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7 | [저널초점]
우리삶, 우리문화/집
"학의 품에 살았던 우리"
김두경 서예가(2003-09-24 09:13:22)
어느덧 초복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더위를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유난히 끈끈한 날씨가 짜증스럽습니다. 겨울 동안에는 꼭꼭 닫아두었어도 그런대로 지낼만하던 내 작업공간이 초복 더위에 짜증스러워 망연히 창밖을 바라봅니다. 사방으로 보이는 것은 아파트 숲이요 질주하는 차량들뿐입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냉방기를 한번도 가동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게 꽉 막힌 답답한 공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유난히 주변이 시끄럽고, 겹겹이 들어선 아파트 숲도 짜증스러워 아예 창문을 닫아버리고 냉방기를 켰습니다. 주변의 짜증스런 소음들이 한결 조용해지고 시원한 바람이 금세 끈적한 기분을 걷어가며 상쾌한 기분이 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오싹한 냉기다 돌며 별로 기분 좋은 느낌만은 아닙니다.
혹 이와 같은 경험이 없으십니까? 냉방기 바람이 너무나 시원하고 쾌적하시다구요? 그런 분들은 그만 읽으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시원하게 냉방된 곳에서 냉커피 시원하게 드시고 시원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혹여 이런 날일수록 시원한 대청마루, 아니 툇마루도 없는 맞배집 편마루에라도 누워 쌔근쌔근 숨쉬는 대지의 숨소리를 들어보신 분이라면 함께 둘러 앉아 이야기꽃이나 피워봅시다.
더러 친구들이나 특히 후배들은 물론 나이가 지긋하신 선배님들까지도 어쩌다 이런 이야기판이 있어 나도 한 몫 거들라치면 어김없이 책을 통한 대리만족 또는 주워들은 얘기를 참기름 발라 뻥튀긴다고 핀잔을 주시지만 30세 이전에 4칸 겹집 한옥을 우체나 지어본, 그것도 평면구조로부터 용마루까지 도편수와 상의하며 직접 설계하고 그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면 안 믿으시겠죠? 그리고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그 집에서 10여년을 살았고 그 집을 짓기 전에도 어린시절을 흙벽과 초가지붕아래서 단수수 씹으며 살았다면 우리 살던 옛집에 대해서 몇 말씀 드려도 가당치 않다고는 안하시겠죠?
철없던 시절에야 어디 그랬습니까?
번듯한 군청 내무과장네 양옥 슬라브집이 최고 좋아보였고 삐뚤빼뚤한 기둥과 서까래 그리고 뻘건 황토벽에 문풍지 너덜너덜한 우리집은 내무과장네 딸, 우리의 동창 앞에서는 늘상 기죽는 집이었는데 이제는 그 집이 못 견디게 그립고 그렇게 살기를 꿈꾸고 있으니 참 이상한 일이지요? "뭐라고요?" 그런 집에는 쥐도 많고 개미도 많고 말이 그렇지 어쩌다 하루 이틀쯤은 괜찮지만 어떻게 사느냐고요? 겨울이면 그 웃풍 지긋지긋 하시다구요? 목욕탕도 없고 화장실도 멀고 부엌에 쥐는 들랑날랑하고... 설령 육간대청에 연못과 정자까지 있는 집이래도 불편해서, 그러실 줄 압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사실입니다. 육간대청에 정자까지 있는 집이래도 요즈음 살기에는 많이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참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서양에 가보았습니까? 그 나라에서는 이백년 삼백년 아니 오백년 천년 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요즈음 쓰기에 전혀 불편이 없이 살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까? 세계 어디를 가든 보존해야 할 문화재가 아니고서는 요즈음 생활에 맞게 고쳐서 살거나 아니면 새로운 건물을 지을 경우 그들의 건축에 대한 기본정신에 현대의 과학이나 선진 기술과 재료 등을 더하여 그들의 정서와 생활에 알맞고 그들의 자연환경과 어울리는 집을 지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것은 무조건 불편하니 서양식 설계 도면에 서양식으로 본떠 짓고 사람을 거기에 맞추어 가며 살다가 이제 겨우 기술 습득 했습네 하는 것이 서양식 건축, 서양식 실내장식으로 판 박아 찍어내듯 지어 내기에 급급한 모습입니다.
