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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6 | [교사일기]
참교육의 현장 마음을 담는 글쓰기
이재현 어린이 글쓰기 지도교사(2003-09-23 16:04:06)
몇 년 전, 4학년 아이들과 글쓰기를 할 때의 일이다. 글쓰기도 좋아하고 나름대로 일기도 열심히 쓰는 아이도 있었지만, 도무지 무슨 뜻으로 그 글을 썼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여자이이가 있었다. 이런 생각을 쓰고 싶었는데 써 놓고 보면 전혀 엉뚱한 글이 되기도 하고, 쓰기 싫은 날에는 그저 그럴듯한 이야기들만 늘어놓다가 만다. 자신도 스스로 인정하듯이 조금은 집중력이 약하고 작은 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쓰는 것에도 자신이 없고 쓰기조차 싫어했으니 해가 바뀌어 글쓰기를 시작한 지 열 달이 지나도록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글이 조금은 길어지긴 했지만 진심으로 써지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그 아이는 이해심이 많고 인정이 많으며 남이 힘든 일을 겪을 때 위로해 주는 따듯한 마음씨를 가졌기 때문에 나는 그 마음이 살아서 글이 되어 나오기를 기다렸다. 다섯 명이 같이 하는 글쓰기시간이지만 어떤 때는 나와 같이 이야기하면서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실컷 말하게 한 다음에 이야기한대로만 그대로 옮겨 적게 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그 아이의 글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자기 자신에 대해 진지하고 솔직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 (동산 국민학교 5학년 여) 나는 1983년 3월5일에 태어났다. 나는 어디에서 태어나고 어디에 살았는지 기억에 나지 않는다. 2학년 여름 때의 일이다. 우리가족 모두 아빠 친구 분 엄마 친구 분들과 선유도를 놀러가기로 했다. 거기에 도착하니 저녁이어서 그 속에 있는 학교에서 잤다. 하룻밤이 지나고 아침에 놀다가 어떤 아이가 튜브로 책상을 밀어 내 귀에 부딪쳐서 귀가 찢어진 일이 생각난다. 그 때 조그마한 병원이 있어서 다행이지 없었다면 나는 아마 큰 일 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아직도 소름이 끼친다. 3학년 때 일이다. 공부를 못하여 어머니께 혼난 적이 많이 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아마 3학년 1학기까지 엄마 젖을 먹었던 것이다. 4학년 때 남자아이들과 장난치다가 넘어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지만 복도에서 뒹그러 버렸다. 그래서 선생님께 꾸중도 많이 들었다. 5학년 때 들어와 친구들에게 당하고만 살아서 어머니께 많은 꾸중을 들었지만 그저께부터 나는 친구들에게 내 의견도 내세웠다. 나는 너무 내 자신에 대하여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 이제 나도 당당하고 내 자신을 비판하지 않고 내 자신에게 무관심하지 않겠다. (1993년11월26일) 같은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 크게 잘 쓴 글이라고 할 수 는 없으나 그 아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하게 된 것만 해도 나는 기뻤다. 그 날은 글쓰기를 마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쏟아 놓으며 나는 그 아이가 기특하고 장해서 여섯 살짜리 우리 아들 칭찬할 때처럼 엉덩이를 톡톡 뚜드려 주었다. 사람은 말이나 글, 그림, 노래, 몸짓 따위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한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마치 글은 작가들이나 쓰는 것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어린이들 역시 높은 학년으로 올라 갈수록 '나는 글 못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단정 짓는다. 내가 지도하고 있는 아이들 가운데도 흔히 "얘는 글을 못 써요"라고 진단하는 어머니와 "저는 글 쓰는데 소질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다. 글쓰기는 곧 자신의 마음을 글자로 담아내는 일이다. 그저 마음에도 없이 겪지도 않은 일을 마치 겪은 것처럼 꾸며서 쓴 글은 아무리 읽어도 맛이 없다. 반면에 마음을 담은 글은 비록 문장이 거칠고 어색하더라도 읽는 사람에게 쓴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감동을 준다. 특히, 어린이 글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듯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해도 살아있는 생생한 글이 된다. 거기에 누가 보아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도록 조리 있고 정확하게 쓰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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