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7 | [문화시평]
상업적인 연극과 맞서 싸울 대안이 희미했다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 연극한마당-
김정수 편집위원, 연극인(2003-09-24 09:21:18)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연극한마당'이 막을 내렸다. 지난 5월 13일부터 6월 12일까지 매 주말에 전국의 5개 극단이 전북투자금융 지하 특설무대에서 차례로 공연을 가진 연극제였다.
우리 지역에 매년 봄마다「전북연극제」가 열리고 작년부터 시작된 전주 소재 극단들의「소극장 연극제」가 앞으로도 해마다 기획될 예정이지만 이번「연극한마당」은 내용면이나 의미 부여 측면에서도 이들 연극제와는 판이하게 다른 성격을 갖고 있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와 민예총이 주최하고 민족극협의회가 주관하는 이 연극제가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인 이 지역에서 관객과 만나고, 또 참가작품 모두가 동학농민혁명이라는 동일한 제재를 다각도로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사실만 가지고도 그 차별성이 드러난다.
사실 이런 식의 연극제는 우리 연극사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일한 역사적 소재를 가지고 거의 동시에 창작된 희곡물이 없었으며 시차를 두고 창작된 작품들이 선혹 있었더라도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여러 극단들이 공연일정을 조절해가며 모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간혹 한 특정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그의 각기 다른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보는 연극제나 동일한 작품을 놓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한 연극제의 경우는 눈에 띄었지만 '연극한마당'은 이같은 연극제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참가 5개 극단이 대부분 초연창작품이나 집단창작품을 선보인 이번「연극한마당」은 이래저래 개막전부터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첫째주 공연은 대구 소재 극단인「함께사는 세상」이 최제우와 최시형을 축으로 하여 동학농민혁명 전반을 조명한『궁궁을을』로 선보였다. 이 작품은 호남의 봉기 위주 동학관을 탈피하여 동학 사상과 신앙조직의 비중을 강조하고자 한 작품이었다.
둘째주는 부산 소재 극단「열린무대」차례로 동학농민군으로 혁명에 참가한 가상적인 인물 '하늬'를 중심으로 혁명전개과정을 서술하면서 비디오 기법을 활용해 광주민주화 항쟁과의 동일 선상에서의 접맥을 시도한『하늬』를 공연했다.
셋째주는 대전「우금치」가 민중들의 오랜 염원과 의식의 각성과정을 실화에 기대어 표현한『우리동네 갑오년』을, 넷째주는 청주의「열림터」가 동학농민군과 그 후손의 삶을 연결지어 생각한『북실 진달래』를 각각 무대에 올렸다.
전주의「창작극회」는 동학농민군의 원혼이 씌인 현대의 소외계층이 그 원혼의 외침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면서 그들을 위로하고 달래준다는 이야기의『녹두!녹두!』로「연극한마당」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같은 역사적 사실을 두고 각기 개성있는 접근을 시도한 성과들을 한자리에 모아 본다는 일이 얼마나 흥미있고 보람있는 작업인가를 공연이 모두 끝나고 난 후 다시한번 실감했다. 현장예술이라는 특수성이 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이 기회에 타 지역 극단들의 시각과 기량을 견줘 볼 수 있다는 부가적 수익도 만만찮았다. 미세하지만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보는 지역성도 이 다양함 속에 녹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소중하고 의미있는 잔치였지만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남았다. 기획측면에서 살펴볼 때 이번「연극한마당」은 관객동원에 있어 참폐를 면하지 못했다. 물론「창작극회」야 이 고장의 대표적 극단이고 홍보에 있어서도 시간적 여유가 다소 있었기에 성황을 이룰 수 있었지만 나머지 극단들은 심한 경우 불과 열명안팎의 관객을 앞에 두고 막을 올리는 날도 있었다. 이 점을 다만 공연장의 위치가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는 사실에 원인을 두고 있다고 설명하기엔 부족한 감이 든다.
몇 년을 두고 꾸준한 준비 작업을 해왔던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과 올봄부터 전북의 소수 극단이 희생을 마다않고 마련한 자리가 일반 대중을 강하게 휘어잡는 하나의 문제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소박한 반성과 함께, 보다 열린 공간에서 밀도 높은 일정으로 시민 축제화되지 못했던 여러 제약들까지 거론되어야 할 것이다.
작품의 질적인 문제도 전혀 없진 않았다. 대부분 참가작들은 역사적 사실을 가능하면 많이 설명하고자 하는 의욕이 앞서 세밀한 표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점은 앞선 이론적 면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지는 기량이 문제로 지적되는 일과 궤를 같이 한다.
한 예로『하늬』같은 경우, 그 의도는 충분히 공감하고 남지만, 동학농민혁명과 광주민주화항쟁 사이에 무리한 접목을 보여준다. 갑오년 당시 농민군들의 행적을, 비디오와 해설자를 통해 보여주는 광주민주화항쟁 진행과정과 일치시키려는 노력 때문에 때로는 농민군들의 거사 모의가 군부구데타 음모와 겹쳐 진행되어 잠시나마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혼선에 빠지게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녹두!녹두!』의 경우는 억울하게 죽은 농민군들의 원혼이 저승엔 가지 못하고 현재를 배회한다는 신선한 착상으로 동학백주년기념사업회가 준비하는 해원굿으로 까지 아기자기한 동화처럼 연결했는데, 연결되는 일화의 재미에 묶여 주제가 모호해졌다.
하지만 어떤 아쉬움도「연극한마당」이 가져다 준 의의에 근접하지는 못했다. 우리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역사의식을 질문할 진정한 민족극의 수립과 퇴폐적이고 상업적인 연극과 맞서 싸울 대안으로서의 지역연극 활성화를 생각할 때 이 연극제의 의의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풍부한 소재와 건강한 의식이 함께하는 지역 연극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우리극의 모습이며 왜곡되어왔던 현대연극사를 바로 잡아나아가는 열쇠가 될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