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6 | [서평]
서사시적 정신, 서정시적 형식
-『외롭고 높고 쓸쓸한』(안도현, 문학동네, 1994)
신희교 우석대교수 국문과(2003-09-23 16:02:54)
헛된 구호만 무성하고 아무런 결과물도 찾아볼 수 없는 언행불일치의 불행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볼 만한 것은 정직한 시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선지자 같은 안도현시인의 네 번째 시집『외롭고 높고 쓸쓸한』(문학동네, 1994)은 단순한 서정시의모음집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서사시라 할 만하다. 자기의 내부를 파먹는 것이 서정시라 생각하는 그래서 서정시는 독자를 무시해도 좋은 것이라는 교과서적 통념에 사로잡힌 독자는 이 시집을 통해 장르적 편견을 교정 받지 않을 수 없다. 서정시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 서정시는 시인이 현실을 반영하는 과정을 반영하여 보여주는 것임을 다시 확인케 된다.
정치인의 헛된 구호가 실천을 전혀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 총체성이 분열된 시대이지만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오히려 총체성의 회복을 희망한다. 이 시집의 자서(自序)에서, 시인이 시와 삶의 일체화를 희망했을 때 그것은 실천을 담보한 총체성에의 지향을 뜻하는 것이었다.
근60편에 가까운 시들은 5부로 나누어져 있다. 도입부(1부)에 이어, 시대사의 알레고리라 할 개인사(個人史)(2부), 민족에 대한 사람(3부), 정론에의 지향(4부), 참교육에의 열망(5부)등이 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들에서 화자의 목소리는 당당하다. 그러나 겸손하다. 그리고 비록 가난할지언정 넉넉함을 잃지 않는다. 전체 시중에서도 창두시인 「너에게 묻는다」는 압권이다. 나머지 시들은 이 시의비의를 풀기 위한 시들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전체 시들을 압축하는 구조화된 하나의 에피그램으로 나타나있는 이 시는 석 줄 뿐이다. 금지 명령문과 의문문(실제로는 또 하나의 명령문이지만)으로 이루어진 「너에게 묻는다」의 시적 화자는 일단 하나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정신으로서 시적 화자는 독자에게 연탄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킨다. 사실 온 몸을 불살라 추운 곳을 따뜻하게 덥힌 후 재가 되는 연탄은 숭고하기까지 한데 범속한 사람들은 연탄의 숭고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제 욕심에만 사로잡혀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제 밥그릇 챙기기에 남의 밥그릇 빼앗기에 혈안이 되어 온 사람들에게 화자는, 도대체 연탄의 고마움을 알기나 하느냐고 연탄의 희생정신을 아느냐고 어디 양심이 있으면 한 번 말이나 해보라고 매섭게 꾸짖는다. 그리고 화자는 연탄이야말로 아주 숭고한 것이므로 그 연탄을 본받아야 한다고 준엄하게, 어른스럽게, 당당하게 아주 매서운 손가락질을 하면서 요구하는 것이다. 화자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실 그 스스로가 이미 연탄처럼 한 번 타오른 적이 있기 때문이리라.
「너에게 묻는다」는 하나의 경구이다. 그래서 세속화된 둔감한 사람들은 이 경구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시의 다음에는 「연탄 한 장」과 「반쯤 깨진 연탄」이 실려 있다. 「연탄 한 장」에서는 완전한 희생을 위한 화자 스스로의 반성을, 그리고 「반쯤 깨진 연탄」에서는 그 반성을 거친 철저한 의지적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시집의 안에 숨어있지만 「우물」이라는 시는「너에게 묻는다」와 일란성 쌍생아이다.
『외롭고 쓸쓸한』에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 울려 퍼지고 있다. 그 사랑은 맹목적이지 않은데 왜냐하면 미워하는 것과 진실로 사랑하는 것이 분명히 구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미움은 삼키기만 하고 뱉은 줄 모르는 땅에 대한 것이며 인간에 대한 것이다. 「눈 그친 들녘」「신축공사장에서」이와 함께 소시민의식 또한 부단히 지양코자 하는 것이다.
화자는 사랑해야 할 것을 분명히 알며 그리고 그 대상에다가 자신을 일치시키기도 한다. 우선 그가 사랑하는 것은 작고 보잘 것 없으며 힘이 없는 것들「개망초 꽃」임이 주목된다. 척박한 땅에 피어나는 개망초 꽃은 나팔꽃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내게 땅이 있다면 / 거기에 나팔꽃을 피우리 / 때가 오면 / 아침부터 저녁까지 / 보랏빛 나팔소리가 / 내 귀를 즐겁게 하리 /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 / 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리보리 / 내게 땅이 있다면 /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 다만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자리에 /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땅」)
일하는 사람보다 일하지 않은 사람이 더 잘 먹고 잘 사는 이 저주받은 땅을 두고 화자는 아들에게 한 평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무욕의 공간인 하늘을 향한 염원이 응축된 나팔꽃 씨를 물려주리라 한다. 한편 화자는 사랑스러운 대상을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리나 스스로 대상화되었던 간에 모두 식물성을 띠고 있음은 특징 적이다.
