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독서의 달 '평화와 통일로 가는 독서열차'
황석영 작가에게 듣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
1970년대 분단된 한국 산업화의 현실과 시대의 아픔을 민중들의 삶을 통해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가 황석영이 지난 9월 13일 익산을 찾았다.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책과 사람을 통해 시대적으로 교감하고자 익산 민예총과 마한교육문화회관이 마련한 자리였다. '평화와 통일로 가는 독서열차'를 주제로 한 이날 행사에서 그는 거침없고 험난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냈다.
그는 어린 시절 작가를 꿈꾸게 된 계기, 소설 '삼포 가는 길'의 모티브가 되었던 일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베트남 파병, 북한 방문 등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직접 보고 겪은 생생한 경험들을 깊이 있게 들려주었다.
5.18 민주화 운동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들불야학 창립에도 참여했었던 그는 오월항쟁 당시 광주에 있지 못했던 자책감을 고백하기도 했다. 베트남에서 자행된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서는 ”역사적 트라우마가 개별화될 때 그것이 귀신이 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북은 나의 또 다른 자아”라고 설명하며, 방북 당시의 경험과 현재 급변하는 남북 관계, 평화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어려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소통하고 연대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2부로 구성된 이날 행사에선 비올라와 플루트, 색스폰 공연이 대담 전에 펼쳐져 시민들에게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선사하기도 했다. 대담은 익산 민예총 신귀백 회장(영화평론가)이 맡았다.
최동현 시집 <바람만 스쳐도 아픈 그대여>
어느덧 겨울은 사라지고 완연한 봄이 다가왔다
최동현 시인(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 첫 시집 <바람만 스쳐도 아픈 그대여>를 펴냈다. ”시가 내 삶의 전부인 때가 있었다. 그런 시를 오래 가까이하지 못하고 살았다. 30년 만에 재회를 하면서 시집을 묶는다”는 시인은 ”철 지난 옷을 입고 나서는 것처럼 쑥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이제는 '시를 안 쓰는 시인'이라는 부끄러운 이름은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그의 시는 장수의 오지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젊은 시절부터 만경강과 김제 평야, 익산과 군산의 어디쯤에서 겪었던 삶의 일상들이 몇 개의 소제목으로 묶여 있는 가운데 '만경강', '들', '논' 등의 연작시들이 감각과 사유의 울림을 더한다. 문학평론가 김만수는 ”이 시들에 나타나는 농경적 상상력은 계절의 순환과 잘 어울리는데, 그 바탕에는 늘 어둠, 아픔이 놓여 있다”며, ”'민화 2'와 '격포 기행'에 드러난 절망과 분노의 마음들은 그가 1980년대 이후 '남민시' 동인으로 써 온 시들의 궤적을 보여 주는 단적인 격정들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시집을 관통하고 있는 정서는 추운 겨울의 분노와 상처가 전부는 아니며 오히려 다가올 봄날에 대한 희망에 가깝다.
지금 눈보라치고 / 문풍지 우는 밤은 깊지만, / 여기저기서 새벽을 부르며 / 달려오는 발자국소리 자욱하니, / 동토에 묻힌 사람들 / 함께 일어나 / 온 들녘의 향기로, 훈풍으로 꼭 / 돌아오라. / 꽃 피는 봄날에. ('꽃피는 봄이 오면' 중)
그의 시는 지나간 한 시대를 관통하여 여전히 유효한 고뇌와 희망의 기록을 품고 있다. 손택수 시인은 ”모두가 떠나 버린 들판과 들꽃과 자신의 나라에서 난민으로 사는 자들을 놓지 못하고 있는 시다. 1년도 못 가 사라지는 새로움이 들끓는 시대에 참으로 기이하기까지 한 시집”이라고 평했다.
순창 출신으로 1985년 '남민시' 동인지 제1집 <들 건너 사람들>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이후 오랫동안 시 쓰기 대신 판소리 연구에 매진했다. 전북작가회의와 전북민예총 회장을 지냈다.
이승우 스물네 번째 개인전
형형색색의 꽃창살에 마음의 안팎을 담다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 그러한 문의 속성을 작품에 담고 있는 작가 이승우의 스물네 번째 개인전이 지난 8월 28일부터 9월 9일까지 교동미술관 2관에서 진행됐다.
