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와 사이를 이어주는 <사이다>
"사이다가 무슨 뜻이에요?"
"마시는 사이다? 콜라는 아니고요?"
골목잡지 <사이다>를 소개할 때면 종종 듣는 질문이다. 골목잡지 <사이다>라는 제호는 우리 삶에 내재된 많은 '사이'들을 의미한다. 자연과 자연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골목과 골목 사이 등 '사이'라는 이름 위에 놓인 무수한 관계의 의미를 찾고자 2012년 창간된 지역문화잡지이다.
이웃의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는 우리는 골목잡지 사이다
속도의 욕망과 자본의 욕망이 넘쳐흐르는 큰 길의 주류에서 벗어나, 골목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있다. 구불구불한 길을 숨차게 달리고, 술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숨죽이던 골목. 좁다란 골목 사이, 맞은편 집 대문의 색깔서부터 밥상 위 수저가 몇 개 놓이는지까지 훤히 꿰고 있던 그 골목. 한겨울, 이웃집과 어깨를 나란히 한 처마 끝에서 반짝거리는 고드름 칼자루를 손에 쥐던 골목. 지나치는 사람마다 아는 이의 얼굴이요, 누군가의 뒷모습이던 골목골목. 그런 골목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골목잡지 <사이다>는 무심히 지나쳤던 수많은 골목길을 다시금 걷고 있다. 그러한 골목골목을 탐방하며 '골목잡지'라는 기치를 내걸고 주민들의 삶과 역사를 기록하고, 우리가 외면하고 떠나온 촌스러움에 담긴 정직한 땀과 눈물, 낡고 오래된 것들의 미학, 생명의 존엄함, 더불어 사는 가치 등을 담아가고 있다.
골목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소소한 사람들의 생활기록사
골목잡지 <사이다>는 동네 사람들이 오랜 시간 살아오며 만들어내는 이웃의 일상과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등 민중의 생활사를 느리지만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이다>의 꼭지들은 동네 곳곳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동네스케치', 소소한 삶을 이야기하고 소박한 음식을 나누어먹는 골목 안 사람들의 이야기 '동네 커뮤니티', 오랜 세월 걸어온 자신의 삶을 차곡차곡 담아 들려주는 '이 사람의 연보', 박물관 학예사가 들려주는 동네의 숨은 근대역사 탐방 이야기 '근대역사골목여행' 등이 중심이 되어 지면을 채운다.
매호 동네 한 곳을 선정하면 무작정 골목 곳곳을 누비며 사람 사이로 들어간다. 박하게 인터뷰를 거절하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은 이내 경계심을 풀고, 어제 오늘 있었던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숨겨둔 속내를 읊조리거나 인생의 고단함을 토로한다.
42년째 팔달로 동네 공중목욕탕에서 이발 일을 해온 경수목욕탕 임영석(70) 씨, 40년의 세월을 이어온 모던의상실 황경순(67) 원장, 100년된 금보여인숙을 지키는 김연순(90) 할머니, 40년 넘게 동네 아이를 받아온 조산원 김숙현(94) 할머니 등 마을을 지켜온 평범한 이웃과 이들이 사는 골목의 역사가 잡지의 주인공이 된다.
"이젠 다른 데 가서는 못 살지.
얼마나 다들 살뜰하게 챙기고 위하는데.
영감보다 더 좋다니까. 호호호."
취재를 나선 어느 날에는 노란주전자에 팔팔 끓인 물을 부어 달달한 커피를 내어주시기도 하고, 어느 날은 묵은지 조림과 깻잎, 간장에 삭힌 고추 반찬이 놓인 밥상으로 손을 잡아끌기도 하신다. 벚꽃이 흐드러진 서호 뚝방길을 동네 어르신 따라 걸어보기도 하고, 전문가 못지않은 사진 실력의 동네 할아버지와 함께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도 한다. 40년 전통의 분식집 취재 날에는 양손 가득 회사 직원 수만큼 만두를 넉넉히 포장해 손에 들려주시는 사장님이 있는가 하면, 사이다 행사 때마다 통닭 사장님의 통 큰 치킨 후원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풍족히 채워주신다. 발간된 사이다 책자를 들고 어르신을 찾아뵈면 동네 슈퍼에 들러 고맙다며 드링크를 손에 꼭 쥐어주기도 하신다.
잡지 속 활자 하나하나, 사진 한 장 한 장이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완성되어간다. <사이다>는 개인의 이야기나 마을의 역사를 담는 기록의 차원을 넘어, 우리가 빠른 속도로 내닫다 지나쳐 버린 것, 허황된 신기루를 쫓다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씩 길어내어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것에는 따스한 시선이 어려 있고,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태도가 담겨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그물코가 되어
골목잡지 <사이다>는 사회적기업 (주)더페이퍼가 회사 수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으로 발행비를 마련하고 있으며, 주변의 자발적인 참여와 후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지역의 전문가들, 예술가, 시민사회 그리고 주민들의 참여로 생산과 공유가 동시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마을의 이야기와 일상의 삶을 직접 만들고 이용하고 있으며, 참여자들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다양한 지역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잡지에 수록되는 모든 글과 사진, 그림은 무료로 싣고 있으며, 상업적 판매가 아닌 무가지로 발행되어 수원 전 지역에 배포된다.
"많은 분들이 종이 잡지는 한계가 왔다라고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이 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볼 수 없고 없어지는 이유가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너무나 공을 들인 우리의 이야기를 이곳에 사는 많은 분들이 최대한 많이 보기를 바라니까요."골목잡지를 통해 서로 교류하고 대화하는 공론의 장, 기록의 장을 열어주고자 하는 것이 사이다의 지향점이다. 촌스럽지만 정이 스며있고, 마음에 온기가 감도는 골목. 사람 냄새나는 수원의 모든 골목에 발자국을 찍으며 꼭꼭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고자 한다. 그 이야기를 통해 무수한 '사이'와 '사이'를 맺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