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6 | [문화저널]
저널이 본다
전통문화도시의 경마장
윤덕향(2003-09-23 15:32:04)
금년 단오절에는 전주시에 난장이 터진다고 한다. 이런저런 말도 많고 시비도 많았던 난장이 몇 년 만에 다시 전주시민의 날 행사기간 중에 터진다니 우선 기대해봄직도 하다.
아마도 금년에 터지는 난장은 지난날의 난장이 가졌던 부정적인 요소들을 상당부분 없앤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런 한편으로 일말의 불안감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것은 난장이 터졌을 경우 난장 본래적인 속성이 요즘의 가치기준으로 볼 때 도무지 비위에 맞지 않는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네 생활에서는 나무를 심어도 열과 줄을 맞추어 반듯하게 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 행사를 치루더라도 능률과 효율성을 중시하게 되었다. 우리 문화를 찾는 작업의 하나로 이루어지는 민속잔치의 경유를 보더라도 술에 취한 신명이 아니라 무대 위에 올려진 공연이니 연극적인 기교가 있을 뿐이며 괜히 신명을 부렸다가는 미친 사람 취급이나 당할 판이다. 이런 판이니 난장이 터져도 그 무질서한 것 같은 난장을 점잖은 분들이 고운 눈으로 볼 리가 없고 규격화, 현대화, 서구화된 난장으로 개조하고자 무진 애를 쓸 것이니 짐작되니 말이다.
본디 문화란 것이 처음부터 어떤 일정한 틀과 규칙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세월 속에서 부단히 변하면서 그 집단 성원들이 공감하는 방향으로 형성되는 것이고 보면 일견 무질서하기 이를 데 없는 난장판 문화에도 세월을 통하여 형성된 나름의 규칙과 틀이 있을 법하다. 다만 그 틀과 규칙을 무시하고 본디의 뜻과는 달리 이해타산에 따른 이런저런 간섭이 난장의 본디적 의미를 훼손하는 것이 저간의 실정이었다. 그러나 그 같은 의혹조차도 어떤 점에서는 차츰 세월 속에서 이리저리 제자리를 찾아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사회통념상 지나친 일탈이 아니라면 크게 간섭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의 바탕에는 우리 지역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능력이 매우 높다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려하는 것은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우리네의 문화에 대한 정치적, 행정적인 지도와 계몽이라는 것이 오히려 지역사회의 문화적 역량을 저해하는 역기능을 수행하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과는 거리가 먼 지역의 얘기이기는 하지만 경주에 경마장을 만들겠다는 발상을 하는 것이 이 정부이고 보면 문화를 계승발전하기 위하여 마련한다는 이번의 난장을 마냥 고운 눈으로 볼 수만은 없는 것이다. 몇 차례 말한 바 있지만 문민정부에 문화정책이 있는지 의문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단지 5공이나 6공 시절과 같은 문화정책을 펴지 않는 것으로 문화정책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아니면 5.16쿠데타이후 정권 찬탈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목청껏 외쳐댄 것처럼 신 경제를 이루기 위하여 경제외적인 모든 것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발상이고 신 경제의 확립으로 문화도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경주에 경마장을 만들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할 수가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하기야 간편한 정부를 추구하면서 문화부와 체육부를 합쳐 문화체육부를 만들고 지방자치단체에 있는 문화예술과를 문화체육과로 바꾸는 판이니 문화재의 도시인 경주에 체육시설인 경마장이 들어서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왕 하는 김에 그 좋아하는 '세계에서 제일 큰 골프장'도 만들어 일본을 비롯한 외국 관광객을 유치한다면 더욱 좋을 법하건만 왜 아직도 그 생각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예 관광객을 끌어들일 양이면 경주에 라스베가스나 모나코보다 더 큰 도박장을 개설하는 것도 좋을 법하다.
경주가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세계 10대역사도시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만 하는 말이 아니다. 관광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과소평가 하는 것도 아니다. 또 특정 지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려는 것을 시샘하려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우선 경마를 통하여 도대체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외국으로부터 끌어들일 수가 있을 것인지 생각할 일이다. 그리고 경마장이 들어섬으로서 역사도시로서 경주가 지닌 의미나 가치가 얼마나 손상될 것이고 그로 인하여 경주를 찾는 외국인들의 감소될 가능성은 없는지를 따져볼 일이다. 혹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을 깔보는 외국인들의 눈초리는 없을지 살펴볼 일이다. 하필이면 왜 경주인가? 우리 문화를 보여주는 고급 관광지로서의 경주에 흥행위주의 경마장이 들어서야만 될 필연성이 있는가를 꼼꼼히 생각해 볼일이다. 경마장이 들어서야 될 만큼 관광자원이 부족한 탓인가? 아니다. 있는 자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판에 볼거리가 없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경주를 찾는 관광객이 혹 감소된다면 그 이유는 볼거리 부족이 아니라 볼거리의 외적인 곳에 있을 것이다.
쥬라기 공원인가 하는 외국영화가 자동차 몇 만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 가치를 창출하였다 하여 우리나라의 영화를 적극 육성하여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좋은 말이고 전적으로 동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좋은 영화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기계에서 제품을 만들 듯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 영화가 국제영화제에서 거두는 성과를 보면 어쩌면 한두 편의 수지맞는 영화를 만들 수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참으로 쥬라기 공원이나 쉰들러리스트 같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의 뿌리가 튼튼하여야 한다. 그 일은 경주 같은 역사도시에 경마장을 끌어들인다는 식의 발상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진정 세계 속에 의미 있는 작품은 국제화, 선진화라는 이름아래 행해지는 몰국적화, 서구화에 대항 어설픈 모방에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적인 것에 뿌리내려 자라는 것이다.
경주에 경마장이 들어서는 판에 전통문화에 기초를 둔 우리 문화를 올곧게 정립한다는 말은 그저 부끄러운 말장난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판이니 난장을 이리저리 난장판을 만드는 것쯤이야 애시당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 법하다. 어찌되는 난장은 난장일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