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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5 | 특집 [오래된 오늘]
우주와 사람의 길을 잇다
윤도 이야기
이동혁(2019-05-31 15:12:16)



예부터 풍수가나 지관이 집터나 묏자리를 정할 때 사용하던 우리나라 전통 나침반인 '윤도(輪圖)'. 하지만 단순한 나침반이라 부르기엔 그 쓰임새나 원리가 너무나도 깊고 넓다. 둥그런 목판 위에 역법과 주역의 원리에 따라 층층이 새겨진 방위, 음양, 오행, 팔괘, 십간, 십이지, 24절후는 이미 그 자체로 작은 우주나 다름없다. 30cm 남짓한 원 안에 동양의 오랜 철학이 녹아 있는 것. 우주를 담았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스럽지 않다.


삼국 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짐작되는 윤도는 '지남반(指南盤)', '지남철(指南鐵)', 허리에 차고 다닌다 하여 '패철(佩鐵)'이라 부르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일반에도 널리 퍼져 뱃사람이나 여행자가 방위를 보기 위해 휴대하기도 했다. 일반 윤도를 가리키는 '평철' 외에도 형태에 따라 '선추', '면경철', '거북패철' 등 종류가 다양한데, 특히 부채 끝에 매단 선추는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외관의 조각도 빼어나게 아름다워 사대부들이 멋을 부리기 위해 곧잘 들고 다녔다고 한다. 면경철은 덮개에 거울이 달린 것으로, 주로 아녀자들이 거울 대신 휴대하며 사용했다. 이렇듯 윤도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민중 모두가 함께 사용한 생활 과학 도구였다.


고창군 성내면 산림리 낙산마을에서 윤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약 300년 전부터다. 조선 시대에는 흥덕현에 속해 '흥덕패철'이란 이름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조각의 정교함과 자침의 정확도를 따를 곳이 없어서 윤도하면 흥덕이라 할 정도로 낙산마을의 것을 으뜸으로 쳤다. 그 명성이 어느 정도였는고 하니, 전국 팔도에서 모인 주문자들로 사랑방이 가득 차서 한 끼 식사에 밥을 여섯 번이나 새로 지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전 씨로부터 시작된 흥덕패철의 전승 계보는 한 씨, 서 씨, 한운장, 김권삼(현 보유자의 조부), 김정의(현 보유자의 백부)를 거쳐 현재는 김종대 장인(국가무형문화재 제110호 윤도장 기능보유자)과 김희수 전수교육조교(현 보유자의 아들)로 이어지고 있다.


"젊을 때 듣기로는 무주에서도 맨든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우리 뿐이여. 우리가 그만두면 다 없어지는 거지. 긍게 아무리 힘들어도 할 수밖에 없는 거여. 그기 자부심이고, 전통이지."


흐르는 세월 따라 눈도 귀도 침침해졌지만, 김종대 장인(87)의 커다랗고 투박한 두 손은 아직도 한창 때의 건장함을 잃지 않았다. 두 팔 불거진 힘줄이 젊은 사람 못지않다. 60여 년, 긴 세월 그가 지켜온 것의 무게가 그 손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 손이 지켜온 것은 윤도라는 이름의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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