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oo.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일곱여덟이지 않았을까. 엄마는 내게 나보다 네 살 어린 남동생을 돌보라며, 밭일을 나갔던 듯하다. 한여름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시간의 전후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실제는 뇌리에 정확히 남아 있다. 그의 이름은 박종희. 당시 그가 고등학생이었는지, 그보다 위인 젊은 청년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어떻게 우리 집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가 나를 방바닥에 눕히고, 내 위에서 나의 사지를 결박한 채 움직이지 못하게 한, 그 장면은 너무 생생하다. 무거운 몸뚱어리가 나를 짓누르며 가해오는 공포에 나는 소리를 지르며 울었고, 옆에서 남동생도 덩달아 아주 크게 울었다. 딱 거기까지가 기억 장치에 저장되어 있다. 나는 내가 당한 게 무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친구에게 얻어맞거나, 길에서 넘어지거나, 배가 아프거나 할 때 말하는 따위의 것이 아닌지는 알 것 같았다. 왠지 엄마에게는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이후 그를 동네에서 몇 번 마주친 것도 같다. 그러나 그 때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별로 마주친 것 같지도 않다. 대부분의 청년이 일거리를 찾아 농촌을 떠났듯이, 그 역시 동네에서 보이지 않았으니까. 오랫동안 나는 이 일을 잊고 살았다. 아니 어쩌면 잊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작년 여름, 나는 시골 친구들 몇몇과 강릉으로 여행을 갔고, 우리는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그 때 강간을 당하고 미쳐버린 동네 언니 이야기가 나왔고, 내가 #MeToo를 했다. 그랬더니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들려주는 것이 아닌가. 그 가운데에는 중학교 때 고등학교 사촌오빠로부터 강간을 당할 뻔한 친구도 있었다.
미투 운동이 거세다. 서 검사의 폭로 이후, 기업계, 문학계, 연극계 등 관행화된 성폭력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특히 폭로의 실체가 샐리브리티일수록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의 파장은 크다. 그들이 쌓아올린 거장으로서의 권위와 도덕은 여성 억압을 공고히 하고, 가부장적 성폭력을 일상화하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미투 운동은 가부장제에 균열을 내고 파열을 일으켜 가부장제를 해체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를 뜻하는 가부장제는 그 역사가 매우 길고, 그래서 뿌리가 견고하다.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매커니즘 가운데 하나는 섹슈얼리티(Sexuality)의 통제이다. 일부일처제가 가장 대표적이다. 마르크스에게 많은 영감을 준 엥겔스는 가부장제의 기원을 자본주의에서 찾는다. 가축 사육을 통해 잉여를 축적한 남성 그룹들이 재산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여성의 정절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일처제 가족을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지나치게 계급 문제에만 천착했다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자본주의가 정착되면서 남성을 공적인 경제적 영역에, 여성을 사적인 가정의 영역에 배치하여 여성을 종속화한 것은 틀림 없는 얘기다. 다시 말해 경제적인 영역으로 분류되는 사회 곳곳의 공적 세계를 남성들이 장악하면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견고하게 유지되어 왔고, 섹슈얼리티 지배도 정당화되었다.
결혼 시장에서 남성의 경제력과 여성의 외모가 가장 우선 순위로 거래되는 까닭은 남성의 경제력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자신이 지닌 혹은 애써 키워 온 능력으로는, 남성들이 튼튼하게 쳐 놓은 경제적 장막 안에 진입할 수 없기에, 성형이라도 하여 외모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해야 취직이나 결혼 시장 진입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섹슈얼리티 지배가 이루어지는 현장은 숱하게 많다. 가장 대표적인 참사 현장이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며칠 전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의 안내를 받으며, 전주시 서노송동 선미촌 답사를 다녀왔다. 선미촌 기능전환을 위해 민관협의회가 조직되었고, 몇 년에 걸쳐 이 일대에 다양한 프로젝트가 추진 중에 있다. 전주시는 업소 여러 곳을 매입하여 공공 시설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서노송동 예술촌 프로젝트를 유치하여, 이 거리를 새롭게 가꿀 계획이다. 나는 전주시가 매입한 업소에 들어가 성매매가 이루어진 방들을 구경했다. 30cm 굽의 신발이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높은 신발은 남성들을 유혹하기 위해 섹시하게 보이려는 필수 아이템이라 했다. 업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밖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많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래서 방은 무척 비좁았다. 심지어 창문이 없는 방들도 많았다. 장롱 속에 출구를 만들어 경찰 단속을 피하는 꼼수도 썼다. 로비에는 15분 시간을 재는 초시계가 잔뜩 놓여 있었다. 15분의 로맨스란 있을 수 없는 허구였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주어진 시간 안에 '뽕'을 뽑으려고 여성에게 갖은 학대를 한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모든 게 상품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도 일종의 판매 대상이므로, 성노동을 합법화하여, 제대로 된 임금과 노동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성노동이 합법화된다 하더라도 남성의 의한 성지배는 강화되면 강화되었지, 축소되거나 소멸되지는 않을 것이다.
혹자는 단순한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극단적인 성매매나 성폭행과 비교할 수 없다고 얘기할 것이다. 지나치게 우리 사회가 성 담론에 민감해지면 대화의 유연성이나 소통의 원활함은 떨어진다고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이 있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성폭력의 깊고, 얕음을, 성지배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측정할 수 있을까. 법적으로는 벌금과 형량을 산출하기 위해 성폭력의 정도를 정해놓기는 하였으나, 성폭력은 권력을 가진 자가 그렇지 않은 자에게 가하는(주로 젠더), 깊이와 무거움의 정도를 잴 수 없는 형벌이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명언은 바로 이 때 써야 할 말이다. 특히 성폭력의 개념을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 따위의 문구도 사라져야 한다. 왜 피해자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가?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가해자인데 말이다.
지금의 미투 운동이 뜬금없이 발생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웹툰 며느라기가 인기를 얻고, 메갈리아가 사회적 파장을 불러오고, EBS까칠남녀가 방영되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임신중단권 찬성이 20만 명을 넘은 일련의 과정 속에 미투가 자리해 있다. 강남역 살인 사건으로 폭발된 페미니즘의 물꼬는 여성학이라는 먹물 든 학계 집단이 아니라, 20~30대 평범한 젊은 여성에 의해 시작되었다. 미투 운동을 둘러싼 지금의 페미니즘이 일종의 정치적 역동이자, 혁명일 수 있는 원동력도 여기에 있다. 친구를 기다리는 가장 안정적인 장소, 강남역.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 어디서든 남성에게 폭력을 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공포는 그녀들을 자리에 가만 놔두지 않게 했다. 곳곳을 돌아보니 온통 성지배의 현장들이다. 미투 운동은 폭력적 가부장제의 세계를 폭로하고, 이를 전복시키려는 정치적 저항이다. 그리고 눈을 크게 치켜뜨고 발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형으로 되돌리려는 정치적 몸부림이다. 미투 선언이 얼마 후에 식는다 하더라도, 미투의 불씨는 분명 페미니즘의 또 다른 운동 지형을 형성하며 거세게 타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