뭐라구요? 청와대도 그렇고 관광지에 가보면 시멘트로도 한옥식 건축으로 잘 지어놓은 집이 있다구요? 그런 염병 앓다 멱 감는 말씀 마십시오. 청와대는 안가봤으니 모르겠네요. 하지만 나머지 건물이사 한옥의 매무새 한 귀퉁이 얼진 얼진 흉내 내서 흉물 떨고 있는 것이지 이 땅과 집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이 땅의 사람들은 이 땅의 모든 생명들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사는지 왜 이 땅에 살았던 선인들은 집을 그렇게 짓게 되었는지 한번이나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설계하고 시공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자꾸 들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물론 많은 연구와 생각을 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연구와 생각의 대부분이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식으로 우선 쓸 소용으로 볼 때 서양에서 해놓은 방법이 있으니 쉽게 가져오고 겉모습만 우리 것 흉내 조금 내본 정도 아니냐 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와 종을 지금과 반대로 한옥을 주로 삼고 양옥을 종으로 삼는 정신이 제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20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편리성과 실용성으로 볼 때 우리식으로 기본을 삼는 것이 모든 면에서 유리하여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실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이 그들의 건축에 대해서 연구하고 너무도 당연한 듯 그들의 정신으로 그들이 생활양식에 따라 살아오듯 우리도 그들보다 늦었다고 생각한다면 늦은 만큼 더 연구하자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정신으로 우리의 삶의 양식에 따라 자존심을 지키고 살면서 서양의 장점을 도입하여 우리에게 접목시켰다면 좀더 독특하고 실용성 있는 이시대의 건축 문화를 이룰 수 있었겠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고 어렵다는 것도 집작하는 바이고 건축은 전공하신 분들의 피나는 노력도 있으신 줄 알지만 달리는 말에 채 찍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세계 건축사에 유래가 없다는 주택200만호 건설의 위업(?)을 이룬 국민이 관광하며 수학여행하며 토산품이 사는 곳(이곳도 외형만 얼씬걸씬 흉내 낸 것이지만)이외에 이시대의 건축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관광과 수학여행의 밑천으로 삼고 있는 문화재들은 앞으로 오백년 천년 뒤까지 알탕갈탕 수리해서 우려먹지 않고 지금 지어진 우리의 건물들이 후손들에게 또 다른 밑천이 될 수 있을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앞으로 100년 후만 뒤돌아 볼 때 이 시대를 상징하는 건축의 특징은 무엇이며 이 시대를 상징하는 우리의 건물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일인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남긴 독특하고 찬란한 문화유산으로 우리는 그것은 자랑하며 돈도 벌어, 꿩 먹고 알 먹으며 살고 있는데 우리의 귀여운 자녀들은 우리들이 남긴 어떤 유산으로 그들의 살림에 도움을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63빌딩이나 롯데월드 백화점일까요? 갓 모양의 미술관이나 한옥 모습의 국악당 등이 있는 예술의 전당이나 장고를 응용했다던가 하는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일까요? 아니면 어느 도시 어느 진입로 어떤 공원 어떤 휴게소를 가더라도 당연한 듯 당당하게 서있는 마치 대포와 미사일을 연상케 하는 상징 조형물일까요?
