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4.7 | [문화시평]
이제 관록을 자랑하는 축제로 자리잡음직 하다. -제20회 전주대사습놀이-
유영대 우석대학교교수 국문학과(2003-09-24 09:17:45)
'그냥 편하게 소리를 했으면 좋겠다. 판소리 경창대회에만 나오면 왜 이리 가슴이 두근거리고, 평소에 잘하던 대목도 까막까막해지는가.' 전주대사습놀이의 판소리 경연에 나온 명창 정창업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면서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가슴도 두근거렸다. 자신의 이름이야 이미 조선팔도가 다 아는 바이지만, 그래도 명창이라면 최후로 보증을 서주는 전주대사습에서 장원하는 것만이 진정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것 같아서 몇 해 전부터 별렀던 출전이었다. 그런데 그는 대사습장의 분위기에 이미 압도되어 버렸다. '사군자정'의 위용도 위용이려니와, 낙점을 찍어주는 심사하는 이들의 당당함도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이 이 사군자정을 휘감고 있는 수많은 청중들이었다. 이 청중들의 수준이라는 게 보통인가. 꼭 짚어줘야 될데서 추임새 하는 품새며, 고수와 함께 가는 보비위 솜씨도 가히 일품이다. 게다가 이면에 맞지 않는 소리를 할 작시면 이 귀명창들은 금세 야유의 분위기로 몰고 가서 웅성거린다. 정창업은 어쩐지 자신이 점점 없어져가는 가운데서 「춘향가」 가운데서 '초압'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 예감대로 자신의 무대는 얼마 가지 못했다. "방자 분부 듣고 나귀안장을 짓는다.. 나귀 등에 솔질 솰솰.." 여기까지 두어 소절 노래하다가 그만 가사가 막히고 만다. 다음 가사가 무드라. 이 대목은 천 번도 더 불렀는데.. 하번 막히자 '솔질 솰솰'만 몇 차례 반복했다. 그러자 매몰찬 청중들이 "나귀 껍질 벗겨지겠다", "무슨 명창이 가사도 못외고.." 대번에 야유가 터져 나왔다. 정창업은 그냥 무대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참담한 패배였다. 나는 제 20회 전주대사습놀이 경연대회장에 있다. 지금 막 송순섭 명창이 그답지 않게 긴장하여 떨면서 소리하는 것을 보고, 지금부터 백여 년 전에 전주의 '사군자정'에서 벌여졌을 판소리 경창대회의 장면을 이렇게 그림 그려본다. 송순섭 명창을 특히 낮은 소리가 아주 돋보이며,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고급이어서 이조 때라면 아주 환영받을 목구성을 가졌다. 물론 오늘날에도 그이의 소리는 비교급으로가 아니라 최상급으로 훌륭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대회용 소리'로는 걸맞지 않은 대목도 있다고 생각되어 잠시 우울하다. 송순섭 명창도 소리를 하면서 떨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가장 장끼로 여기는 '불 지르는 대목'을 노래하면서. 원래 전주대사습은 조선 숙종 때로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말 타고 활쏘기 대회'라든지, '아전놀이' 무예놀이의 성격이 강한 민속행사였다. 그 후에 이 대사습의 행사에 '판소리 경연'이 한데 합쳐, 종합적 성격을 갖춘 전통 축제였다. 특히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전주에 '재인청'과 '가무대사습청'이 설치되면서, '사군자정'을 지어서 그곳에서 처음 대사습 대회가 열린 뒤부터, 주로 판소리 명창의 등용문이 되었다고 한다. 전주대사습을 통한 명창의 권위야말로 최상이어서, 이를 통과하면 서울의 양반집이나 임금 앞에서까지 소리를 할 수 있는, 그야말로 돈과 명예가 보장되는 대회로 상승되었던 것이다. 이 자리에 경연차 나오는 명창들이 바짝 긴장하기 마련이다.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구성되었을 지가 사뭇 궁금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은 바로 청중의 자질이었다. 전통사회에서 가장 권위 있던 경창대회인 전주대사습놀이가, 19세기 말에 중단되었다가 지난 75년에 부활되어, 그날의 잔치를 이어온 것이 벌써 스무 해나 되었다. 우리에게 스무 살은 이제 비로소 성인이 되는 나이이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그간의 어린 아이 수준에서 벗어나, 이제 좀 더 성숙한 차원을 마련하여야 된다는 점을 뜻한다. 이제 이 대사습은 단순히 경연대회가 아니라, 관록을 자랑하는 축제로 자리 잡음직하다. 그런 점에서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고 앞으로의 발전을 기하는 덕담을 하는 자리로 삼겠다. 올해 대사습놀이는 음력으로 오월단오가 되는, 6월13일과 14일 전주 실내체육관을 비롯한 각 경연장에서 열렸다. 13일은 예선이 벌어졌고, 14일 전주 실내체육관에서는 판소리 명창, 판소리 일반부, 농악, 시고, 무용, 기악, 가야금 병창 등의 부문에서 경연이 진지하게 실시되었다. 이번 대사습기간에 나는 판소리와, 기악, 춤 등 몇 곳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그 축제적 분위기를 즐겼다. 그러면서 느낀 단편적인 생각을 이렇게 말해본다. 먼저 대사습놀이의 성격에 대한 논의를 좀 더 해봐야 하겠다. 이 대회는 경연대회로만 치러지고 있으나, 이 자리에 모인 청중들은 축제적 성격을 오히려 더 즐기고 있다. 