한편 화자는 소시민의식에 안주하려는 자신을 반성한다. 과거를 회상한다거나(「집」)등산을 하는 것(「모악산을 오르며」)은 세속화되려는 자신을 의지적으로 거부하는데서 오는 몸짓이다. 그 몸짓은 신성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는 자꾸만 왜소해지려는 자신을 부단히 반성하면서 고통스러울망정 좀더 트고 좀더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화자의 넓은 품은 그러나 자기 만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공동체적인 세계관은 작게는 유경이(딸)로부터 크게는 계급으로 그리고 민족으로 확대되어 있다. 이 민족은 또한 좌우편향의 위에 놓여져 있다. (「모향으로 가는 길」「낡은 자전거」)말과 행동이, 시와 시인이 제각각 놀아나는 이 시대는 분명히 총체성이 둘로 분열된 시대이다. 세상이 혼탁한 것은 시는 많은데 시인이 정작 시처럼 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말 또한 오늘처럼 타락해 버린 때도 없었을 것이다. 말로 사랑하기는 쉽다. 그것도 민족과 역사에 대한 실천적 사랑은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서 화자는 사랑이란 말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교화가치가 되어 버렸고 표현의 순간에는 발화자가 더욱 천박해질 뿐이기 때문이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가 아니냐 /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 삶은 끝끝내 연애 아니냐(「연애」)
사랑이 여기서는 가슴 벅찬 것으로, 함께 가는 것으로 노래되고 있다. 앞서 모두 시에서 화자의 독자에 대한 발언이 당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발언이 뜨거웠던 실천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는데 시「연애」에서의 사랑도 이러한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집에서 화자의 사랑에 대한 사상은 정직한 것이며 양심적인 것이다.
사랑은 결코 무절제한 것이 아니며 계급적인 것이기도 하다. 사랑은 사랑을 해 본 사람만이 말할 자격이 있다. 이 점에서 『외롭고 쓸쓸한』에서의 사랑은 전형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 시집의 시들을 우리는 다시 다음과 같이 간추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1부에서 시인(화자)은 소시미의식을 반영하면서 가난한 마음으로 살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누구나 무욕의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2부는 유년시절부터 해직교사로서의 삶에 이르기까지의 성장사가 이야기되고 있다. 이 성장사가 이야기되고 있다. 이 성장사는 시대사와 겹쳐지는데 그 시대사는 "사랑도 역사도 흉터투성이(「군산 앞바다」)"인 것으로 나타난다. 3부는 시인의 의지적 삶이 민족에 대한 사랑과 함께 분단의 극복으로 이어질 것을 노래한다.(「나무」). 4부는 정론성의 시들로서 민중적 세계관으로 충만 되어 있다.(「풀베기」). 그리고 5부는 교원노동자로서의 당당한 삶이 표현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학교의 풍경을 전형적으로 잘 형상화해내고 있다. 학교의 풍경을 노래한 끝에 "퇴근하는 전교조 사무실로 향하는 선생님들 발소리 / 적막 속으로 먼동 트는 소리"라고 하여 학교의 풍경은 결국 참교육을 실천코자 하는 선생님들의 발소리로 모아지면서 미래에의 희망이 암시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형식과 관련, 이 시집에서 매우 유표한 시가 있는데 그것은 [겨울밤에 시쓰기]이다. 이 시에서의 문장을 모범화해 본다면 "나는....생각한다"이다. 이러한 표현은 의식의 흐름을 나타내는데 유용하다. 이 시에는 또한 시인의 시작과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이를 메타포임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여기서 퇴고의 과정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것은 의식의 반성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일 뿐이다. (잠꼬대 같은 모더니즘류의 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이외 연쇄법(「이 세상에 아이들이 없다면」「덤벼들면」)이 또한 주목되는 표현기법이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은 총체성의 회복을 희망하는 서사시 아닌 서사시이다. 이 시집은 단순히 그저 서정시의 모음으로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길다란 한 편의 서사시로 읽힌다. 우리는 이 한 편의 서사시를 통해 시와 시인이 하나인, 시인과 독자가 하나인, 시와 삶이 하나인, 정치학과 윤리학과 문학이 하나인, 그와 같은 총체성에의 회복을 염원케 된다. 그리고 이 시집의 안에서 우리는 한 외롭고, 높고, 쓸쓸한 영웅의 모습을 잃게 된다. 서정시의 모음을 통하여 한편의 서사시를 접하게 된다는 것은 신바람 나는 일이다. 그리고 신바람날 것 전혀 없는 세상에서 이러한 시인을, 이러한 시집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신바람 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