63빌딩이나 롯데월드같은 빌딩은 세계 어느 곳에 가도 있습니다. 예술의 전당 갓 모양의 미술관요? 지금도 갓 쓰고 다니는 우리를 보기가 어려운데 100년 뒤에 갓이 이름이나 기억 될까요? 그런데 갓모양을 본떠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요즈음 어린이도 갓이 무엇인지를 모를 판에 100년 후 갓이 무엇인지 알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눈 씻고 보아도 갓 쓴 우리네 모습을 볼 수 없는데 서양 관광객에게 (만약 한국적 건축의 상징으로 관광지가 되었다면) 갓을 들고 다니며 이것을 상징한다고 설명하며 관광안내를 하시겠습니까? 설령 그렇게 한들 그들이 감동하여 한국의 건축미 "뷰티풀"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쩐지 나는 뷰티풀이 아니라 "빌어먹을"이라고 말할 것만 같습니다. 이것은 건축에 대한 기본 정신을 서양식으로 깔고 우리 것으로 겉모양만 본뜨는 시늉을 했기 때문입니다. 내부공간은 자기네 나라에서 많이 보아왔던 그것과 다를 바 없고 겉모습 조금 다른데 무엇으로 "뷰티풀"을 연발 하겠습니까. 전시장은 우리나라에 없었던 것이니 서양식으로 본받고 공연 무대도 우리에게는 없던 것이니 서양의 형식을 그대로 빌려와 지어야 하고 교회나 성당도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니 그대로 본떠서 뾰죽뾰죽 하늘을 찌르게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요? 세계는 하나 지구는 하나 어쩌고저쩌고 하니까 그냥 그렇게 따라가도 될까요? 그럴수록 우리만의 독특한 삶의 문화를 누리고 가꾸어 갈 때 우리는 엄청난 자원, 엄청난 밑천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외국을 여행할 때 아니면 국내 여행에서도 독특한 풍물 독특한 경치 독특한 먹거리 등등이 있을 때 신나해 하면서 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독특해지려 하지 않습니까? 독특해지려 노력은커녕 못 따라가 환장들 합니다.
세계의 문명 질서가 큰 흐름을 이루며 세계는 하나로 흘러가지 않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마을 안길을 흐르는 샛강이나 골짜기 개울물 까지 시멘트 덮어씌워 규격화 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건축학을 전공한 것도 미학을 공부한 적도 없는 촌놈이라서 무식하게 목소리를 높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내 삶의 기본 정신을 유지하며 살려는 노력을 하다보니 우리가 하고 있는 어떤 일들을 독특한 시각으로 새롭게 일구어 낼 수 있다는 서툰 자신감에 넘쳐 무식한 소리 함부로 지껄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공자가 아닌 일반사람이 너무나 당연한 듯이 우리자신이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져 지어보고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네 살림집에 대해서만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몇 말씀드리고 끝맺고자 합니다.
무엇보다도 첫 번째 문제점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의 문화를 비하한다는 사실입니다. 좁은 응접실에도 소파는 있어야 하고 좁은 방에도 침대는 있어야 하며 낮은 천정의 아파트에도 치렁치렁 샹들리에는 달아야 앞서가는 현대인이라 착각하는 것입니다.
응접세트 없이 낮은 소반과 방석 몇 개를 놓아 둘 수도 있고 치워 놓았다 필요할 때만 꺼내 쓸 수도 있는 이런 것은 특별한 소수의 사람이나 하는 것, 또는 귀찮고 불편하며 심지어는 품위 떨어지는 짓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식탁도 마찬가지고 침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허리가 아프다면 서도, 늙을수록 뜨끈한 온돌이 좋다면 서도 옆집 눈치 보며 침대는 사도고 실제로 잠자기는 온돌 바닥에서 허리를 지지며 자는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침대가 아니면 오히려 불편해할 정도가 되어 버려 앞으로는 의미 없는 이야기일 테지만) 이러한 문화의 사대주의 현상은 우리 생활 구석구석 파고들어 이제는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경지에 올라버렸고 우리 스스로가 우리 것에 더욱 어색해져 버렸다는 끔찍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구체적 문제점입니다. 즉 화장실과 목욕탕 입식부엌 등의 시설이 불가능 할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입니다. 그러나 양식에서 장점인 그 어떤 시설도 한옥에도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내 경험으로 얼마든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셋째 쥐나 개미 모기에 대한 방충망 등의 불편입니다. 물론 양옥보다 그런 것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옛날 서민들 집이 무방비 상태지 고급 주택에서는 완전하고 편리한 방법으로 퇴치하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넷째로 각장의 독립성과 방음성 그리고 난방의 비효율성 및 보온 단열이 안돼 웃풍이 많다는 단점입니다. 각방의 독립성이라든지 방음성은 창호와 천정재를 조절하거나 설계 구조를 응접실을 두거나 방과 방사이에 욕실이나 주방으로 하는 서양식 구조로 하면 보다 완벽한 독립성을 가질 수 있으며 단열 문제는 전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지금상태에서도 완벽하게 잡을 수 있지만 창호의 연구에 조금만 투자한다면 즉 서양의 창문을 보완하여 플라스틱 샷슈제품이 나오면서 방음과 보온이 보다 완벽하게 해결 되듯이 우리의 창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든지 해결 할 수 있지만 해결하여 사용하려는 노력이 없었고 투자가 없었을 뿐입니다.