물론 이 두 성격은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면 아주 그럴법한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도 있다. 경연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예선인데, 올해 일부 종목의 예선은 일반 청중이 참여할 수 없어 아쉬웠다. 농악대 같은 경우는 경연 종목에 넣지 말고 해마다 두어 팀을 초청하여, 경연의 시작이마 말미에 체육관 바깥의 마당에서 놀게 하여 축제적 성격을 강조했으면 좋겠다. 농악대의 경연은 20여분을 채우는 동안 다채로운 기름의 변화를 구사하기는 하나, 대체로 지루하다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농악대의 소리에 비하면 실내 체육관의규모가 너무 작아서 농악대 순서가 되면 청중들이 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대사습의 경연이 끝나고 청중들이 모두 밖으로 쏟아져 나올 때 , 실내 체육관 앞의 너른 마당 그곳에서 상모도 돌리고 농악놀이를 한바탕 해댄다면, 구경 온 사람들이 잡색 패거리의 일원이 되어 그 행렬에 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하여 대사습이 갖는 문화적 열기를 전이시키고, 공동체 의식의 확보가 저절로 이루어진다. 전통 사회에서의 유가(遊街) 풍습처럼 이 대사습이 진정한 하나 되는 축제의 장을 마련하는데 좀 더 긴밀한 연출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는 상의 공정성에 관한 부분에 대하여 좀더 논의해야 되겠다. 대사습은 우리 전통예술의 전반에 대하여 수상하는 권위 있는 상이다. 판소리 명창을 뽑는 대회는 남원이나 광주에서도 개최되지만, 기악이나 무용 등은 거의 유일하게 대사습놀이에서 상을 준다. 판소리 명창뿐 아니라 기악이나 무용도 상의 권위를 위하여 격을 높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상금도 명창이나 기악, 무용을 비슷하게 준다거나, 아니면 대상에 해당되는 것을 돌아가면서 줄 수 있는 그런 실질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대회는 심사에 관한 한 그다지 뒷말이 없는, 그래서 상당히 공정성이 확보된 경연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서 이 기회에 심사위원의 선정이며 심사과정에 대한 전체 과정을 공정하게 진행할 전담기구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심사위원은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하고, 채점표를 공개하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된다면, 공포된 결과에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당 부분의 전문실기인만으로 심사위원을 구성하는 일은 문제점으로 제기될만하다. 특히 기술적인 문제와 아울러 국면 전체를 읽는 힘을 갖춘 인물을 선정해야 할 것이다. 한편 자신의 이해관계에 판단을 흐릴 소지가 있는 경우 적극적으로 기권을 유도하는 방식이 전담기구에서 맡아야 될 책무이다. 몇 가지 제도적 보완이 된다면 이 경연은 훨씬 권위 있는 제도로 성장할 것이다. 셋째로 진행에 관한 미세한 문제들을 지적할 수 있다. 대사습놀이는 전체일정이 TV로 생중계되는 유일한 행사이다. 이 점은 문화방송의 대단한 공로로 인정받을 만하다. 이 중계는 국악을 대중적인 기반이 든든한 축제로서 이바지해 왔다. 이같은 노력이 쌓여서 국악인구가 점점 증가되기도 하였고, 역설적이게도 올해가 국악의 해로 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작년에 『서편제』의 열기에 이어 올해는 『휘모리』가 제작되었다. 『휘모리』는 작년에 이 대회에서 판소리 명창부 장원을 한 명창 이임례씨의 삶의 역정이 드라마틱하여 영화로 등장한 것이다. 대사습 측으로서는 망외의 소득이 된 셈이다. 특히 영화의 장면에 대사습 장면이 재연되기도 하여 흥미를 끌었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의 관객층은 젊은층이 한층 늘었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진행을 부문별로 차례로 하는 것은 어떨까? 나누어 하지 말고 먼저 병창을 하고, 심사결과를 발표하고, 다음에 기악을 하고, 심사결과를 발표하고, 이런 방식으로 하면 좀더 집약적이고 핵심적으로 이 잔치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과감한 방식의 중계를 생각하고 그리고 문화의 융성에 이바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태백이 아쟁으로 기악부 장원을 하였다. 작년에 출전하여 그이의 어머니와 함께 등위에 올랐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송순섭 명창이 명창부에 나올 때 필자는 그를 내심 응원하였다. 이 점은 작년에 왕기철이 경연에 참가했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남자 명창에 대한 관심의 환기와 일정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번 대사습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축제에의 참여였는데, 그 결과도 만족하다. 시상식에서조차 송순섭 명창이 떨고 있는 것을 보고 더욱 그 느낌이 괜찮았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