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2019.2 | 인터뷰 [인터뷰]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찾아오게 하는 여행을 기획하고 싶다
순창 방랑싸롱 무슈 장재영
이동혁(2019-02-25 14:39:57)



눈가에 장난기가 어려 있다. 그의 나이 마흔넷, 그러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여전히 넘치는 열정을 뿜어내고 있는 그를 보고 누가 불혹을 넘긴 나이라 하겠는가. 첫 만남이었지만, 대번에 그가 끼 많은 사람임을 감지했다. 표정이 그랬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주체할 수 없다는, 설렘으로 상기된 표정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전부 하면서 살기엔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짧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자의 반 타의 반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새하얀 캔버스에 자기 입맛대로 멋스러운 그림을 그려 내고 있는 그의 자유로움이 무척이나 눈부셨다. 지난해 11월 새로이 이사를 마친 순창 '방랑싸롱 시즌2'에서 문화기획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무슈 장재영 씨와 만났다. 장난기 넘치는 소년이 기자의 눈앞에 앉아 있었다.



참 오래도 걸었다
2016년 순창에 뿌리를 내리기 전까지 그는 15년 넘게 여행사에 근무하며 세계를 돌았다. 지금도 이따금씩 프리랜서 가이드로 세계 이곳저곳을 돌고 있다. 순창에 정착한지도 햇수로 벌써 4년이 됐지만, 여전히 그의 중심엔 여행이 있다. 손님으로서 찾아가는냐, 손님을 맞이하느냐, 입장만 바뀌었을 뿐이다. 아니, 오히려 오랫동안 쌓아 온 여행자로서의 경험과 지식 덕분에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속속들이 알게 됐으니 손님을 맞이하는 문화기획자로서 이만큼 값진 보물도 없다.
그가 처음 여행업계에 발을 디딘 건 1999년 무렵이었다. 허니문 전문 여행사를 시작으로, 전시·박람회 전문 여행사, 일반 패키지 여행사, 해외 현지 가이드, 배낭여행 가이드 등 거의 모든 여행 프로그램들을 섭렵했다. 언뜻 보면, 방랑벽을 가진 것 아닌가, 하고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그가 그토록 많은 나라들을 떠돈 이유는 정착할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대학 졸업 후 처음 떠난 유럽 배낭여행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그에게 한국은 너무 좁고 단조로웠다. 물론 눈에 띄는 동양인으로 해외에 거주하고 싶다는 로망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체고 프라하에서 겪은 민박집 사장의 사기, 해외 랜드사 팀장과의 불화, 태국에서 경험한 절도 사건까지 정착할 곳을 찾는 여정은 멀고 험난했다. 영주권을 얻기 위해 떠난 호주에서도 새 총리가 이민자 정책을 바꾸는 바람에 결국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계속된 좌절에 우울증이 찾아온 것도 그 즈음이었다.


"처음엔 제가 우울증에 걸린 줄도 몰랐어요. 어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그런 말을 안 하던 분이 갑자기 무슨 일 있냐고 물으시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펑펑 눈물이 났어요. 아, 지금 나한테 무슨 일이 있구나, 그때 우울증을 자각했어요."


그렇게 상심에 젖어 집 안에 틀어박혀 있던 그에게 2011년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국내 가이드를 해 보면 어떻겠냐는 권유였다.


"그때 가이드를 하면서 우리나라를 보는 시선이 바뀌었어요. 우리나라도 잘 모르면서 외국을 다녔다고 생각하니까 무척 창피해지더라고요. 한국에도 이렇게 좋은 곳이 많은데, 내가 지금까지 전혀 몰랐구나."


국내 가이드 일은 그의 인생에서 귀중한 전환점이 되었다. 우울증이 치료된 것은 물론 우리나라를 더 자세히 알게 된 계기가 된 것. 전화위복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만약, 그의 처음 바람대로 해외에 정착하고 말았다면, 한국의 매력을 다시 볼 기회도 얻지 못했을 터. 나아가 순창에 새바람을 넣고 있는 그와 이렇게 대면하게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의 운명은 이처럼 오묘하다.


