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 씨
서점 카프카는 종종 동료샘들과 모여 인권 스터디를 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제자와 교사 관계였던 우리가 이제는 작가와 독자, 그리고 시를 즐기는 동호인으로 만나게 됐다. 와서 놀란 것은 여전히 시를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과 시 덕분에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시의 육화가 낭독회의 매력 같다. 저마다의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동안 여러 사람의 바다를 느릿느릿 항해하고, 그 바다의 향을 머금은 무언가가 독특한 것으로 변해 전해지는 맛이 좋다.
작가들에게 창작에 관한 얘기를 듣는 것도 좋은데, 글을 쓰던 때의 느낌과 글을 읽는 순간의 느낌이 달라서 쓴다는 행위의 의미가 재현으로만 국한될 수 없음을 거듭 확인하기 때문이다. 덤으로 작가들에게 듣고 싶은 부분을 낭독해 달라 요구할 수 있는 소소한 갑질(?)도 가능한 곳이기 때문에 또 오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낭송회가 끝나고 좋은 책을 좋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갈 수 있으니 왠지 삶이 가치 있게 느껴지는 저녁이 된다.
문화영 씨
그동안 눈으로만 글을 읽다 작가가 자기 호흡으로 작품을 낭송하는 것을 들으며 오감이 자극되는 경험을 했다. 연속극을 라디오로만 청취하다 텔레비전으로, 그것도 흑백이 아닌 컬러로 보게 된 느낌이랄까?
작가 자신의 이야기와 시에 얽힌 사연을 듣고 난 후 낭독을 들으니 작품을 더욱 깊이 있게, 그리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진솔한 이야기들은 울림 또한 크다.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작가에 대한 몰입 때문인지, 작품에 대한 감정이입 때문인지 나 스스로도 자신감이 생기는 듯했다. 준비한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걸어도 기분 좋은 밤이었다.
지연 씨
버드나무에 물이 오르는 것을 보았다. 한 시간 삼십 분 동안 작가와 독자는 한 호흡으로 작품을 읽고 귀를 세워 들었다. 작가가 살아온 내력과 고민과 아픔을 함께 나누다 보니 강물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세상에서 문학은 차디찬 자리였지만 낮은 곳으로 버드나무는 흔들리며 낭창낭창 서로를 쓰다듬고 있었다. 낭독회가 끝나고 길을 나서며 소통과 공감에 대해 생각했다. 눈빛을 나누며 글을 만져서인지 어두웠던 모퉁이가 온기로 그윽했다. 이런 자리가 거듭될수록 봄볕도 가까이 오겠다.
하미경 씨
북카페에서 낭독회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저녁 나들이'를 나섰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다양한 종류의 책과 커피향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이윽고 시작된 낭독회에서 나는 몸과 마음을 활짝 열었다. 차분한 작가의 목소리가 개울의 샘물처럼 흘러들었다.
시인은 자신이 꼽은 좋은 시를 낭독해 주었다. 왜 좋은지를 설명한 뒤 자신의 시도 낭독해 주었다. 시를 쓰게 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으니, 그냥 한 편의 시였던 그것이 내 안에서 특별한 색으로 덧입혀졌다. 시인의 삶과 시 쓰기가 무관하지 않구나. 여기에 진실성이 있고, 시의 힘이 담기는구나. 나는 오래도록 그 생각을 곱씹었다.
이번 낭독회를 통해 작가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독서 문화 확산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신영은 씨
낭독회에 참석하는 건 이번이 세 번째였다. 우연히 낭독회에 참석한 이후로, 좋아하는 작가의 행사를 부러 찾아다니게 됐다. 문학 작품에는 목소리가 없다. 작품에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독자의 상상으로 채워진 것일 터였다. 그래서 독자는 텍스트만을 통해 작품의 서사를 읽어야 한다. 그런 텍스트의 특성이 작품의 서사를 확장시키기도 하지만, 때로는 작품을 오독하게 만들기도 한다.
낭독회에서는 작가가 본인의 입을 통해 작품을 읽는다. 서점 카프카에서 진행되었던 이번 행사에서도 작가들은 직접 작품을 낭독했다. 작가의 목소리로 듣는 작품은 텍스트로 만날 때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흥미롭게 다가왔다. 작품의 더 깊은 바닥까지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의 글에 재미를 더하고, 다음 글을 기대하게 만드는 행복한 시간, 작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로 마음이 포개짐을 느꼈다. 이런 공감과 이해도 낭독의 매력이리라.
이솔아 씨
소리가 들려주는 글은 눈으로 읽는 것과는 다른 상상의 장면을 가져다준다. 눈으로 천천히 글을 쓰다듬듯 읽고 익힌 글을 혀와 입술로 소리 내어 읽는다. 입의 움직임에 집중하면 목소리는 또 다른 작품이 되어 완전히 다른 느낌을 전해 준다. 작은 점 같던 부호도 소리 사이사이 숨소리가 되어 새로운 글로 다가왔다.
낭독회에 오기 전 몇 가지 궁금증이 있었다. 자신이 쓴 글이니 그 글을 제일 유연히 아는 사람일 텐데, 자신의 글을 읽는 작가의 목소리를 어떨까. 그걸 듣는 나는 또 어떨까. 내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할까.
사실 소리에 집중을 못하는 터라 시작 전부터 걱정이 일었다. 하지만 염려가 무색할 정도로 작가들의 목소리와 발음, 숨소리는 하나로 섞여 다른 문장과 글이 되어 다가왔다. 듣는 방법으로 글을 읽으면 눈으로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상황과 요소에 집중하게 된다. 많던 궁금증이 읽어 주는 사람의 목소리로 완전히 해소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