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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 | 기획 [청소년 연극을 보다]
잊고 있던 초심, 무대에서 빛났다
전북지역의 청소년 연극 환경
이동혁(2018-09-17 10:38:01)



지난 8월, 제22회 전국청소년연극제가 전주에서 치러졌다. 전국 열여덟 개 학교 청소년들의 열정 가득한 무대 앞에서 관객들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아이들의 무대를 보며 잊고 있던 초심이 되살아났다"는 배우 편성우 씨의 말처럼 그들의 무대에는 기성 배우들조차 어느새 잊고 있던 연극에 대한 초심이 담겨 있었다.
연극제 기간 행사의 주역으로 무대를 빛낸 전북의 청소년들은 어떤 환경에서 꿈을 키워 왔을까? 이번 연극제를 계기로 청소년들의 연극 풍토를 짚어 봤다. 연극배우이자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편 씨와 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 강지연 사무국장을 만나 훗날 연극인이 될 그들을 우리 지역이 받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나누었다.



무엇이 청소년을 위한 행동인가

청소년 연극 환경을 살펴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학교다. 집보다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 청소년들, 특히 고교생의 경우 그들의 연극 활동은 학교 계열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계열이란, 흔히 인문계와 실업계로 구분되는 일반계 고등학교와 특성화 고등학교를 가리킨다. 이러한 계열 차이에 따라 연극반의 대우가 달라진다는 것이 연극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연극제에 출전하려면 오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전북의 경우 예선 준비 기간이 약 3개월, 본선까지 진출하면 여기에 약 2개월가량의 연습 시간이 더 추가된다. 거의 반년에 가까운 장기전인 셈이다. 대학 진학이 목적인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연극반을 장려할 수 없는 이유다.
연극계 관계자는 "연극 활동에 대한 지원이 비교적 잘 이루어지는 특성화 고등학교에 비해,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연습 장소 제공조차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연극반 활동을 할 경우 암암리에 그만둘 것을 종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사자인 학생이 무엇을 원하는지 보다 수도권 대학으로 학생을 몇 명 보낼 수 있을지, 그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의 계열에 따라 입장 차이가 명확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최근에는 교과 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대안학교가 청소년 연극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우리 지역에서는 김제 지평선고등학교가 전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요 몇 년 새 지역 예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전국청소년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극에 대한 열의는 어느 학교 연극반이나 똑같겠지만, 결정적으로 그것을 받쳐 줄 환경에 차이가 있다. 학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대안학교 연극반에 비해 지원이 미미한 일반계 고등학교 연극반은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 연극 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연극계 관계자는 "학교와 지도 교사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연한 것이지만 지금까지도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 "연극반을 위해 예산을 따로 만들어 주는 학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교가 훨씬 많다. 학교의 관심 밖에서 예산도 없이 공연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가엾은 마음이 앞선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적절한 지원만 이루어진다면 일반계 고등학교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학교 예산을 쓰는 게 어렵다면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동아리 활동 지원 사업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는 방법도 있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청소년 연극에 대한 지원은 우리 지역 연극계의 발전과도 그 궤를 같이한다. 연극반에서 활동하는 학생 중 누군가는 성장해서 연극인이 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좋은 관객으로서 공연장을 찾을 것이다. 잠재적 생산자와 향유자의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작업인 셈이다.
무엇이 청소년들을 위한 행동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지만, 공부라는 단어가 학업만을 가리키지는 않을 것이다. 학생 때에만 겪어 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도 그들의 성장에는 필요하다. 연극이라는 무대가 그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기대한다.


아직도 연극인은 배가 고프다

"전북에 남아서 계속 연극을 하는 청소년은 극히 소수다."
편 씨의 말이다. 그는 "졸업 후 아이들이 여기(전북)에 정착을 하려면 수익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어야 하는데, 사실상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시립극단 외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시립극단의 정원은 대부분 차 있는 상태고, 아이들의 선택지는 민간 극단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편 씨는 "일정한 수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민간 극단이 아직은 없다. 어느 지역이나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연극 활동을 계속하려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수밖에 없다"며 어려운 연극계의 현실을 들려줬다. 특히, 한해에 한두 번밖에 무대를 올리는 못하는 작은 극단의 경우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 1년의 거의 대부분을 아르바이트로 보내는 배우들도 많다고 한다.
"아이들도 아는 것 같다. 여기(전북)서 활동하는 것보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게 훨씬 낫다는 판단을 이미 어릴 때부터 내리는 것 같다."
강 사무국장도 편 씨와 같은 의견으로 "연극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연극인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연극인뿐 아니라 전북연극제에 참가하는 극단들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전북연극제 예산이 2천만 원이다. 대관료나 심사비, 인쇄물을 만드는 데에 드는 비용을 빼면 극단에 지원할 수 있는 돈은 3~4백만 원 선이다. 그마저도 참가 극단이 많아지면 더 적어진다"며, "극단들은 전국대회를 위해 적자를 보면서도 참가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강 사무국장은 "일반 공연 무대가 아니라 대회를 위한 무대에서조차 적자를 본다는 사실이 안타깝다"고도 덧붙였다.
2018년 7월 기준, 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에 소속된 극단의 수는 열여섯 곳이다. 그중 여덟 곳이 전주에 밀집돼 있고, 익산과 군산에 각각 세 곳, 남원과 정읍에 각각 한 곳이 있다. 극단 수 자체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보통인 수준이지만, 활동을 가장 활발하게 펼치던 극단 두 곳이 올해 초 불거진 미투 운동으로 문을 닫으면서 전북 연극계는 지금 침체기 속에 있다. 이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 갈지에 대한 고민도 전북 연극계의 짐으로 남았다.
그래도 연극과 전혀 관련 없는 아르바이트만 하던 과거에 비해 지금 연극인들은 상황이 나아졌다. 편 씨는 "배우 일은 아니지만, 연극, 공연과 관련된 일이 많아졌다. 예술인 강사 지원 사업도 그중 하나로, 최근에는 오히려 가르치는 매력에 빠져 연극 교육에 집중하는 사람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전북 연극인의 거의 절반가량이 예술인 강사 활동을 하고 있을 정도로 큰 보탬이 되는 사업이다.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연극 환경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편 씨는 "우리도 답을 찾고 있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3년 정도 군산에서 극단 대표를 맡은 적이 있다. 공연을 올려도 적자인 경우가 많아서 배우들의 출연료 지급이 벅찰 때가 많았다"며, "지금은 많은 극단들이 자체 공연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지원금을 받아 공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원금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매번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도 없을뿐더러, 하나의 사업을 수주하면 다른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구조 때문이다. 편 씨는 "계속 고민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안정적인 연극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지, 같이 고민했으면 한다"며 적극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어렵게 무대를 올려도 텅텅 빈 객석에 극단 대표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출연료라 부르기도 민망한 얇은 종이봉투의 두께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다. 먹고사는 일에 지쳐 연극계를 떠나가는 이들이 많다. 언제까지 연극인들은 배가 고파야 하는가. 이제는 더 이상 생계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연극인들이 나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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