젊은 시절, 부안 내소사의 빛바랜 꽃살문 사진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가는 오랫동안 꽃창살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벌여 왔다. 그는 ”몇 십 년 전 내소사에 갔다가 꽃살문을 봤다. 당시엔 젊었을 때라 별 감흥 없이 사진만 찍고 돌아왔는데, 몇 년 뒤 빛바랜 사진을 다시 보니 가슴에 와 닿는 게 있었다. 꽃살문의 아름다운 문양도 그렇지만, 문이 담고 있는 의미가 더욱 크게 와 닿았다”며 꽃창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안과 밖을 나누는 문의 속성에서 우리 마음의 모습을 발견했다. 마음에도 내면과 외면이 있지 않은가. 내면이라 해도 보이고 싶은 내면과 숨겨 두고 싶은 내면이 있는 것처럼, 그러한 내부와 외부를 꽃창살을 통해 형상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북 미술계에서 반구상 작가로 알려진 그는 개인전마다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며 그만의 꽃창살을 표현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업의 원점을 되짚어 봄과 동시에 젊은 시절의 꽃살문으로부터 지금에 이르렀다는 의미를 담아 전시 이름을 '꽃창살로부터'라 지었다. 작가는 ”안과 밖의 경계를 어떻게든 작품 속에 녹여내고 싶은데, 아직도 표현이 잘 안 된다. 간절히 바라지만, 형상화할수록 어긋난다”며 여전히 답을 찾고 있는 과정임을 밝혔다.
원광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전북예술상(2003)과 중앙일보 대상전 특선(2003)을 수상한 이력이 있으며, 파리, 뉴욕, 시드니, 청도 등에서 열린 한국미술세계화전에서도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화가 외에 평론가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갤러리 숨 신진작가 후원전 '두근두근'
꿈꾸는 젊은 작가들을 위한 선물
갤러리 숨(대표 정소영)의 신진작가 후원전이 열렸다. 8월 27일부터 9월 22일까지 진행된 이번 전시의 이름은 '두근두근'.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작가의 길로 들어서길 망설이는 젊은 작가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전달하기 위해 기획된 자리다. 초대된 작가는 원광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한 설은화와 홍익대학교에서 섬유디자인을 전공한 이물질.
설은화는 '앨리스를 찾아서'를 주제로 어른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타인의 시선과 잣대로 뒤범벅된 나를 표현했다. 천으로 표현된 나무숲 한편에서 문득 마주치는 거울을 통해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이야기하며 어른의 의미를 곱씹는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확신 등 진짜 내가 있었다”며, ”어른이 된 지금,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는 사이 진짜 나를 잊은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으려 기둥만 남아 있는 나무 사이를 걷는다”고 말했다.
이물질은 동시대 청년들의 모습을 말(馬)로써 형상화하고, 그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열정과 불안, 우울의 감정들을 파란 색채로 표현했다. 그는 평생을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말의 삶을 언급하며,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즈음은 진학을 위해, 취업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자신을 상품화한다”고 말한 그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파란 말에 투영했다. 파랑은 청춘의 색인 동시에 불안과 우울을 내포한 색이다. 파랗게 물든 말은 삶의 언저리에 매달린 동시대 청년들의 초상이며, 나의 자화상”이라고 밝혔다.
시간여행전
과거를 보는 또 다른 시각
솜리골 작은 미술관 전시를 중심으로 익산 문화예술의 거리 일대에서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사라져 가는 과거의 기억을 작품을 통해 되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8월 22일부터 진행된 이번 '시간여행전'에는 지역 작가 최혁과 하승완이 참여했다. 이들은 페인팅, 펜화, 팝아트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해 과거 영화 속 이미지들을 그들만의 시각으로 재탄생시켰으며, <말죽거리 잔혹사>, <터미네이터>, <스타워즈> 등 유명 영화들을 패러디했다.
전시 외에 미술관 옆 방공호와 익산 문화예술의 거리 바닥을 수놓은 그래피티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그래피티 작가 이종배는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담긴 방공호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리뉴얼함으로써 과거를 받아들이는 또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문화예술의 거리 일대에선 시간여행이란 이름에 걸맞게 옛날 교복 대여도 이뤄졌다. 이번 전시는 10월 4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솜리골 작은 미술관은 1930년에 지어져 일제강점기 익옥수리조합 창고로 사용되던 곳이다. 민족의 아픔을 품고 있는 곳이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해 2016년 10월 작은 미술관으로 리모델링됐다.
박순규 작가, '내 삶의 언저리'전
무너져 가는 골목에서 포착한 사람의 냄새
중견 여성 사진 작가의 사람 냄새 배인 사진전이 지난 9월 7일부터 29일까지 전주 데미안 갤러리에서 열렸다. 지난해 대청호 언저리를 선보였던 박순규 작가는 올해 그의 삶의 언저리를 펼쳐 보였다. 작가는 ”지난번에 선보인 대청호 언저리는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한 발걸음”이었다며, ”이번 삶의 언저리는 유년의 기억을 더듬는 가슴 저린 발걸음”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삶의 언저리' 사진 연작을 통해 재개발로 무너져 가는 골목길에서 포착한 사람 냄새 배인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가슴 저린 유년의 아련함 속에서 삶의 이야기를 담고, 그 이야기는 다시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특별한 꾸밈도 기교도 없지만, 그만의 감성으로 담아낸 찰나의 순간과 쓸쓸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녀들의 시간전, 제3회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 등에 참여한 작가는 늦은 나이에도 의욕적인 사진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