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8.7 | 기획 [여름, 여행이 좋다]
지붕 없는 박물관 - 경주
역사를 만나는 여행 ③
(2018-07-13 14:19:00)



경상북도 동남부에 자리한 경주는 기원전 57년부터 서기 935년까지 56명의 왕이 다스리며 천 년 동안 왕조를 이루어온 신라의 수도이자, 한국 문화의 원형이 되는 신라시대 역사와 문화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특별한 도시다.
경주는 도시 전체가 문화재와 박물관일 만큼 숱한 명소들이 도시 전체에 퍼져 있다.
유네스코는 신라 천 년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경주는 '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을 붙여 인류가 함께 보존해야 할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유적의 성격에 따라 남산지구, 월성지구, 대릉원지구, 황룡사지구, 산성지구 다섯 개 지구로 나뉜다.


남산지구
경주 남산은 금오산이라고도 하며, 신라 천년의 역사를 통해 가장 신성시 되어왔던 곳이다. 수많은 전설과 역사 유적들이 펼쳐져 있는 곳으로, 불교 관련 유적 뿐만 아니라 왕릉, 무덤, 궁궐터들이 남아있어 신라 문화의 집결체라고도 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는 남산에서 나라일을 의논하면 반드시 성공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런 까닭에 남산에 얽힌 전설이 많다.


월성지구
월성지구는 신라의 옛 이름이기도 한 계림(사적 19호)과 월성(사적 16호), 안압지로 더 유명한 임해전지(사적 18호)와 첨성대(국보 31호) 그리고 내물왕릉(사적 188호) 등을 품고 있다.
월성터는 널찍하고 보드라워 자전거나 도보로 걷기 좋다. 봄이면 월성에서 첨성대를 바라볼 때 유채꽃 노란 물결도 즐길 수 있다.


대릉원지구
대릉원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미추왕을 대릉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에서 따온 것이다. 신라시대의 왕, 왕비, 귀족 등의 무덤 23기가 모여 있다. 고분은 모두 평지에 자리 잡고 있는 신라시대의 독특한 무덤군이다. 그 중 서봉황대고분과 금관총은 1921년, 금령총과 식리총은 1924년, 서봉총은 1926년 일제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광복 이후 1946년 호우총에 대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며, 1953년 마총, 1963년 쌍상총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1973년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미추왕릉(사적 175), 황남리 고분군(사적 40), 노동리 고분군(사적 38), 노서리 고분군(사적 39), 오릉(사적 172), 동부사적지대(사적 161), 재매정(財買井:사적 246) 등이 있다.


황룡사지구
신라 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로, 신라시대 목탑으로 가장 유명한 황룡사지(사적 6), 분황사 석탑(국보 30)이 있다.
553년(진흥왕 14)에 창건된 황룡사는 목탑이 건립된 645년(선덕여왕 14)까지 무려 100여 년의 오랜 시간을 두고 중창을 거듭할 정도로 신라 초기 불교에서 최대 규모를 가진 핵심 사찰이었다. 고려시대까지 여섯 차례의 보수를 거치며 건재했으나 1238년(고종 25)에 몽고군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고 말았다. 오늘날까지 전해진 바 가장 높고 큰 목탑으로서 그저 탑의 모습을 상상만 할 뿐 현재로서는 탑을 복원할 만한 자료도 기술도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하니 안타깝다.

 

산성지구
산성지구는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으로, 400년 이전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명활산성(사적 47)이 여기에 속한다.
명활산성은 산기슭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정상부까지 계곡을 하나 또는 여러 개 감싸고 있는포곡식성으로 길이는 약 4.5km이다. 진흥왕 12년(551년)에 쌓았다는 기록이 명활산성작성비에 있다. 이 산성은 도성의 동쪽 수비를 담당하는 나성(성의 외곽)으로 나성 중에서는 처음 돌로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자비마립간 18년(475년) 1월부터 소지마립간 10년(448년) 1월까지는 임금이 거쳐하는 행궁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