하얀 캔버스와도 같았던 순창
2016년, 또 한 번의 권유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우연히 놀러간 순창 금산여관에서 주인장에게 카페 운영을 권유받은 것. 한 번 가이드 인솔을 하고 나면 체중이 3~4kg씩 빠지는 여행업을 평생 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받게 된 아주 솔깃한 제안이었다.


"사실 저 말고도 권유한 사람이 많았다는데, 누가 이 한적한 동네에 와서 카페를 하겠어요.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국내 가이드를 5년간 하며, 왜 순창에는 아무것도 없을까 의문을 품고 있던 그에게 순창은 하얀 캔버스와도 같은 곳이었다. 권유받은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열 가지 이상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곳에서는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단다.
뜻을 굳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움직였다. 불과 한 달 만에 순창으로 이사를 왔고, 보름 뒤엔 카페 공사를 시작했다. '방랑싸롱 시즌1'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재즈 페스티벌을 동네에서 재미있게 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2016년 9월에 문을 열자마자 재즈 콘서트를 10월과 11월에 연달아 열었어요. 이어 2017년 5월에도 '본 보야지 순창(보보순창)'이란 재즈 페스티벌을 진행했는데, 아주 대성황이었어요."
그가 굳이 재즈란 장르를 선택한 것은 모든 연령층이 즐기기에 부담이 없고, 방랑싸롱 시즌1의 고즈넉한 한옥 건물과도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여행작가 강연, 벼룩시장, 재즈 콘서트 등 풍성하게 채워진 보보순창 행사 기간 동안 무려 300여 명의 손님들이 순창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후 이를 눈여겨본 전북문화관광재단과 같은 해 10월 한 번 더 보보순창을 진행했는데, 이때는 5월 행사보다 훨씬 더 많은 500여 명이 방문했다.


"지역이나 거리는 상관없어요. 제대로된 콘텐츠만 있으면 사람들은 발품을 팔아서라도 찾아와요."


북적대는 손님들로 순창 읍내 숙소는 만실, 식사도 읍내에서 해결하니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됐다. 여기에는 지역민과 방문객, 양쪽을 다 만족시키는 공정여행의 정신도 담겨 있었다. 그에게 문화기획과 여행은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고 싶지 않다면, 다른 사람들도 찾아오고 싶지 않을 거라는 게 그의 기획 철학이었다.


보다 더 가까이
"공연 중에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는데, 끝날 때까지 앉아 계시더라고요. 궁금해서 나중에 여쭤봤어요, 어떠셨냐고. '잘 모르겠지만, 신나더라'고 하시는데, 그 말씀을 듣고 희망을 품었어요. 지방이라서 문화 수준이 낮은 게 아니라 접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실 뿐이구나."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문화를 계속 전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지난해 11월 새로운 공간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그는 주인 없이 방치돼 있던 오래된 고추장 저온 창고를 손봐 카페 겸 공연장으로 재탄생시켰다. '방랑싸롱 시즌2'라는 간판을 내건 이곳에서 그는 또 다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지금까지 총 세 번 재즈 공연을 진행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뜨거워서 깜짝 놀랐어요."


넓어진 공간을 제대로 활용하고자 기획한 정기 재즈 공연이 아주 대박을 터뜨렸다. SNS 이외에는 별다른 홍보도 하지 않았는데, 매회 평균 관객 수가 무려 70여 명에 달했다. 공연 한 시간 전에 미리 와서 자리를 잡는 관객들도 많았다. 그만큼 이런 공연이나 문화에 목마름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는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 나가 재즈를 순창의 대표 콘텐츠로 자리매김시킬 계획이다.


"전에는 여행자로서 자신이 이곳저곳을 방문했었는데, 지금은 반대로 여행자들을 끌어들이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 부분들이 참 흥미로워요. 앞으로도 순창에 재미있는 콘텐츠들을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을 불러모을 거예요. 고추장 말고도 자랑할 것이 순창에 있다는 걸 보여 줘야죠."


앞으로 그가 그려 나갈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오랜만에 가슴이 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