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6 | [문화저널]
옛말사랑
뜨거운 국 맛 모른다
김두경 서예가(2003-09-23 15:50:20)
모든 것이 빨라지다 보니 사람의 몸과 마음도 빨라지고 정해진 시간마저도 빨라지는 착각에 가끔씩 섬짓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신체적 기능이나 정신적 기능이 왕성하여 핑핑 잘 돌아가는 젊은이나 능력 있는 분들은 핑핑 돌아가며 신바람 나게 살기도 하지만 신바람을 내지고 타지도 못하는 노인이다 능력 없는 사람은 주눅 들어 살기 쉬운 세상입니다. 특히나 저같이 숨쉬는 것조차도 남들의 십분의 일 속도로 줄이고 사는 사람은 세상을 바라보며 쓸쓸한 마음이 되는 날이 많습니다. 하지만 쓸쓸함과 외로움에 이력이 났는지 아니면 궁하면 통하는 것인지 요즈음에는 제법 세상을 거꾸로 사는 재주를 익혀 무턱대고 핑핑 돌아가는 세상을 웃음으로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달라지고 발달한다는데 왠지 그 것들이 다 좋아 보이지 않음도 이런 까닭이겠지요. 핑핑 잘 돌아가시는 분이 보시면 웃으실 수도 있는 말씀이지만 거꾸로 보는 세상이야기 한마디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너무나 깊게 일상에 자리해 삶의 일부가 아니라 신체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전화를 비롯한 통신기기를 보면 실로 많은 생각이 듭니다. 전화 및 각종 통신기계의 발달로 인간의 삶에 많은 풍요와 여유를 가져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안간의 삶에 얼마나 어둡게 따라다니는지를 생각해 보신 분은 많지 않으실 것입니다. 구구한 이야기 다 접어두고 통신수단으로서의 전화 하나만 생각하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이 가져다준 시간적 물질적 이익이 엄청나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이 드리우는 그늘을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시해 버립니다. 요즈음엔 호출기와 이동전화기 까지 있어 더더욱 꼼짝 할 수 없이 자질구레한 일에 구속당하지 않을 수 없게 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달파진 것도 다 아시는 일이지만 그 효율과 우쭐함에 나머지는 사정없이 무시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치 마약에 맛을 들이는 사람이 처음 마약이 주는 황홀함에 취하여 아주 중요한 근본이 무너지는 것을 잊어버리고 마약을 자꾸 탐닉해 가는 것과 흡사하다면 지나치다고 나무라실 런지요. 하지만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우리의 삶의 근본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지나치다는 생각이 안 드실 것입니다. 왜 우리는 예수, 석가, 공자 같은 분들을 성현이라 부르며 추앙합니까. 왜 그분들이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합니까? 그분들이 전화도 컴퓨터도 원자폭탄과 그 어떤 문명의 이기도 만들어 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분들을 찬양합니까?
옛 말씀에 뜨거운 국 맛 모른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마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실제로 뜨거운 국 맛 모름을 아실 것입니다. 세상이 너무나 뜨겁게 돌아갑니다. 너무나 빨리 돌아갑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근본을 잊지 않으려는 근본을 떠나지 않으려는 공부가 있어야 빠름도 뜨거움도 모든 문명의 이기도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물질적 정신적 문명도 더욱 의미 있는 빛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뜨거운 국 식혀서 천천히 드십시다. 삶을 음미하며 풍요를 누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