보면 집 담벼락 너머로 비죽이 가지를 뻗어 내린 감나무에 열린, 따뜻한 볕을 잘 받아두었다가 그 열기로 잘 익은 감이 지닌 색이다. 이맘때 쯤 첫눈을 기다리며 꺼내놓는 난롯불 같기도 하다. 창간호의 주황색은 문화저널이 시작할 때 지녔을 문화와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을까.
흑백의 시대, 컬러의 시대
시간이 더 지나 1992년부터는 표지의 레이아웃이 좀 더 간결해지면서 사진을 전면으로 활용하고 흑백으로 포인트를 주거나 또 하나의 사진을 두는 식으로 바뀌었다. 차례가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표지에는 핵심 내용 몇 가지를 추려 표지 차례를 넣는 방식이 시작되었다. 간간히 전면을 컬러로 인쇄하거나 인물사진을 전면으로 배치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보였지만 대체적으로 큰 틀은 변화 없이 이어져왔다. 쉽사리 변화에 휩쓸리지 않는 것, 그것이 곧 문화저널의 매력이기도 했을 듯하다.
문화저널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의 표지는 인물 사진이 주를 이룬다. 문화저널이 사람에 집중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문화저널 표지의 흐름을 쭉 읽어내다 보면 어떤 시기 즈음에는 표지를 채우고 있는 것이 사람이거나, 작품이거나, 장소이거나 일정한 주제로 나뉜다. 사람이 많이 등장하는 시기에는 '공간과 사람'이나 '여성과 문화' 같이 사람을 중심으로 다룬 코너에 힘을 쏟고 있던 시기다. 그 코너의 주인공들을 표지에 옮겨오는 형식은 책에 대한 흥미를 더해주는 효과가 있다. 일별하자면, 그 시기의 표지는 1980년대 발간되었던 잡지 <샘이깊은물>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문화저널의 표지가 <샘이깊은물>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람에 집중하고, 사람의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이고자 하는 목표가 비슷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예술인들의 동행, 고민을 나누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의 표지는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이시기의 변화는 문화저널이 새로운 고민과 직면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전의 표지와는 다르게 작가들의 작품이 표지의 주인공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들이 지역 잡지인 문화저널을 위해 기꺼이 저작권 사용을 허락해 준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한다.
사실 지역에서 잡지를 발간한다는 일은 어렵다. 더구나 그 잡지가 상업지도 아니라면 감당해야할 경제적 부담은 더 커진다. 때문에 지역에서 발간되는 잡지의 성장은 그 지역 사람들의 애정과 참여가 동반되지 않는 한 존재하기 어렵게 된다. 지역의 작가들이 참여한 이 시기의 표지는 지역에서 발간되는 잡지가 존재할 수 있는 동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중한 협업의 선례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즈음 한차례 더 큰 폭의 변화가 있다. 이때의 변화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화저널 표지의 기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표지의 반 정도를 사진으로 채우고, 오른쪽 윗부분에 제호를 두는 형식. 시간이 지나면서 사진 윗부분에 표지차례가 간략하게 추가되거나, 제호의 크기가 조금씩 작아지면서 오늘의 문화저널 표지의 모습이 되었다.
광고, 외면한다고?
표지의 큰 틀이 변화의 물결을 타고 조금씩 흘러오는 동안 표지와 관련된 설명이나 형식도 바뀌었다. 창간호 때 만들어진 문화저널 제호가 그 중 하나다. 창간호때 만들어졌을 제호는 2001년이 되면서 변화를 시작한다. 2007년부터 지금의 제호 형태를 갖추기 까지 두세 차례의 변화가 이어졌다.
또 다른 변화는 뒤표지에서 찾을 수 있다. 창간호 때부터 뒤표지는 광고자리였다. 초반에는 다양한 광고를 싣다가,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특정 광고가 고정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초기의 광고들은 그 시대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어서 또 하나의 재미를 전한다. 잡지의 광고는 독자들에게도 재미있는 볼거리가 되지만, 안타깝게도 문화저널에는 광고, 특히 상업적인 광고는 거의 없다. 열악한 지역 경제 환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계가 아닐까 싶다. 2016년부터 광고가 표지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뒤표지에는 지난호의 앞표지 사진과 슬로건을 담아낸다. 단순하면서도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들이는 작은 활자의 정렬이 돋보이는 디자인이다.
작지만 소중한 읽을거리, 표지이야기
문화저널의 표지는 겉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안쪽으로 들어가 문화저널의 목록이 시작되기 전에는 '표지이야기'가 짧게 소개되어 있다. 초기에는 표지 사진 밑 부분에 짧게 한 줄 들어가는 형식이었지만 지금은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듯 한 스토리가 재미있다. 궁금할지도 모를 독자들을 생각해 표지에 담겨있는 의미를 담는 작은 공간은 놓치면 아쉬울 문화저널의 또 하나 작은 이야기다.
표지의 변화, 30년 역사가 되다
문화저널은 계속 변화했다. 표지와 함께 제본형식이 바뀌었고, 내지의 구성과 담는 이야기도 조금씩 달라졌다. 흑백이 칼라가 되고, 가로가 세로가 되었다가 다시 가로가 되기도 하고, 한 쪽 면을 접어도 보았다가 펴기도 하고, 종이의 두께도 얇거나 두껍거나 변화를 주면서 문화저널 표지는 오랜 시간 매월 '그 때'를 담아 독자들 앞에 내놓았다.
30년 역사를 표지로 읽는 일은 내게 설레는 일이었다.
얇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았던 초창기 문화저널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350여권의 문화저널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앞으로의 문화저널 표지도 독자들에게 설레임을 주는 말 걸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