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클라우디오 조반네시 감독의 <나폴리:작은갱들의 도시>로 축제의 막을 열고 기 나티브 감독의 <스킨(Skin)>으로 막을 내린다. 그 사이 영화관객들을 맞는 영화들은 53개국의 영화 275편. 스무 돌을 맞는 올해에는 그동안 진행해온 프로그램에 돋보이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더했다. 지난 20년간 전주국제영화제와 비전을 공유해왔던 동시대 작가들을 조명하는 특별 기획 프로그램 '뉴트로 전주'가 대표적이다. 영화 상영의 공간과 방식을 확대해 팔복예술공장에서 진행하는 전시와 특별전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보다 100여 편이나 늘어난 출품작 수로 스무 살 전주국제영화제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한국단편경쟁부문'의 영화들도 눈길을 끈다. '대안, 독립, 디지털'이라는 주제를 더 특별하고 새롭게 담아낸 올해 영화제 프로그램들을 들여다본다.
개막작&폐막작
개막작 <나폴리:작은 갱들의 도시>는 니콜라를 비롯한 10대 소년들이 갱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이들은 어른들의 마약 밀매 사업을 도우며 세력을 늘려나가고 총을 사들여 어른들의 조직을 잠식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세력을 확대해 가는 과정은 다른 구역과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소년들 사이에서도 다툼이 일어난다.
질주하는 청춘들의 모습과 이면을 고전적인 스타일의 영상미를 통해 포착해낸 이 영화는 성장 영화의 표본과도 같은 영화이자 에너지와 비극적 묘사가 돋보인다는 평을 받는다. 이탈리아의 갱 영화 『고모라』의 원작자로 널리 알려진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동명 소설을 옮겼다.
폐막작 <스킨(Skin)>은 스킨헤드족이었던 실제인물의 이야기를 다뤘다. 머리를 빡빡 깎고 다니며, 극단적 외국인 혐오증을 가진 극우민족주의자들을 '스킨헤드(Skin Head) 족'이라고 부른다. 영화의 주인공은 스킨헤드족들 사이에서 성장했고,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의 신뢰를 받을 정도로 백인 우월주의를 대변하는 인물. 그런 주인공이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흑인 인권 운동가를 알게 되면서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살갗을 폭력의 흔적으로 낙서하였던 주인공이 피부 위에 새겨진 과거를 지워가는 과정이야말로 어떠한 변신의 드라마보다 강렬하게 인간의 진짜 모습을 전해준다.
뉴트로 전주
지난 20년간 전주국제영화제와 비전을 공유해왔던 동시대 작가들을 조명하는 특별 기획 프로그램이다. 작가 선별에는 세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 전주국제영화제의 역사와 비전, 정체성에 동의하고 이를 작품에 구현해왔던 작가. 둘째, 2018년 이후 한 편 이상의 신작을 발표한 작가. 셋째, 2019년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하여 그들의 과거와 미래 전망을 관객과 교감할 수 있는 작가이다. 스물한 명의 감독과 프로듀서가 초대되었으며 그들의 신작을 상영한다.
'뉴트로(Newtro)'는 '뉴(new)'와 '레트로(retro)'를 합성한 단어. 영예로운 과거를 회고하고 추억하는 후일담이 되기보다 작가의 미래, 전주의 미래, 영화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기획이다.
국제경쟁
감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 영화를 대상으로 자유, 독립, 소통의 기조에 부합하는 열한 작품을 선정하였다. 올해 작품들의 특징은 매우 일상적이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도주하는 아이>에는 집에서 살지 못한 채 보호시설을 떠돌아야 하는 아홉 살 소녀 베니가 머무는 시설이, <엄마에게로의 여행>에서는 새로운 인생을 꿈꾸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스페인 여성 레오노르가 살아가는 런던이, <내일부터 나는>에서는 이주노동자가 몸을 누이는 작은 방 등이 놓여 있다. 극중 그들에게 자연스럽던 일상의 공간은 '비장소'가 되어버린다. 영화는 그곳에서 살아가고 견뎌야 하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한국경쟁 & 한국단평경쟁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는 104편의 장편영화와 1,026편의 단편영화가 출품됐다. 이 중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분노와 좌절을 담은 작품이 주를 이루는 흐름 속에서 자기만의 가치와 감성으로 비감한 현실에 맞서는 영화 10편을 선정했다.
여성이나 청년들의 사회적 위치를 고민하고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개인의 개별적 욕망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관해 기발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영화, 아이들이나 중고생들의 시선으로 세상의 이치와 관계를 바라보는 영화들 문학적 감수성과 영화적 상상력을 결합한 작품들이 다수 선정됐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장편영화 제작 프로젝트로 네 편의 영화를 선보인다. 김종관의 <아무도 없는 곳>, 고희영의 다큐멘터리 <불숨>, 다미앙 매니블의 <이사도라의 아이들> 등 세 편의 영화는 모두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작품세계를 확장했거나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발견되었던 감독들의 신작이다. 또한, 전지희의 <국도극장>은 전주국제영화제와 명필름랩이 두 번째로 합작해 제작한 프로젝트이다. 이 영화들은 모두 지난 몇 년간 다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고 한국 독립영화시장의 확장에 기여해온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의 전통을 이어줄 준수한 성과들이다.
프론트라인
질문과 논쟁을 촉진하는 제제, 논란을 야기하는 세계관, 혁신적인 영화 스타일로 영화 지형의 전위에 선 작품들을 소개하는 '프론트라인'에서는 올해도 국가, 장르, 화법을 불문하고 안주를 거부하며, 취향을 도발하고, 내용과 형식의 쇄신을 기도(企圖)한 작품들을 선정했다.
