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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 | 기획 [당신에게 주는 새해 책 선물]
진작 만났어야 할 책들
서해문집 대표 김흥식의 책
(2019-01-15 12:18:09)



『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은이), 김석희 (옮긴이) | 작가정신

어린 시절에 축약본(縮約本)으로 읽은 수많은 작품들을 성인이 되어 완역본(完譯本)으로 읽는 일은 어쩐지 시간을 낭비하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걸리버 여행기』로부터 『삼국지』, 『전쟁과 평화』, 『주홍글씨』, 『노인과 바다』 같은 작품들을 읽은 기억을 되살리다 보면 그 뻔한 이야기를 다시 두꺼운 완역본으로 읽고 싶지 않은 것을 탓할 수 없다. 그래서 『모비 딕』도 썩 읽고 싶지 않았다.
사실 수많은 글들을 읽다 보면 대표적으로 드는 느낌이 세 가지쯤 된다. 첫째, 어차피 이 글은 천재의 소산(所産)이다. 그러니 질투를 느낄 것도 없고 다만 경탄할 뿐이다. 둘째, 이 정도 글이라면 나도 쓸 수 있겠는데. 뭐 그리 대단하다는 거지?
이 두 느낌은 내게 아무런 고통도 주지 않는다. 어차피 나의 능력을 한껏 뛰어넘는 존재는 나와 무관한 존재이기도 하니 나의 삶에 관여치 않기 때문이다. 또 인정할 수 없는 허접한 글인 경우에는 더더욱 무시하면 그뿐이다. 그러니 나의 영혼과 두 느낌은 교호(交互)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세 번째는 다르다.
셋째, 아! 인간이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구나. 온 삶과 정신을 걸고 쓴 글을 이렇게 남기다니!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이런 느낌을 받은 글을 읽는 일은 떨리는 일이다. 글이 나의 존재를 넘어서거나 뒤처진 것이 아니라 내 존재를 관장하면서 함께 가기 때문이다. 끝없이 내 영혼은 충격 받고 상처받으며 기쁨을 느낀다. 게다가 이 글을 쓸 무렵 작가의 나이가 서른 즈음이었다니! 『모비 딕』은 그런 작품이다.



『산성일기 - 인조, 청 황제에게 세 번 절하다』
작자 미상 (지은이), 김광순 (옮긴이) | 서해문집

나라가 망하는 데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상황에 따라, 시대에 따라, 무엇보다도 지도층의 능력에 따라 다를 것이다. 조선 제16대 왕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고작 40여 일을 버티다 성을 버리고 나와 청 황제 앞에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바닥에 찧는 수모를 겪었다. 조선이 망한 것은 아니라고? 그렇다면 히로히토가 이끌던 제국 또한 두 방의 원자폭탄을 맞고도 '일본'이라는 국명은 살아남았으니 '일본 패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안 되리라.
한겨레로서 뜨거운 피가 흐르는 백성이라면, 그 순간 나라가 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러기에 연전에 낙양의 지가를 올린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 새겨진 글자들에서는 뜨거운 피가 흐른다. 그러나 역사는 뜨거운 피를 용납하지 않는다. 소설이 살아남은 자의 감정을 기록한다면, 역사는 죽은 자의 행적을 기록한다. 그러하기에 역사에 흐르는 피는 차갑디 차갑다.
『산성일기』를 기록한 이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통해 분명 관용 없는 역사의 심판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남한산성 안에서 일어난 일을 오직 손으로 기록하였다. 이름도, 감정도, 판단도 남기지 않은 채. 그리고 그 기록은 400년 가까이 전해져 오늘, 우리에게 말한다.
"역사를 두려워하라! 너희들의 탐욕과 무지를 결코 잊지 않을 테니, 너희 두 손에 움켜쥔 권력과 왜곡이 잊힐 거라 오해 마라. 역사는 반드시! 반드시 기억한 후 너희에게, 아니 너희 후손에게 되돌려줄 것이다."
21세기가 중반을 향해 달리는 오늘, 그 역사는 다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그러나 귀가 없는 자들은 듣지 않을 것이니, 내가 두려운 것은 오직 역사의 차가운 피다. 감정의 조각 하나 없이 심판을 내릴 바로 그 피다.



『뉴턴의 시계 - 과학혁명과 근대의 탄생』
에드워드 돌닉 (지은이), 노태복 (옮긴이) | 책과함께

학교 다니던 무렵 물리와 화학을 지긋지긋하게 싫어했다. 어느 정도로 싫어했느냐 하면 과학시험 시간은 단 5분 만에 끝을 냈다. 어차피 하나도 모를 뿐 아니라 읽기도 싫었기 때문에 모두 3, 4, 3, 4로 찍었다. 물리는 이와 조금 다르지만 포기라는 결과는 같았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국어와 역사 같은 과목 덕분에 대학이라는 곳에 입학할 수 있었고, 그 대학은 감사하게도 우리나라 최초의 개가식 도서관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평생을 책과 함께 지내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고, 그렇게 살고 있다.
여하튼 대학에 입학한 후 나는 거의 매일 도서관에 출입했다. 이른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가는 열람실이 아니라 수십만 권의 책이 즐비하게 꽂혀 있는 종합자료실에서 사계절, 4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과거에는 전혀 맛볼 수 없었던 과학의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재미있는 과학을 나는 포기했던 것일까?'
서양의 책들 가운데는 이게 과학자가 쓴 글이야? 할 정도로 재미있고 위트 넘치는 글들이 많다. 그러니 읽는 동안에는 과학책이 아니라 무협지로 느낄 정도다. 그런 책이 여러 권 있는데, 『뉴턴의 시계』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우리가 근대 과학이 출발하는 시기와 과학자들에 대해 갖고 있던 신화의 속살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 무지의 시대에 어떻게 과학의 시조(始祖)들이 말 그대로 과학의 본질로 다가갔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글의 맵시에서 탁월한 멋을 뽐내고 있으니 어찌 재미있지 않으리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텔레비전 앞에서 심각한 아내 곁에서 킥킥거리느라고 바빴다. 과학책이 이렇게 재미있었다니! 그리고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모습만 본 게 아니라 자신의 경쟁자가 떨어지는 모습도 즐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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