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고위간부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서모 검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미래의 가해자들이 없어지기를 바란다“고 하며 "MeToo 운동은 '공격적 폭로'가 아니라, '공감과 연대'의 운동이다"라고 말했다. 조직 내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소위 갑들의 성폭력, 그럼에도 가해자를 처벌하고 징계하기는커녕 피해자를 음해하고 괴롭히면서 피해자에게 치욕과 공포를 안겨주어 스스로 입을 닫게 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고도 했다.
그는 또 미투 운동이 확산하며 일어나고 있는 2차 가해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누구 한 사람을 공격하고 폭로하거나 개인적인 한풀이를 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바로 서야 할 조직을, 함께 바꿔나가야 할 세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면서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순간 가해자가, 조직이, 사회가 부인과 비난, 은폐와 보복을 시작해서 예상했고, 각오했던 일이지만 힘겹고 두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수많은 공감의 목소리 속에서, 조직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에 뜻을 함께하는 연대의 응원 속에서, 다음 세대가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은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대한민국 전체가 미투 운동의 거대한 흐름에 휩싸이게 만든 진원지가 되었을 뿐 아니라 매우 고통스럽고 어려운 그의 선택은 유사한 피해를 당한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었고, 시대는 그들의 발언에 귀 기울여 주었다. 그 뒤로 끝없이 이어진 이 도도한 물결은 연극을 필두로 문화예술계와 학교, 방송계를 거쳐 급기야는 대선후보를 지낸 유망한 정치인으로까지 이어졌다. 서로 다른 영역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고 보여 진다. 한 결 같이 철저한 위계와 수직관계의 경직성이 작용하는 단체들인 것이다. 물론 일대일의 전수 형태를 띠는 경우도 있지만 집단의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이에 의해서 일사분란 함을 강요받거나 그의 주관적 판단과 사고에 기초해 일이 이루어지고 결정이 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다중과의 접촉으로 인해 그 존재감을 부여받는 단체이나 현실은 원론과는 상관없이 가장 폐쇄적인 구조를 가진 집단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집단의 강자는 적당한 사회적 명망과 인지도를 확보하면 더 많은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게 되고, 구성원들의 희생을 당연한 것이라고 치부해버리는 것과 함께 자신이 그 자리까지 오르게 될 때까지 겪었던 수모와 고통을 후배들에게도 강요하고 적용한다는 더 큰 모순과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전북에서도 미투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런 흐름의 첫머리에 연극 관련자가 연이어 가해자로 지목되어 전북연극은 커다란 충격에 빠져들었다. 그것도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극단들의 대표자들인지라 그 그림자는 깊고 넓었다. 세 개의 극단이 해체되고 가해자들은 모두 연극계에서 영구제명을 당했고 소속단원들은 황망함과 함께 자책과 분노 사이에서 서성거렸다.
전북연극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박동화'라는 큰 그늘아래, 선생의 사후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도 시립극단의 태동, 전국연극제 대통령상을 5회나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는 등 화려한 전성기를 거쳤고 이는 한강 이하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이어져 오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 음과 양이 있듯이 최고의 자리를 지키려는 심리적 부담감이 후배들의 입장에서는 때론 곤혹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을 것이다. 전국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임에도 성과를 냈던 선배들은 후배들의 부진이 탐탁지 않아 보였을 것이고, 그 중 비교 우위에 서있던 일부 강자들은 자신의 입신양명과 성과에 천착해가는 가운데 후배들의 인격마저 무시하고 도구화한 측면이 분명 있었다. 지금은 연극인 모두가 이 문제 말고도 연습이나 공연과정, 극단 생활 전반에 걸쳐 자기모순이나 흠결은 없는지 처절하게 자성하고 있는 중이다.
전북연극이 가장 자유롭고 구김 없이 바르게 쏟아내야 하는 연극인의 순수성, 초심을 회복하고 있는 와중에 창작극회가 조심스럽게 꺼내든 '아빠들의 소꿉놀이'가 시대의 아픔을 웃음과 잘 버무려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일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는 올바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면 이 일로 인해 외면 받을까 하는 염려와 암울한 지금의 상황과 상관없이 관심과 격려를 지속적으로 보내신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어진 전북연극제도 연일 만석을 기록하며 치러졌고 창작극회의 '늙은 부부 이야기'마저 첫날부터 빈자리가 없는 가운데 출발했다.
어쩌면 가장 용기 있고 순수하여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가운데 행해진 피해자들의 일갈이, 전북연극계의 모순과 억압을 털어내는 계기가 되고, 소통과 우애를 바탕으로 다시 지역의 자랑이 되는 전북연극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아픈 상처 위에 다시 꽃이 피는 날을 위해 다시 공연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