마스터즈
'마스터즈'에서는 다큐멘터리의 거장 프레드릭 와이즈먼,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인 난니 모레티, 중국의 거장인 장양 등 열여섯 명의 세계의 거장들과 그들의 새로운 작품을 소개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성직자의 추문을 다루고 있는 프랑수아 오종의 <신의 은총으로> 등 여러 문제들이 다양한 스타일과 표현을 통해 관객들과 만난다.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변화를 꿈꾸는 세 명의 10대를 다룬 <제네시스> 등 변화하는 세대들의 모습은 올해 '월드 시네마스케이프'의 주종을 이룬다. 올해 하나의 묶음으로 상영되는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단편'은 단편영화의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전하는 재미와 더불어 세계 단편영화의 완성도를 집약해 관람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올해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에는 한두 개의 경향으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한 다큐멘터리들이 상영된다. 한국독립영화계의 흐름을 대표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4대강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미국 정부가 멕시코 국경에 설치하려는 난민 방지 장벽 등 공식적인 언론이 조명하지 못하는 국내외의 첨예한 이슈를 세세하게 파고든다. 그밖에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삶의 형태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다수의 성찰적 다큐멘터리도 선보인다.
시네마톨로지
영화에 대한 영화, 영화를 통한 영화의 이해를 제시하는 섹션이다. 버스터 키튼, 잉마르 베리만, 할 애슈비, 장클로드 브리소와 같은 우리 시대 대표적 감독들의 세계를 다룬 영화들을 스크린으로 불렀다. 더불어 '시네마톨로지 클래스'를 통해 영화를 만든 감독들과 평론가들이 언어를 통해 또 한 번 영화적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한다.
익스팬디드 시네마
'익스팬디드 시네마'는 영화의 본질 탐구와 영화 형식의 실험을 지향하고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의 장르적 경계선을 다시 그리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영화 매체의 확장을 다각도로 소개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올해부터는 이를 더욱 확장하여 극장 상영과 갤러리 설치를 병합하는 '익스팬디드 플러스'를 함께 진행한다. 전주시 팔복동에 개관한 예술공간인 팔복예술공장에서 이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시네마페스트
폭넓은 관객의 취향을 겨냥한 섹션. 여러 지역과 장르, 스타일을 포괄하는 작품을 주로 소개한다. 삶의 소소한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 거대한 사건 속에서 몸부림치는 삶의 드라마가 '시네마페스트'를 통해 상영되는 작품들 속에 친근한 화술로 펼쳐진다.
미드나잇 시네마
밤새 영화를 보며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미드나잇 시네마'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즐기는 색다른 방식 중 하나가 됐다. 올해 초청작들은 장르적 흥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저마다 급진적 상상력과 뚜렷한 주제의식, 분방한 표현방식, 개성적인 스타일을 자랑한다.
스페셜 포커스
- 백 년 동안의 한국영화 : 한국영화의 또 다른 원천(20세기) / 와일드 앳 하트(21세기)
한국영화 100주년과 전주국제영화제 20주년을 기념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영상자료원이 공동 주관하여 기획한 것으로, 100년이라는 시간을 20세기와 21세기로 나누어 재조명한다.
'한국영화의 또 다른 원천(20세기)'은 100년의 역사가 지나는 동안 충분히 조명 받지 못했거나 이미 알려진 작품이더라도 다시 언급해야 마땅할, 영화사적으로 귀한 가치를 지니는 영화들을 상영한다.
전주국제영화제 20회를 맞는 기념으로 기획된 '와일드 앳 하트(21세기)'는 21세기 이후 제작된 영화들 가운데 가장 거침없고 도발적으로 기획되고 연출된 감독들의 야심작 목록으로 채워진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이들 목록에 오른 영화 대부분은 비록 상업적 성공을 거두진 못했으나 영화인들과 관객들에게 깊은 영감을 줄 수 있는 독창적 작품들이다.
- 로이 앤더슨 : 인간 존재의 전시
스웨덴의 현재를 대변하는 거장이지만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로이 앤더슨의 전작을 상영한다. 현재 제작 중인 영화를 제외하고 장편과 단편을 모두 상영하는 이번 특별전을 통해 미술가이자 사진작가이며 인간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스크린으로도 선보여 왔던 로이 앤더슨 감독의 진면목을 확인할 기회를 갖는다. 로이 앤더슨과 작업해온 대표적인 촬영감독 게르게이 팔로스가 영화제를 찾아 깊이 있는 '마스터 클래스' 시간도 갖는다.
- 스타워즈 아카이브 : 끝나지 않는 연대기
작년 '디즈니 레전더리'로 시작한 영화사, 작가, 사조, 스튜디오 등 하나의 토픽에 대한 기록, 보존, 재조명의 취지를 갖는'아카이브 특별전'의 두 번째 기획이다. 올해는 1977년 2017년까지 40년간 시리즈를 진행한 우리 시대 대중문화의 신화 '스타워즈' 시리즈를 조명한다.
- VR 시네마 특별전 : 눈앞에 펼쳐진 미래 영화
360도로 펼쳐지는 시각 이미지와 상호작용을 이용하여 다른 차원의 시간과 공간을 경험하도록 하는 VR 영화는 여러 영화제에서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는 'VR 시네마 특별전: 눈앞에 펼쳐진 미래 영화'는 이러한 흐름들을 일별하면서 새로운 미디어를 통한 영화적인 경험에 집중했다. '스피어스' 삼부작, VR 시네마 1, VR 시네마 2의 세 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특별전을 통해 한국의 우수한 VR 작품과 해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VR 작품을 모아 선보인다.