다섯째로는 만만찮은 비용과 방의 크기가 작다는 점을 이야기 합니다.
요즈음 목재값이 많이 올랐고 인건비도 많이 올랐지만 제대로 집을 지을 수 있는 목수마저 없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서양식 통나무집을 수입하거나 연구하는 정력을 한옥의 기본 골격에 대한 규격화 등 한옥 현대화 또는 기계화 규격화 연구에 투자한다면 보다 쉽게 훨씬 저렴한 한옥을 만날 수 있으며 좋은 목재만 있으면 얼마든지 큰 공간을 만들 수도 있고 한 생각 바꾸어 생각하면 목재가 아닌 어떤 재료로도 우리식의 멋있는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여러 문제점들로 결국은 우리가 우리 것을 천시하고 홀대한데서 오는 것이지 그 어떤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앞에서 지적한 단점들조차도 거기 까지만 다스리고 그이상은 다스릴 필요를 느끼지 않는 아니 다스리지 않아야 된다는 신념까지도 있었던 우리 조상들의 삶이었다고 말한다면 제논에 물대기 또는 구수주의 자라고 나무라실런지요. 하지만 그 까닭을 말씀드리면 그렇게 생각하지만은 않으실 것입니다.
자세한 말씀을 드리자면 논문이라도 되어야 할 것이니 제가 느끼는 한마디 대신하여 깊이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서양의 건축은 육신편의 위주의 건축이며 우리의 건축은 영혼의 안식을 넘어 육신을 초월하고 영혼의 성장을 돕는 건축이라고 말씀드리면 웃으시겠습니까? 그러나 비웃지 말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진정 확인하고 싶다면 삶의 철학을 아는 큰 목수를 찾아가 집짓는 전 과정을 지켜보고 그 과정의 의미를 알아보면 제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 것입니다. 한옥을 짓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는 사람은 도저히 짐작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한옥은 두 마리의 학이 둥지를 틀고 앉아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뼈대를 다세우고 흙을 바르기 전 모습을 달빛 아래서 집전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바라 볼 때 이 땅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모습은 두 마리의 학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평화롭고 금슬 좋은 부부가 소중하게 새끼를 품고 있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그런데 요새 도시나 민속촌 등에 생각 없이 외형만 흉내 내는 그런 집은 그 집을 짓는 목수조차도 왜 그렇게 했는지 생각지 않고 마음대로 자르고 변형시켜 마치 털 빠진 오리새끼처럼 만들어 놓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문론 서양의 건축도 어떤 그들만의 상징이나 조형을 추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사람들은 그들이 왜 그랬을까 생각하지 않고 외형만 들여와 이 땅의 건축문화를 초토화 시켜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건축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 다해도 지나친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문화의 자멸의 동기요 나아가 우리 민족의 멸망을 자초하는 동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각자 자기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합시다. 모든 분야에서 우리가 우리다울 때 세계인들은 독특한 나라 한국을 기억하고 찾아오고 존경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