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출판을 한다는 것
펄북스는 삼십여 년 동안 진주의 토박이 책방으로 자리를 지켜온 진주문고를 기반으로 2015년에 설립된 지역 출판사입니다. 많은 경우 출판사에서 북카페의 형식으로 카페와 함께 자사의 책을 판매하는 작은 서점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요, 서점을 기반으로 시작한 출판사는 생소하실 것 같습니다. (참고 사진01) '지역의 서점을 기반으로 한 출판사'라는 특성상 펄북스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출간하고 있는 책은 책, 도서관, 서점, 출판, 지역에 관계된 책들입니다. '동네도서관 운동'으로 일본 전역에 희망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이소이 요시미쓰의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어떻게 서점의 매장을 일구고, 지역의 동네 서점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일구어나가는지를 현직 서점원이 진솔하게 쓴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 조금 생소한 주제인 출판 유통을 이슈로 일본의 지방 도시 후쿠오카에서 출판인, 도매상, 서점인 들이 한자리에 모여 가진 11시간 끝장토론의 기록 ≪책과 책방의 미래≫ 등이 그 관심의 결과물들입니다. 앞으로도 책과 서점, 도서관, 출판 등과 관련한 가치 있는 고민과 의견 제시가 담긴 주제라면 언제든 관심을 가지고 다룰 예정입니다.
'지역' 출판사라는 정체성은 '진주의 빛' 시리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지역의 어린이도서관 어머니모임 회원들이 진주의 이야기인 '유등'을 주제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지어 펴낸 ≪유등, 남강에 흐르는 빛≫을 시작으로 한국 차 문화 운동의 발상지인 진주에서 차 문화 운동의 역사를 재조명해보는 기회를 마련한 책 ≪맑은 차 한 잔≫, ≪바람 부는 차실≫까지 세 권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출판사가 3년이 채 안 되었다 보니 아직 권수가 미미합니다만, 이 '진주의 빛' 시리즈로 진주를 소개하는데 흥미로운 소재들을 계속 찾아 차곡차곡 채워갈 예정입니다.
그런데 지역에서의 출판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어려움도 있습니다. 우선 모든 출판 시스템이 수도권 중심이다 보니 아무래도 완벽히 독립적이긴 어렵습니다. 물류(유통)나 제작처는 서울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고, 인력을 구할 때도 훨씬 힘이 듭니다. 펄북스는 대표 1인과 편집자 1인으로 구성된 일인 출판사인데, 한정된 규모와 인력으로 일하다 보니 책의 발견성을 높이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빨리 안정된 수익 구조를 갖추어 인원을 충원하고 체계도 잡아나가자고 다짐은 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서점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여러 출판사 분들을 만날 기회가 많습니다. 그중에는 지역의 출판사 분들도 많으셨는데, 만나 뵌 분들을 생각하니 지역 잡지를 하는 분들에 비해 단행본을 다루는 분들은 상대적으로 일인 출판사의 형태가 더 많았습니다. 그들과 만나면 한목소리로 말합니다. "혼자 뭘 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에요. 지치지만 않으면 좋겠어요."
동감합니다. 지치지 않고 나아갔으면 합니다. 최근 진주의 남강 일대에서 제7회 진주 북 페스티벌이 열렸었는데요, 펄북스도 직접 독자를 찾아가 만났습니다. ≪책과 책방의 미래≫와 ≪게으름뱅이 학자, 정신분석을 말하다≫를 번역해주신 역자께서도 직접 출동해 작은 콘서트도 하고 사인회도 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요. 진주에 지역 출판사가 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는 독자님들도 만났고, "여기가 진주에서 하는 출판사지요?" 먼저 인사해주시는 분들도 만났습니다. (참고 사진04~사진09 파일)문득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동네서점》의 한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책이 우리가 팔고 싶은 책일까. 다른 서점에서는 잘 팔리지 않는 책인데 우리는 잘 팔 때가 있다. 말로는 쉽게 표현할 수 없다. 사와야 서점 페잔점이라는 곳에서 서점 직원과 손님이 서점 매장이라는 토양을 일구어 이 책 한 권을 심었을 때 어떤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까. 그 꽃과 열매를 상상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우리가 '팔고 싶은 책'이다."
서점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펄북스의 앞으로의 희망과 계획은 우리 지역에서, 우리가 만들었기에 잘 팔릴 책을 찾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지역 출판사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전북 문화저널 30주년을 축하하며, 이번 기회에 펄북스도 앞으로의 각오를 함께 다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