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7 | [시]
나를 찾아서
이승철(2003-09-24 09:12:19)
나를 찾아서
이승철
때론 바람의 눈물처럼 흔적 소리 하나 없고
갸날픈 육체에 휘이 휘어이 혼불이 일어
세사은 자꾸자꾸 비틀거린다
넌 똑바로 곧추서 걸을 수조차 없다
사람들이 흐르고 어디론가 정처없는 이 밤에
팔장낀 사람들이 떠밀려가고 뒷골목 촉수 낮은 술집 모퉁이
시든 난초 옆 하염없이 담뱃재 쌓인다
널브러진 술병 속에 철지난 옛사랑을 되삭이며
너는 몸부림치고 있는 거다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정말 한때는 좋았던 벗들
한때는 맨주먹 붉은 피 하나로
세상을 뒤엎을 수 있으리라 맹세했던 핏발선 그 눈동자들
사라지고 없고, 이제 진실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혁명은 내 가슴속에 지워진지 이미 오래
오늘 또 하루 얼마만큼 상처받지 않고
속절없이 견뎌낼 수 있는가, 오로지 그뿐인 거다
철쭉은 다시 피어 내 앞에 놓인 저 만큼의 나날을
붉디붉게 흔들며 짓밟고 간다
이젠 너에겐 속된 세상을 미워할 분노마저 없고
속에 고이 간직할 추억거리 하나 없다
그래, 나, 널 사랑한 적 있었지
그대 빛나는 눈동자 속에 온몸 갈기갈기 쳐박혀
단 한번 진지한 외침으로 육신을 맞대고
나, 널 미치도록 깨물고 싶은 나날들이 있었지
하지만 이젠 그 아무것도 내 곁에 머물러 있지 않아라
뼛속에 박힌 혼절한 넋들만 아른거릴뿐
날, 전혀 감동시키지 못하는 추억의 먼길
아아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