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오래된 공간에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어 생명을 되찾는 재생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어온 도시다. 배를 수리하는 나무 망치질 소리의 '깡깡'에서 유래된 <남항깡깡이길>, 부산 근현대 역사의 흔적이 이야기꽃으로 피어난 <이바구길>,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 만화 고물상으로 시작된 <보수동책방골목>, 한국전쟁이라는 국난의 시기의 부산의 위상과 역사를 기념한 <임시수도기념관>, 지역 예술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모여 시작한 미술마을 <감천문화마을>까지. 이제 부산의 옛 공간들은 생활과 예술로, 역사와 문화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남항깡깡이길
4㎞ 길이의 깡깡이길은 남포동 종합관광안내소에서 시작해 영도대교 건너 영도구 대평동 일대까지 이어진다. 이 길은 대평동에 조선소를 지은 것이 시작이었다. 조선소를 중심으로 영도에서 '깡깡이'라는 말이 생겼다. 깡깡이는 망치로 선박의 찌그러진 부분을 펴고 녹을 벗겨내는 작업을 말한다. 망치질할 때 '깡깡' 소리가 난다 해서 깡깡이다.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아낙들은 깡깡이를 해서 생계를 유지했다. 안전장치 없이 아파트 4~5층 높이 허공에 매달린 널빤지에 앉아 온종일 쇳가루를 들이마시며 망치질을 했던 영도 아낙들의 삶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보수동책방골목
부산 국제시장 입구 대청로사거리 건너편에서 보수동 쪽으로 나 있는 좁은 골목길에 책방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 이곳이 보수동책방골목이다. 국내에 얼마 남아 있지 않은 헌책방 골목으로, 부산의 명물거리로 꼽힌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이북에서 피난 온 손정린 씨 부부가 보수동사거리 입구 골목안 목조건물 처마 밑에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헌책으로 노점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이 골목의 시초가 되었다.
임시수도기념관
1926년 8월에 지어진 기와집. 경남도지사의 관사로 사용되었던 2층 목조건물이다. 6·25전쟁 당시 3년간(1950∼1953) 부산이 임시수도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을 때는 대통령 관저로 이용됐다. 1983년 7월 경남도청이 창원시로 옮겨감에 따라 도지사 관사는 1984년 6월 25일 임시수도 당시의 역사적인 사실과 유물전시를 위하여 임시수도기념관으로 지정되었다. 한국 전쟁 당시 대한민국 정치의 최종 결정과 대외적인 외교업무가 이루어진 장소라는 점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대통령의 집무실과 응접실 등을 당시 분위기 그대로 재현하였다. 임시수도 당시의 이승만 대통령의 유품을 중심으로 소장품 152점이 전시되어 있다.
감천문화마을
감천 문화 마을은 감천동의 마을 미술 프로젝트 사업이 명성을 얻으며 붙여진 이름이다. 감천문화마을은 1950년대 6.25 피난민의 힘겨운 삶의 터전으로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산자락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계단식 집단 주거형태와 모든 길이 통하는 미로 같은 골목길 경관은 감천만의 독특함을 보여준다. 감천문화마을에서는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그림 같은 마을의 풍경을 즐기면서, 골목골목 설치된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감천문화마을 입주작가들의 공방을 통해 다양한 공예 체험도 가능하여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고 있다.
TIP. 비석문화마을
너무 복잡한 감천문화마을이 다소 거부감이 든다면 비석문화마을에 들려보는 것도 좋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구한말까지 몰락한 일부 하층계급의 조선인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부산항 개항 이후 일본인 거류민단이 들어오면서 부산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일본인들의 묘지를 옮겨 집단 묘지촌이 형성됐고, 화장장이 만들어졌다. 피난민과 이주민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일본인 공동묘지 위에 판잣집을 지을 때 묘비를 담장, 주춧돌 등 건축자재로 사용해 그 일대를 비석문화마을로 부르고 있다. 남․북항 일대와 용두산, 자갈치 등 원도심 전체와 검푸른 바다의 조망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산복도로 탐방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